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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pr 04. 2016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

'가족'

 얼마 전, 예기치 않은 상을 당했다. 이른 새벽 제노의 산책을 마치고 공주님에게 아침인사를 건넨 뒤 출근길에 오르려고 하던 찰나 걸려온 전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하지 못한 비보였다. 장례를 치르면서 아가와 제노를 돌볼 수가 없었기에 그날 저녁 우리는 결국 아가의 외할머니 댁으로 이른바 첫 '가족 대이동'을 준비해야만 했다.


 부랴부랴 필요한 짐들을 챙겨 차로 이동을 해야 했다. 카시트를 아직 이용해 보지 않아 조정을 해두지 못했던 우리는 결국 제노 엄마가 공주님을 품에 안은 채 뒷좌석에 타고, 제노는 거대한 덩치를 끌고 애견용 안전벨트를 착용하고선 조수석에 올라탔다. 트렁크와 뒷좌석 남은 공간에는 짐들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밖으로 나서니 깜깜한 밤이었다. 조수석에는 희고 커다란 개가 푸른 눈을 희번뜩거리며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는 새근새근 잠든 아가와 경황없는 표정의 엄마가 졸고 있었다. 그들이 졸고 있는 반대편 자리에는 커다란 유아용 카시트와 검은 조복 정장 한 벌이 걸려 있었다.


여긴 어디인가 그는 누구인가


분명 슬프고 애통한 심경이었는데, 억지스럽지만 조화로운 듯한 광경이 어쩐지 익살스럽게 느껴져 미소가 배어져 나오고 말았다.


"글쎄, 지금 이 익살스러운 총체적 난국이 나중엔 추억으로 남겠지?"


"아마도? 그래도 지금만큼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나도 동감이야..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한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따님과 털북숭이 아들래미였다. 녀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정작 세상을 떠난, 사랑하던 가족에 대한 비통과 애도를 온전히 머금을 틈도 없이 하루하루가 밀려갔다.


 이제껏 "누군가의 빈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 빈자리는 다른 삶으로 채워져 간다."는 표현이라면 이젠 조금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내 삶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까.


".........."

  



 '가족'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제노 엄마와 나를 중심으로 제노, 공주님, 이렇게 점차 넓어져 가는 동심원이 바로 우리 가족인 것이며, 이 그림은 또 세월이 흐르며 다음 세대의 동심원을 그려가면서 그 궤를 이을 것이다.


같은 시대, 다른 세대 - 할아버지와 버디 / 나와 제노


 본 매거진의 [특별편 : 검은 도베르만핀셔 버디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어릴 적 우리 집엔 검은 도베르만 버디가 있었다. 마침 회사를 퇴직하신 할아버지는 녀석을 거의 도맡다시피 돌보셨다.


 커다란 버디가 마당에 풀려 있으면 어린 나는 겁이 나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오셔서는 버디를 붙잡고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시곤 했다. 당시엔, 그리고 어른이 되기까지 그게 얼마나 수고롭고 귀찮은 일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바로 앞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시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귀찮아하시는 분이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단 한 차례도 내게 귀찮은 내색을 하시거나 불평을 하신 적이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게 바로 손자를 위한 사랑이자 바로 '가족'이라는 거였구나 싶다.


 버디는 2005년에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이승을 떠난 영혼을 가장 먼저 반기는 존재가 현세에서 기르던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맞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신 할아버지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버디였을 것이다. 뒷산 약수터까지 쩌렁쩌렁 울리던 '컹컹'거리는 울음소리로 할아버지를 반기지 않았을까.


 

다림질하는 엄마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제노 - 뒤에 보이는 벽은 이갈이 당시에 갈아먹혔다..(수리하느라... 휴..)

 온갖 필요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넷이서 차에 꽉꽉 들어 타고 이동하면서 이젠 정말로 제노 녀석이 당연하게 우리 가족구나 싶었다. 조수석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푸짐한 덩치 외에도 '당연히 우리 함께 움직이고 행동해야 할 존재'라는 나의 자각이 그러했다.




'연인이란 마주 보는 한 쌍이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만일 가족이라는 의미가 연인으로부터 출발하는 부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국 가족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 아닐까?


 얼마 전, 비가 잠시 멎은 틈을 타 제노와 산책을 나갔다가(애견학교에 다녀온 뒤부터 제노는 밖에서밖에 배변을 하지 않게 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만났다. 우리 둘 다 물에 빠진 거대쥐와 흰 쥐 꼴이 되어 집에 들어왔던 기억이 나서 제노에게 비 오는 날 입힐 우비를 하나 장만해주었다. '나중에 우리 공주님에게 장화나 우산을 쥐어줄 때 이런 기분일까?' 하면서.


'피팅룸이 어디죠?' - 옷 구매 전 시험 착용은 필수!


 아직은 길을 지나다가 어린 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어디선가 옷을 사들고 오면 항상 월령이나 사이즈가 묘하게 맞지 않는다. 반면 제노 신발이나 목줄, 우비같은 물건들은 어림짐작으로 대강 구매해도 신기할 정도로 딱 맞는다. 딸래미 아빠 실격, 개 아빠 합격이라기보단 제노와 엎치락 뒤치락 부대낀 시간이 더 긴 탓이리라.


 언젠가는 우리 공주님이 털북숭이 제노제노를 타고 다니는 원령공주(?)의 한 장면 같은 부질없는 상상도 해 본다.

 



공주님, 제노, 제노엄마, 제노아빠인 나까지 이제 우리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는 넷이 함께 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가족이 늘어갈 것이며 또한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웃는 일 만큼 눈물 흘릴 일도 생길 것이며, 또다시 그 눈물을 닦아낼 웃음도 떠오를 것이다.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는 사람의 온기 곁에서 더욱 안정감과 행복을 얻는 녀석이다. 우리 역시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가 집안을 굴러다녀야 더 큰 행복과 포근함을 느낀다.


부디 이 따스한 울타리가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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