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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Dec 30. 2016

"내 노트는 냉장고에 있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냉장실 가장 윗칸에는 오렌지색 노트가 한 권 놓여 있었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냉장고는 완전히 정상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 문쪽 선반에는 우유와 생수병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고 냉장실 하단 서랍에는 명절에 선물 받아 던져 과일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매일 새벽 한 시, 그는 냉장고에서 노트를 꺼냈다. 방으로 들어간 그가 다시 노트를 냉장고에 넣어두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70분. 작은 기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습관에 대해 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도 노트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의 비상식적인 신앙을 존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관심할 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둘은 오렌지색 노트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늘 그래야 하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렌지색 노트에 꿈과 행복을 그려 넣는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장 큰 행복과 꿈은 단숨에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주 조금씩 그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나의 두서없는 설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알 바는 없지만 그녀는 그 이후 노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 맨 윗칸은 늘 비워져 있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고 조그마한 선풍기마저 모터가 비실해져 버린 열대야는 무자비했다. 그 와중에도 작업중인 컴퓨터는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며 열풍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기획안의 마감이 다음날 정오가 아니라 저녁 무렵만 되었어도 나는 분명 강 둔치로 뛰쳐나가 강바람을 쐬며 차가운 맥주 두 캔을 목에 털어부었을 것이다.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슬프기보단 바깥보다 더 뜨거운 방에서 홀로 무언가를 마쳐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나는 끊임없이 증기를 뿜어대는 컴퓨터의 전원을 내리고 수기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직접 필기하는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적당한 필기구를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열대야를 버티기 위해 종종 책상 아래에 큰 양동이를 가져다 두고 냉동시킨 아이스팩을 넣어두곤 했다. 그 위에 몇 초간이나마 맨발을 얹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발이 쭈글쭈글하게 불어있거나 경미한 동상 증세로 붉게 달아있었지만 비 오듯 땀을 흘려 탈수 증세에 이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근근하게 무더위 속을 연명해가던 어느 늦여름,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냉동실에 넣어두려고 책상 위에 올려둔 아이스팩 대신 노트를 집어 들고 말았다. 통화를 하며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이야기가 크게 길어지지 않을 거라 직감했다. 나는 아이스팩을 냉동실 대신 냉장실에 넣어 두었다가 통화가 끝나면 곧바로 작업을 재개하면서 꺼내어 쓰기로 마음먹었다. 정리한 지 한참이 지난 냉동실은 아이스팩을 넣거나 꺼내기가 상당히 번거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향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아이스 팩이 아닌 오렌지 색 노트였다. 잠시 멍하게 노트를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중요한 전화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면서 노트를 꺼내 책상 위에 옮겨두고는 흥건하게 녹은 아이스팩을 낑낑대며 냉동실에 욱여넣었다. 냉동고에 직접 들어가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책상에 돌아와 노트를 펼치는 왼손가락 사이로 한기가 흘러닿았다. 이는 모기와의 싸움에 지치고 열대야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신선하고 상쾌한 감각이 아니었을까. 몸을 숙여 한쪽 볼을 살포시 노트에 대어 보았다. 볼에서 목선을 타고 도는 냉기가 등을 찌르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글을 쓰는 삶이란 늘 어느 수준 이상의 자극에 목말라 있다. 매일 노트를 펼치는 늦은 밤마다 정신을 쿡 찔러줄 냉기를 접한다면 문장에 또렷한 매무새를 입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찾곤 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그는 갈아놓은 원두에 두 차례 추출해두었을 때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끓어오르는 시간을 갓 지난, 약간의 따스한 온기가 남은 커피를 머그잔 가득 담아 단숨에 들이켜는 것이 눈 뜨고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들 중 하나라 했다.


그는 유독 아침에 약했다. 해가 뜨기 직전, 밤이 가장 어두운 시간을 골라 잠들기도 하지만 설령 이른 아침의 일정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잠드는 날에도 아침에는 어김없이 맥을 추지 못했다. 달과 별이 하늘을 누비는 시간이야말로 자신이 실존하며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통찰할 수 있는 때라고 믿는 듯했다.


 언젠가부터인지 냉장실에 오렌지색 노트가 놓여 있었다. 폭염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늦여름의 어느 아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날 밤은 잠든 뒤에도 몇 차례나 에어컨과 선풍기를 만지작거려야 할 만큼 유난히 더위가 육중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가 실수로 넣어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냉장실의 다른 물건들을 가지런히 옆으로 밀어놓고 구석에 차분히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가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면서 판단을 내려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알아서 정리하겠지-'

그렇게,

냉장실 가장 윗칸 구석을 그에게 양보했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한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어째서?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들. 파고들거나 혹은 흘려보내거나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일 것이나, 이는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답을 지닌 순간일지도 모른다. 냉장고의 노트를 하루에 한 차례 꺼내어 한기가 서려 있는 동안만 글을 적어 넣고 다시 냉장시키는 버릇은 이렇게 우연처럼 출발했다. 따지고 보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휴가를 떠나지 못하게 된 어느 추석 명절에 끼적인 몇 문장 때문이었고, 오늘날 나의 기행을 이해하고 냉장칸을 기꺼이 비우며 묵과해주는 여인과의 만남도 어느 삼겹살집에서 우연처럼 이루어졌다.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존재들은 그 어느 하나 이해될 수 있는 범주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공식에 넣으면 답이 나오듯 도출되지도, 논리적으로 나올 법해서 주어진 것도 아니다.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와 셀 수 없을 정도로 얽힌 독립적인 인과관계들은 이처럼 '우연'이라는 형태로 삶의 가장 중요한 답이나 존재를 툭- 하고 던진다. 그리고 훗날,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과 반추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게 추억되는 시간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저지르는 시간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행한 일들은 뚜렷한 기억이나 추억으로 남지 않는다. 물론 매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면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모든 순간을 기계처럼 논리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대개 4할의 광기와 3할의 미련 그리고 3할의 취기로 빚어지며, 이는 모두 합리성이나 논리 따위와 무관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수학공식처럼 벌어지는 일들을, 눈에 보이는 인과관계대로 흘러가는 일들을 믿지 않는다.


 오렌지색 노트에는 꿈이 담겨 있다. 가장 터무니없고 오만하며 두서없는 꿈.

 하루 한 문장씩, 한 행씩 기록될 때마다 이 꿈은 조금씩 더 구체화되어간다.

 그 꿈이 오래도록 부패하지 않은 채 매일같이 신선한 한기寒氣를 두르고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 도 냉장실 문을 여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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