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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Oct 13. 2016

행복을 꿈꾸다


 구름이 해를 살며시 가린 어느 아침, 네 잎 클로버를 찾아 나섰다. 열고 나선 문 너머 세상은 늘 그렇듯 고요했다. 행운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음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단단하게 굳은 흙길 위를 는 동안 클로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연못 주변에 돋아난 밝은 잎사귀, 그리고 민달팽이 한 마리였다.


 잿빛과 소음으로 가득한 나날들 속에서 '달팽이를 마주치는 순간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라고 다짐했었다. 문제는 종(種)이었다. 마지막으로 끼적이던 글에 등장하는 달팽이는 단단한 보금자리를 등에 짊어진 형상이었다. 숨을 곳, 쉴 곳을 가지고 있어 부럽다는 마음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 분명 눈앞의 민달팽이와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생각을 가다듬은 뒤, 다시 일어나 행운인지 클로버인지를 찾아 나섰다.



 일곱 걸음쯤 옮겼을까, 관자놀이를 스치는 생각. 쉴 곳이 없다 해서 달팽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녀석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주한 모습과 상상해 온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조금 더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에 잎사귀로 앞으로 돌아가 쭈그려 앉았다.




 어렴풋한 꿈. 일렁이는 수면 위 흔들리는 자화상. 분침이 멈추어버린 시계. 고장 난 환풍기.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그릇들이 널브러진 식탁. 현관 층계참에 쓰러져 있는 지팡이. 한 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움직였을 물건들은 멈추어버린 시간 속에 버려진 채, 잊힌 채, 잔혹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없었던 타인의 행복이란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행복을 좇는다고는 하지만 정녕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이 앵무새처럼 말하는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흐뭇한 마음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생존적 안온을 추구할 수 있는 여러 요소에서의 여력'에 가까워 보였다.


 발치에 드러누운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저 녀석보다 삶에 만족하는 모습과 표정으로 단 하루라도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원하게 배변을 하고, 맘껏 산책하며 뛰놀고, 실컷 찬 물을 들이켜고, 맛난 식사를 하고, 평화롭고 따뜻한 가족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드러누워 곤히 잠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무릉도원을 잠깐이나마 넘겨다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우리도 비싸고 맛난 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해소한 다음 푹신하고 바싹한 침대 위에 몸을 던질 수 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삶에 있어서의 '만족', 혹은 긴장의 '이완'이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저 단순하고 행복해 보이는 생명체를 능가하기 어렵다.



 늘 을 생각하고, 지금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 결핍된 부분을 찾아 채우려 애쓰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민달팽이의 여정에서 아무것도 깨닫거나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녀석이 지독하게 느리다는 사실만 다시금 인지했을 뿐이다. 때마침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달팽이에 고정된 나의 시선은 빗방울이 언제쯤 집도 지붕도 없는 녀석에게 직격할까를 심술궂게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들고 있던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분주하게 비를 피할 곳을 찾기 바빴다.


 비를 피하던 사람들 중 마침 지인이 한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다가와 앞으로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어서 피하지 않고 무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이 민달팽이를 지켜보고 있으며 비에 젖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는데, 그의 표정은 아마도 민달팽이를 지켜보던 나의 시선과 흡사했던 것 같다.


 그에게 답을 한 뒤 다시 민달팽이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녀석의 몸뚱이 주변으로 물방울이 크게 번져있고 녀석은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크고 굵은 빗방울이 민달팽이의 벌거벗은 몸을 사정없이 때린 모양이었다. 충격으로 위축된 것일까? 아니면 기절한 건가? 호기심과 함께 약간은 걱정이 되던 찰나, 민달팽이가 갑자기 기지개를 쭉 켜듯이 몸을 쫙 펼쳤다. 그리고는 전에 없던 맹렬한 속도와 열의를 가진 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민달팽이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배움도 얻지 못했다. 다만 그 일련의 관찰 과정, 하루의 여정으로부터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행복은 찾아 나선다고 발견될 만한 어딘가에 핀 꽃이 아니었다. 민달팽이도, 가랑비도, 빗방울에 맞아 각성한 민달팽이도 찾아 헤매던 행복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비를 피하길 권유한 지인의 표정으로부터 가장 큰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순간부터 행복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다만 가랑비처럼 소리 소문 없이 젖어들어있었기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목적지를 향하는 와중에 길옆의 민달팽이를 관찰하기로 마음먹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모두가 비를 피하느라 분주할 때 조금은 젖어도 괜찮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빗방울에 맞아 변신한 민달팽이의 모습을 보고도 '저건 내가 생각한 행복이 아니야'라며 다른 존재를 마음껏 재단하고 사고방식을 선택할 정신적인 여유가 있었다.


 내겐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는, 이미 그런 사치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삽화 : Cover . Andre Kohn 作 / ⅰ. Edward Seago  / ⅱ. Emilii Wilk 作 / ⅲ. Dmitry Kustanovich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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