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장 산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by 오소영

청첩장을 내밀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얼마나 만났어요?’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요?’

그리고 ‘언제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은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사랑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한다]. (p.9)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다 보니 나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 왜? 딱히 ‘이때였어’ 하는 시점이나 ‘바로 이것 때문이야’ 하는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수도 있고, 내가 보여주기 싫은 혹은 상대방이 싫어할 것 같은 모습들은 (어느 정도는) 감출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운명지어졌다’ 고 생각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최초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p.25)


문제는 그러한 환상들이 깨지고 콩깍지가 벗겨지면서부터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열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 순간적으로 홀리는 것과 사랑인지 뭔지를 구별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입니다. (p.37)


위협적인 차이는 중요한 점[국적, 성, 계급, 직업]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의견이라는 사소한 점에서 형성되었다. (p.92)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컵이었던 것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구두로 등장한다. 우리는 사소한 취향에서부터 다르다. 그리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다투기 시작한다. 관계가 좋을 때는 모든 게 좋다. 그 관계의 건강성을 알 수 있는 건 마냥 좋을 때보다는 좋지 않을 때이다. 서로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지나가는가. 그리고 그렇게 쌓여온 시간들. 그게 지금의 관계가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까지 오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가든 남녀든 그 재료만 있다면 [그것이 충분하기만 하다면]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유머 감각이다. (p.108)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 [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이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p.110)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서, 나만 이상한 것 같아서 감추고 싶었던 나의 약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서로의 그런 면에 짜증을 내기보단 유머로 넘기게 될 때, 이 사람이라면, 이런 관계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러한 라이트모티프들은 중요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남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고, 어떤 것을 함께 겪어가며 산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함께 끌어낸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이트모티프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접착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 라이트모티프들이 만들어낸 친밀성의 언어는 클로이와 내가 둘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p.159)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p.161)


다른 사람들은 구태여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측면들, 다른 사람들은 대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측면들을 지적하는 데에는 연인의 친밀성이 필요하다. (p.163)


내가 그녀를 오직 나의 기존의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만, 그것을 참조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 이해라는 것은 내가 남들에게서 기대하게 된 것을 약간 수정한 것일 뿐이다. 내가 그녀를 아는 것은 나의 과거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서 여과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p.173)


물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과 그렇지 못함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나에게는 참고서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 이어 이 책도 다시 읽으면서 또 더 많은 형광펜을 그었다. 내 삶과 그리고 우리 관계에서의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 트레바리 셋토 1805-08시즌 네번째 책 : 작년 여름, 결혼 D-10에 쓴 독후감.

* 제가 적은 문구들은 구판이어서 페이지와 번역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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