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장 산책

지금 이 순간은 내 삶에 의미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by 유시민

by 오소영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았다. 예약 도서를 찾으러 갔을 때 예약 서가에는 두 권의 '어떻게 살 것인가'가 꽂혀 있었다. 한 권은 언뜻 보기에도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깨끗한 편이었다. 아주 잠깐 간절해졌다. '깨끗한 책을 주세요.' 사서 언니는 번호를 살펴보더니 한 권을 들고 왔다. 나에게 배정된 책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책이었다. 사서 언니가 포스트잇을 꺼내 무언가 적고 나에게 건네었다.

'반납 후 재구매 희망'


올 초엔가, 대본집까지 살만큼 오랜만에 인상적으로 봤던 드라마가 있었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새 책 그대로인 채, 혹은 전시품으로만 있다가 낡아서 책값은커녕 종이값에 팔려 파쇄되는 책들을 그린 장면. 그런 책들에 비하면 내 손안에 있는 이 책은 얼마나 행복한가, 스스로의 의미를 다했으니. 그런 책을 마지막으로 읽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뭉클한 것이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무언가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계획과 과정이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하고 싶다면,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야 하고 내 삶에 그 의미가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설계한 삶,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것이나 다른 사람의 답이 아닌 내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내 나름의 답을 가지고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제안하는 삶의 가이드이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각각의 장에는 타이틀과 연관 지어 내 삶은 어떠한가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나는 청춘 동안 내 삶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었는지, 내가 넘으려고 한 나무와 벽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치유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단 상처 받지 않으려 피해온 것은 아닌지, 내가 처음 죽음의 장면을 만난 순간은 어떠했는지, 내가 진정 목적 없이 즐기는 놀이는 무엇이 있는지,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젠가를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등등.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저자가 스스로에게 했다는 물음들을 나에게 던져보는 것도 그것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은 내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나는 어떤 놀이에서 즐거움을 얻고 살았으며 어떤 놀이를 더 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가?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식이 만족스러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엔가 속해 있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손잡으려는 의지를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이 지레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산 것은 아니었던가? (p.62)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젠가 트레바리 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때 나는 지인들에게 인사하는 것, 내가 모아 온 것들을 좋아해 줄 만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 등을 이야기했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날에 나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으려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들이 모여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테니.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p.47)


나에게 왔던 이 책처럼 나도 하루하루의 내 삶을 통해 나의 의미를 다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 트레바리 나초-끼리 1909-12시즌 첫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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