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과 향이 데려온 그날의 나
원래 노래방 기계 속에는 멜로디만 존재했고 가사책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화면이 아닌 책을 보며 부르는 가창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낯설기보다는 왠지 귀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두가 한 화면을 바라보며 온몸을 흔들고 탬버린이 날아다니는 광란의 한국 노래방 문화까지 성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겠다. 노래방 기계의 유래에 대한 관심은 미디음악의 역사를 알아보던 중 난데없이 발현되었다. 영풍전자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노래 연주기'를 출시했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이 기기는 한국에 상륙해 더욱 상향된 시스템을 갖춰나간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1991년 5월, 드디어 부산에 전국 최초의 노래연습장이 들어선다. 공교롭게도 이 해에는 최초의 노래방뿐만 아니라 보란이도 태어났다. 부산 광안리에서 '하와이비치'가 개업한 후로 약 1년 만에 대한민국의 노래연습장 수는 무려 1만 개소를 넘어선다. 그렇게 한국식 노래방 문화와 함께 태어난 나와 내 친구들은 슈퍼만큼이나 노래방이 흔한 나라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내지르는 나만의 것들. 퀴퀴하고 쿰쿰한 비밀의 공간. 그곳에서 비슷한 애들끼리 다양한 취향을 나누며 우리는 자랐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더 이상 노래방을 찾지 않았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나는 성인이 된 후 처음 링 위에 올라간 루키 복서처럼 본격적으로 노래방을 찾았다. 그야말로 '줄기차게'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노래친화적인 삶이었다. 모임이라면 빠질 줄을 몰랐던 20대 보란이에게 노래방이란 항상 못 박힌 막차 장소나 다름없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의 못 말리는 노래방 사랑은 아직 진행 중일지 모를 일이다. 물론 탬버린이 넘나들고 온몸을 들썩거리는 노래방은 여러 명이 모일 때만의 일이었다. 둘 또는 셋이서 방문하는 노래방에서 우리는 마치 다도를 즐기는 예술인들처럼 각자의 앞에 커피나 맥주를 놔두고 서로의 노래를 들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 시절 노래방은 우리만의 작은 무대이자 클럽이자 찻집이자 아지트였다.
가까운 이들과 매일같이 찾는 노래방에서는 서로의 취향이 거의 완벽하게 파악된 상태이므로 사실상 새로운 노래를 접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여럿이 모일 때는 다르다. 자주 만나고 자주 마셔도 이 친구가 무슨 노래를 듣고 걷는지, 자는지, 우는지는 알 일이 없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으로 노래방을 찾으면 우리는 저마다의 작은 무대에서 파르르 떨리는 가슴을 안고 각자의 취향을 꺼내 보여준다. 술을 왕창 마셨어도 어쩔 수 없다. 모름지기 데뷔 무대는 떨리기 마련이다.
영 내 취향이 아닌 노래가 나올 때면 휴대폰을 보거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닌 노래인데도 홀딱 반해버려서 순식간에 취향의 영역이 몇 배로 확장되는 경험도 하게 되는데. 내 고고하고 편식 없는 음악적 취향은 정말이지 쿨, 삼오, 페스티벌 노래방에 뿌리를 두고 전국 각지 노래방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게 분명하다. 특히 동네 친구들과 자주 갔던 삼오 노래방은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나만의 쿰쿰한 음악실이었다. 너무 자주 간 나머지 삼오 사장님이 나를 며느리 삼으시려 한 적도 있었다. 훗날 사장님께 남편 될 사람이라 소개하며 정환이와 함께 삼오를 다시 찾았을 때, 사장님이 지으시는 슬픈 웃음을 보고 '진.. 진심이셨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하로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어항냄새가 가득 퍼지는 그곳. 나는 그곳에서 좋은 노래를 건져와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영원히 들었다.
가끔은 내 정서 그 자체인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창법으로,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르는데 왠지 평생을 들어왔던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던 곡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김광진이 부른 '솔베이지의 노래'는 32번째 가을을 맞은 내가 매해 이맘때쯤마다 종종 듣고 있는 곡이다.
뒤돌아보면 보이는 자리는
그대를 매일 기다리던 곳
쉬어 가던 큰 나무 그늘도 그대로
이제는 그대 돌아온다 해도
날 알아보기는 힘들 거예요
이미 나는 작은 꽃이 되어 시들어
서글퍼 내 운명의 사람 내게 돌아와요
매일같이 기다린 그대이지만, 돌아온다면 자신을 알아보기 힘들거라 좌절하는 화자. 시들어 서글프지만 그럼에도 그대가 돌아오길 바라는 화자. 화자의 마음은 김광진의 목소리, 커다란 나무 위를 지나는 바람 같은 멜로디, 그리고 내 친구 유빈이의 목소리를 타고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해외 어느 클래식 음악의 번안곡일 거라 생각했는데 2002년도의 김광진이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한 작품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쯤 듣는 이 노래는 왠지 들을 때마다 마음에 바람이 분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바람. 그리고 이 노래를 나에게 불러주었던 유일한 사람도 생각이 난다. 못 본 지 몇 년 된 친구가 아님에도 유빈이를 보고 싶게 만드는 곡이다. 심지어 우리는 다음 주에 각자의 따끈한 운전 실력과 오래된 중고차를 끌고 고성의 한 찻집에서 만날 예정인데도 말이다. 내가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을 때 보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유주가 아닌 유빈이일지 모른다. 유주의 이름이 유빈이었던 시절. 우리가 뚜벅이였던 시절. 우리가 학생이었던 시절. 심각하게 철없고, 모자라고, 따뜻하던. 작은 것에도 모든 것이 요동치던 시절.
그토록 뜨거웠던 노래방 사랑은 팬데믹과 함께 반쯤 잠들었지만, 노래방에서 태어난 애청곡과 애창곡들은 여전히 잠들지 않고 내 곁에 있다. 때마다 건져 올려 그때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