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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Oct 16. 2021

<sound and scent> 동침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자는 것에 익숙했다.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룸메이트 요청을 해도 고민 없이 거절한 기억이 있다. 침대는 물론이고 누군가와 한 공간을 나눠 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동침이 싫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던 모양이다. 말다툼 한 번 없이 든든한 우정을 쌓아온 친구였지만, 함께 사는 순간 나의 엉뚱한 예민함을 온전히 목격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이유는 많다. 동침의 대상이 친한 친구든, 남자 친구든, 동생이든, 엄마든, 아빠든 나는 누군가와 곁을 닿아가며 잠드는 것 자체에 쉽게 곤란함을 느낀다. 그런 내가 지난해부터 정환이와 결혼 전 동거를 시작했다. 연애 때처럼 일주일에 한 번쯤 나눠 쓰는 침대는 문제가 없었다.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주말을 빌어 함께 엉겨 붙어 자는 것이 얼마나 달콤했던가. 하지만 그게 일주일 전체의 잠자리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필 집콕의 의무가 일상화되었던 작년 이맘때쯤, 나는 격하게 불편한 동침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매일 겪어야만 했다.


동침의 불편함을 잠시 걷어내고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이 비슷한 시간에 자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분명 건강하고 효율적인 일이다. 어차피 나눠 쓰는 침대. 어차피 합친 살림. 각자의 격무를 마치고 남는 하루의 몇 안 되는 시간들을 더욱 요긴하고 소중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워킹 타임이 현저히 다르다면, 같이 잠들고 같이 일어나는 일은 별안간 비효율적인 숙제가 된다. 하지만 2021년, 나는 매일 그 숙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노력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같은 양의 일도 밤이 되면 약 두 배의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지독한 야행성이다. 그러나 신혼 뽕에 가득 찬 새신랑 정환이는 야행성인 새신부가 본인과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어쩌면 완전한 욕심이다. 그래도 나는 그의 욕심에 나름 충실히 따라주는 편이지만, 결과까지는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한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는 일에는 실패할지언정, 어쨌든 우리는 같이 눕는다. 자정이 되면 항상 침대 맡 조명을 켜 두고 서로의 다리를 비비며 각자 휴대전화를 본다. 깃털보다 가벼운 수다를 떨기도, 가볍지 않은 스킨십을 나누기도 하며. 그렇게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 바 없는 동침을 매일 준비한다. 같이 잠들지도 않을 거면서 같은 시간에 눕는 일은 생각보다 꽤 고단하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그렇게 누운 채로 정환이가 잠든 이후의 몇 시간을 서성인다. 휴대전화로 내일 할 일을 체크하거나, 루미큐브를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그러다가도 영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그의 숙면을 뒤로하고 침실을 벗어나 일을 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럼 나와 다른 몸냄새를 가진 정환이가 꿈을 꾸고 있다. 같은 바디워시로 씻어도 각자의 몸에 다르게 배기는 향이 있다. 정환이가 뒤척일 때마다 특유의 폭신한 비누향이 이불 밖으로 팡팡 퍼진다. 담배 피우지 않는 남자 몸에서 날 수 있는 최대치의 좋은 향이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 꿈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나는 천천히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꽤 즐거운 꿈을 꾸고 있길 바라며.


어쨌거나 이 행위의 가장 큰 혜택은 서로가 서로의 잠든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잠든 아기만 예쁜 건 아닌가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 큰 성인도 그렇게나 예뻐 보인다. 숨을 색색거리고, 코를 골기도 하고, 가끔씩 터무니없는 잠꼬대도 하는 정환이의 모습을 나는 본다. 자정으로부터 여서 일곱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정환이는 퉁퉁 부은 채 단잠에 빠진 아내의 붕어 같은 얼굴을 잠시나마 만끽한다. 입술을 맞대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 동거인의 아침 흔적을 나 역시 꿈처럼 기억한다. 그가 말하기를, 대체로 오전 7시의 나는 그에게 '건드리지 말라'며 화를 내는가 하면, 또 가끔씩은 지긋이 미소를 짓기도 한다고 했다. 같은 입맞춤인데도 극명한 반응을 보이는 나는 대체 아침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던 걸까.


그렇게 나가기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모임을 좋아하는 내가 이 동거인과의 동침 없이 지루한 팬데믹의 밤을 어떻게 보냈을지는 대충 상상이 간다. 편안한 혼자만의 밤이 되겠지만, 또한 굉장히 무료하지 않았을까. 어찌 됐건 같이 자는 일은 어렵지만, 같이 눕는 일만큼은 얻는 것이 참 많다. 그러므로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반복하고 싶은 일이다.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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