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따반까지의 산악행군

2016년 9월 29일, 8일 차, 사파

by 오상택

사파는 베트남에서는 고산지대로 속하는 축이라 밤이 쌀쌀하다. 물론 나나 서양인에게는 그냥 서늘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끝내주는 뷰를 보며 아침을 맞이 했고, 호스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 역시 정갈하고 좋은 풍경을 보며 먹었기에 기분도 좋았다. 어젯밤은 굶지도 않고 쌀국수를 맛있게 먹었으니 힘을 내서 상쾌하게 나 홀로 트래킹을 즐기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정 : 사파 → 따반 마을



몽족과 함께(?) 걷는 지옥의 산악행군

난 이미 호스텔에서 만났던 독일인에게, 사파에서는 어떤 호스텔도 예약하지 말고 그냥 따반 마을로 가면 숙소가 널렸으니 하루쯤은 거기서 자라는 말을 들었었다. 고로, 급하게 예약한 사파의 1박을 제외하고는 2박을 타반에서 머물거나 1박 타반 후 사파 재복귀 후 사파의 다른 지역의 폭포 등을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비가 예정되지는 않았지만 구름이 많다고 했기 때문에 시야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전능하신 여행자의 신, 구글맵 님께서는 타반까지는 약 9킬로미터, 3시간 안쪽으로 주파 가능한 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구글맵 님을 믿고 천천히 산행에 나섰다.

IMG_1279.jpg 길을 막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사파 전경. 저 작은 집 중 하나가 내 숙소였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고프로님을 또 떨어뜨렸고, 안경닦이도 이 즈음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의 첫 번째 분실품. 원래 이런 사소한 것이 없어지면 더 생각이 나더라. 아무튼 고프로를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길을 나서려던 찰나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이 다가왔다. 사파 근처의 원주민인 몽족의 여인들이었다. 굉장히 친절한 얼굴로 "Hi, What your name?"이라고 묻길래, 나는 이미 익히 듣은 바 내가 가려던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거긴 통행세가 있어, 우리랑 가면 무료로 갈 수 있어."라는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을 했다. 사실 인터넷에서도 유명한 바이다. 외지인이 모토사이클이 다니는 공용도로를 이동하게 되면 통행세를 받는다는 점은. 하지만 나는 혼자 걷고 싶어서 "나는 이 방향으로 혼자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며 길을 알려주었다. 이것이 지옥의 산악행군의 시작이었다.

IMG_1289.jpg 몽족 아주머니 둘. 한 명은 이름이 '부'였고 나머지 한명은 잘 모르겠다. 산악행군의 인도자들.

그러든가 말든가 이어폰을 꽂고 있었지만 그들이 먼저 앞질러 가면서 이미 길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길은 구글맵에는 표시되지 않은 길이었다(구글맵 상에서는 나는 산 안에 있던 것이다). 그들은 리얼 무료도로로만 산행을 한 것이다. 더운 긴팔과 미끄러워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도 척척 날아간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비 오는 날 이후 이 사람들을 따라갔다면, 굉장히 주의할 것. 미끄러워서 낙상이 잦은 구간이다. 아무튼 그들의 덕분에 멋진 산세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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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에는 몽족과 관광객이 쉴 수 있는 말 그대로 휴게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속적으로 이동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거기서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었을까, 그 아이들은!

IMG_1296.jpg 흙, 나무, 강아지 밖에 없는 이 땅에서 아이들은 무엇때문에 저리 햅복해할까

같은 시간, 나는 너무 걱정된 나머지 계속 구글 지도를 확인한다. 방향은 얼추 맞게 가는데 걸어온 길이 수 킬로미터... 불안감에 휩쓸렸지만 여기서 저 사람들이 날 버리고 가면 난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나침반에 의존해서 항해하던 대항해시대처럼 직접 방위를 보고 찾아나가야 했기 때문. 다행히도 잠시 후 어느 지점에서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타반이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때가 도착 3km 남은 지점이었다.

IMG_1307.jpg 그 땐 몰랐다. 저 검은 옷이 저승사자 복장인 줄은.... 하필이면 풍경은 더럽게 좋다. 고생하기 딱 좋은 날씨



GO BACK, 뒤에도 즐거움은 있다

사진 속 저 다리를 건너자마자 그녀들은 자신의 마을에 가서 자신들의 기념품을 사달라고 요구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정말로 환전한 돈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베트남 화폐로 환전했던 돈이 숙박비를 내고 나면 거의 업슨 셈이었기 때문.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계속 자신들의 마을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도 그냥 일단 따라가서 돈 없다고 하거나 애초에 그 사람들이랑 같이 안 가면 될 것을 괜히 어정쩡하게 해서 일을 만든 것 같아 여러모로 짜증이 나 있었는데, 내가 돈을 안쓸 사람처럼 보였는지 'GO BACK'이라고 외쳤다. 오면서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들이 GO BACK 한 마디를 그렇게 무섭게 내뱉을 수 있을까. 나도 나대로 성질이 나서 정말 뒤로 돌아서서 걸었다. 그녀들은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머물고서야 사라졌다. 사파에서의, 아니 지금까지(얼마 안 되지만) 여행의 기억 중 최악의 경험이었다. 한국말로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줄 것을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때, 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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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반 마을을 거치기 전 라오카이라는 마을을 거쳐야 하는데, 내가 있던 곳부터 라오카이 마을까지 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이 개울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중간에 호수처럼 물이 깊게 고인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마을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었던 것. 나는 무엇인가 홀린 것처럼 그 물가로 갔고, 신발만 갈아 신은 상태에서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깊어서 수영을 잘 못하는 나는 꽤나 고생을 했다. 아이들은 수영을 어찌나 잘하던지. 처음에 고프로를 내가 들고 다이빙을 했는데 제대로 찍히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고프로를 주고 부탁했더니 멋있게 촬영에 성공. 물에 뛰어들고 아이들과 놀면서 몽족 여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로 입은 내상이 싹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즐거움은 내가 가려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고, 옆이든 뒤이든 어디에나 있었던 것이다.

굳은살이 생긴 자리에 물집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힘겹게 발을 옮겨 3km를 더 걷고서야 나는 타반의 홈스테이에 도착했고,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구름이 너무 많은 타반의 풍경에서 별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아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잠을 청했다.


+)

1. 사파에서는 트래킹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대여도 가능하니 확인하되, 도로마다 통행세를 받는다. 내가 아직까지 알아낼 수 없던 것 중에 하나는, 과연 도로를 걸어서 이동할 때도 통행세를 받는지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난 산악행군 수준의 코스를 갈 필요는 없었다.


2. 사파에서의 일정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아쉬운 것 중에 하나는 폭포를 가지 못했던 것. 사파에는 Silver falls와 Love falls가 있는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가보고 싶었는데 후술 하게 될 일정의 변경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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