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처음, 새로움, 그리고 아일랜드

2017년 4월 11일~14일, 여행 202~205일차, 아일랜드 더블린

by 오상택

독일을 떠나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만난 나라는 아일랜드였다. 이번 여행 유럽에서 두 번째로 향하는 나라라지만, 나에게는 첫번째나 다름없었다. 독일은 이미 수차례 방문한 전력때문에 크게 새로움이 오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아일랜드가 더 새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휴가 나온 대학동기 J와 여행하는 첫 여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베트남을 함께 여행했던 민우가 있지만, 그 땐 너무 짧았던 데다가 여행 보단 휴식의 느낌이 더 강했으니까. 이윽고 비행기가 내려왔고, 내 여행에 최초의 본격 영어권 국가, 아일랜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나는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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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흔히 대영제국의 일부로 알고 있는 사람들(나도 그랬다)이 많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다른 국가이다. 자기들 언어도 아직 남아 있고, 국기, 화폐, 단위 등도 모두 다르다. 물론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국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다가도 그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의 안내LED에 적힌 문구가 그랬다. 순간 '분명 영어가 적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싶은 아일랜드의 언어가 적혀 나온다.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가고 있었다. 엄연히 다른 나라임을 굉장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그것 보다 아일랜드에 처음 느끼는 감정은 "혜자"였다.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이토록 콸콸 터지다니!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사실상 전기와 와이파이의 노예로 살아가는데, 버스에서 와이파이를 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기에. 내가 본격 선진국에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독일은 한국처럼 이통사를 쓰고 있는 경우에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데다가 전철에선 와이파이도 안된다!) 아마 당분간은 '아일랜드뽕'에 취해 살 것 같다. 숙소 역시 대만족이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호스텔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리모델링을 깔끔하게 해서 기업형으로 정돈과 관리가 아주 우수한 호스텔이었다. 이 이후로도 이런 고급(?) 호스텔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거리의 풍경부터 느껴지는 문화, 숙소. 어느 것 하나 첫 인상이 나쁜 것이 없었던 아일랜드였다.


여행 중 친구를 만나는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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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축덕(축구덕후,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열성층을 일컫는 말)'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콥'으로 불리는 리버풀의 광팬인 J는 경기를 보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선후관계가 이상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일 것이다) 영국에 왔다. 경기는 매일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경기와 경기 사이에는 텀이 있고, 이 때 나와 함께 아일랜드 여행을 오게 된 것이다. J는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군입대전 한 학기의 학생회 활동으로 알게되었고, 직접적인 교류가 많지는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 몇 번의 주효했던 연락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들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J의 친척동생을 가르쳤던 것도 주효했다. 오랫만에 오랜 시간을 갖고 친구와 이야기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퇴사를 했고, 왜 각자 여행을 시작했으며 하는 중요해 보이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누구의 근황을 묻기도 하고, 누구와 나는 어떻게 지내는 지도 이야기를 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인생의 흑역사가 모인 정수, 싸X월드 사진첩을 뒤져가며 '그땐 그랬지'하며 까르르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제시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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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583.jpg 스콘과 차를 마시며, 기네스 한잔을 마시며. 그냥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여행의 다른 방식인 것.

애초에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만큼은 계획파에 조금 더 기울어진 나였다. 처음 나갔던 배낭여행이었던 일본 간사이 지방을 생각해 보면 30분 단위로 계획을 짰던 사람이고, 유럽여행도 꽤 여행 일정이 구체적이었다. 이번 세계일주도 나오기 전에 대륙-국가-도시별 기초 계획은 잡아두고 왔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킬 수 없게 된 와중이었는데 더블린에서 내 생각과 다르게 엄청 느리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친구와 여행하며 나눈 대화 속에 답이 있었다. 사실 여행에 규칙이라는 건 없다.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정수다, 이런 것이 없는 것이다. 휴가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나온 휴가에서 어떤 문화재나 미술관 등을 들러지 않는 사람도 모두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일랜드에 있던 그 몇일은, 다른 나라에 녹아 (물론 완전히 녹지 않은 불완전 용해 같지만) 지내보는-그렇다고 살아보는 것과는 다르다. 살게 되며 마주치는 여러 문제점들은 없이 지내니까- 방식의 그 것과 같았다.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 먹고, 산책을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요리하는. 그 지역에서 무언가에 치이지 않고 지내 보는 방식의 여행을 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친구는 그렇게 이번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을 보내고 싶었다고 했는데, 친구에게 새로운 여행 방식을 제시 받은 기분이었으며 그것이 기분 좋은 방식이어서 즐거웠다.

IMG_5574.jpg J와 같이 갔던 킬마인햄 감옥에서 꼬마아이. 분명 나를 본 것이다. 분명하다

P.S.

친구 J와 있던 일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겠지만 재밌는,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처음 만난 날의 저녁이었다. 여행하면서 요리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 그렇게 떨렸던 적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우꾼 같은 여행자 동지들을 위한 식사, 혹은 나 혼자만의 식사였는데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나 하는 식사였기에 엄청나게 맛있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손이 떨리고 순서가 꼬일 정도로 말이다. 친구는 결과적으로 맛있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친구와 헤어진 지금까지도 하하. (진짜 괜찮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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