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5~18일, 여행 206~209일 차, 영국 리버풀
모든 나라가, 모든 여행이 그렇겠지만 그 나라, 그 도시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쉬움이 짙어진다. 더블린을 떠나야 하던 날, 나와 J도 그랬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더블린을 뒤로하고 간 곳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었다.
횟수로는 두 번째 방문인 영국인 데다가 이미 영국 여행을 하고 있는 J에게 영국은 아무 감흥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리버풀은 첫날 비를 뿌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친구는 리버풀 FC의 원정경기를 보기 위해 인근 도시로 이동했다. 나는 리버풀에 혼자 남아 리버풀 시내를 돌아다녔다. 계획에 전혀 없던 나라인 데다가 사전 정보도 완전히 없는 도시에 온 것은 우간다 이후로 처음인 듯했다. 친구는 리버풀 FC로 시작된 영국 사랑이 지극했다. 나도 영국에 친척이 있고 가본 경험이 있는 데다가 영어권 이기 때문에 생활의 큰 부담이 없어 영국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영국을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처음에는 크게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가 말했던 몇몇 이유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혼자 돌아다니면서도 왜 친구가 리버풀을, 영국을 좋아하는지를 중점에 두고 돌아다녔다. 영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영국, 특히 리버풀을 좋아해야 할 이유로 관찰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교통인프라가 좋다는 점, 영어가 통하기 때문에 여행 난이도가 많이 낮다는 점, 숙소는 비싸지만 그만큼 전반적인 치안과 청결도가 상당하다는 점, 선진 문화의 시발점으로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기원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나에게 아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친절함의 결이 다르다'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없던 상황이 있었다. 핸드폰마저 배터리가 없어서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했을 때였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라면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곳이 심지어 런던이라도! (런던에 대한 환상을 많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겪은 런더너들은 굉장히 바쁘다)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너 무슨 일 있어? 괜찮다면 내가 도와줄게'하며 다가왔다. 나의 목적지를 듣자 그는 '내가 모르는 곳인데 잠깐만'하더니 길가는 사람을 잡아 세워 그곳을 찾기 시작한다. 이런 풍경이 사실 터키나 아프리카에서도 관찰되는 태도지만, 그 느낌이 뭔가 다르다. 흔히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말하는데, 영국 사람들의 평소 행실이 신사 같다기보다는, 이런 친절이 굉장히 생활적으로 묻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편견과 다른 친절함 역시 갖고 있기에. 아, 그런 것이다. 친구는 어떤 풍경이나 외적인 모습보다 그들에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격식이 있는 이 곳을 사랑한지도 모르겠다.
리버풀에 지내는 5일 중 3일은 호스텔이 아닌 Airbnb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물론 호스텔보다 조금 더 나가는 가격이지만 둘이서 나눠서 내면 부담이 덜 하니까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선택은 Sick! 아주 좋았다. 큰 집은 아니었지만 둘이 지내기에는 과분한, 그러니까 4인이 조금 더 적합했을 방환 경과 큰 도마와 칼이 없어 아쉬웠지만 모든 커틀러리가 정갈하게 갖춰져 있었고, 깨끗하고 좋았다. 위치가 조금 멀었지만 버스로 한 번에 터미널까지 갈 수 있어서 이후 일정에도 굉장히 적합한 위치였다.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도 결론적으로 밥을 해 먹으면서 어느 정도 재정적으로 세이브를 하며 지내긴 했어도, 먹고 싶은 걸 굳이 안 먹지는 않았다. (친구 입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먹고 싶은 재료 실컷 사서 필요한 술, 음료수, 과자들도 사 와서 먹으면서 편안하게 있었다. 사진으로 놓고보니 내가 요리요정이었나 시기도 하다. 맛있게 먹어주어 고맙다 J!
유럽 와서 이렇게 돈을 쓰면 남미에서 뭘 쓰나 싶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아프리카를 거쳐 온 나에게는 꽤 큰 지출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항상 절약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까. (물론, 저렴할 때 쓰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깨달은 게 너무 낮은 뒤였다.)
친구가 리버풀 FC의 경기를 보고 돌아왔고, 그다음 날이 우리의 마지막 동행 일정이었다. J는 이미 영국 내에서의 일정이 충분히 즐거웠다고 했다. 나와 함께해서 신기한 경험이었고 또한 재미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여러모로 미안한 점도 있었다. 친구가 즐기려는 여행의 방식에 내가 끼어들어 그의 여행을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 그로 인해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또 미안해지는. '미안해할게 뭐 있냐, 그냥 여행 같이 하는 건데. 그리고 나도 다 좋았어'라고 이야기해 주는 친구의 한 마디에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밤이 맛있게 요리한 안주와 술 한 병과 어우러져 행복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