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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May 31. 2017

117. 도시에서 매력을 찾다, 로터담

2017년 4월 25~27일, 여행 216~218일 차, 네덜란드 로터담




브리스톨을 떠나 네덜란드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스페인으로 가는 것이 맞지만, 회사에서 휴가를 오실 임선배를 뵐 요량과 더불어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동생 Min을 보러 가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2016년의 탄핵 정국으로 인해 앞당겨진 대통령 선거에 참석하기 위해서 여기로 왔다. 스페인에서도 해도 됐지만 여러 가지의 의미부여랄까. 안타깝게도 암스테르담의 숙박비가 미치도록 비싸서 암스테르담에서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로테르담으로 숙소를 잡았다. 잡고 나서 보니 Min이 지내고 있던 곳도 여기였다. 우연이 맞아떨어지는 이 도시에선 내가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현대 건축의 실험장

말은 간단하게 했지만 네덜란드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2시에 출발한 버스가 다음날 새벽 5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니 얼추 15시간 정도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예전에 런던에서 파리 가는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에는 버스가 배에 실리고 승객들은 모두 내려 배에 승선하는 방식이어서 불편함이 덜했는데 이번 버스는 그대로 버스가 실린 채로 이동해야 했다. 인터넷도 안되고 좌석도 좁아 불편이 상당했다. 새벽에 도착한 로터담 터미널은 어찌나 추운지. 영국 날씨 변덕 많고 안 좋다는 이야기는 네덜란드로 옮겨가야 할 듯싶다. 호스텔이 체크인 시간이 안되면 손님을 받지도 않는 데다가 새벽에는 직원이 대기하고 있지 않아 전철역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뒤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간 숙소가 너무 디자인이 예뻐서 어디 나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였다. 시간을 내서 도시를 둘러보니 로테르담은 거짓말 살짝 보태서 디자인이 같은 건물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굉장히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의 건축물들이 다양했다. 

세계 1, 2차 대전 이후 (특히 2차 대전) 로테르담의 교회건물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폭격을 맞아 과거의 건축물이 남아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근/현대 건축가들이 도시 재건을 할 때 여러 건축 방식과 디자인들을 실험적으로 적용했다고 한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조사로만 보던 집도 보고, '저런 구조로 건물이 유지가 되나' 싶은 모양새의 건물들도 보니 정말 신기했다. 건축가들의 위대함이 실로 느껴지는 신기한 도시였다.


왕의 날에 조용한 도시는 없다

암스테르담의 숙박비가 오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Koningsdag, 영어로는 King's day. 네덜란드 국왕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이 날은 네덜란드에서는 가장 큰 국경일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난 축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붐비는 것부터 물가가 뛰어오르는 것 등이 나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마침 호스텔 직원이 말하길 "아마 로테르담이 그래도 대도시들 중에선 가장 조용할 거야, 암스테르담도 덴하흐(덴하그 혹은 헤이그) 뭐, 덕분에 아름다운 로테르담에 있었던 거지만. 아무튼 여기에서 지내고 있는 Min이 자신의 친구들과 Koningsdag을 같이 보내자고 해서 졸지에 따라나갔다. 호스텔 직원의 말은 거짓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주황색 코스튬을 입고-네덜란드의 Symbol Colour니까- 거리에 나와있었고, 온 동네 펍은 가게를 열고 밴드를 불러 음악을 연주했다. 나도 Min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휘적이며 돌아다녔다. 펍에서 멈춰 한창을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때우고 다음 펍으로 이동하는 것을 하루 종일 반복한다고 했다. 재밌는 점은, 나는 그날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술이든 먹을 것이든 거기 있던 친구들이 계속 주곤 했는데 '돈을 언제 주면 되니'라는 나의 질문에 '넌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신경 쓰지 말아라'라고 했다. 정확한 이유를 답해주지 않던 찰나, 길거리에서 주황색 선글라스를 말도 안 되는 가격-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장난감 같은 퀄리티의 물건을 10유로에 팔고 있었다-에 팔고 있었는데 그걸 덥석 사는 외국인 친구에게 잽싸게 '그걸 왜 사는 거야? 술도 그렇고 말이야.'라고 물었다. 대답이 가관이다.

"우린 이 날 돈 쓰려고 1년을 일하는 거야. 네가 마시는 술도 널 대접하려고 1년 동안 일한 것이고!"

시끌벅적한 그 날은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유쾌함과 친절함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하지 않던 하루였다.


도시 자체가 가지는 매력을 찾다

왕의 날 이후로 체크아웃이었지만 마땅히 숙소를 옮길만한 도시도 없었고, 로테르담의 호스텔이 예뻐서 그냥 더 지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숙소 호스트들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대여하면서 숙박업도 겸하고 있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영상 아티스트들이 대거 왔어서 회의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호스텔이 이뻐서 한참 앉아있던 호스텔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마 이날부터였을 것이다. 도시를 천천히 걸어 다니고, 호스텔에서 차를 내려마시고. J가 말했던 것처럼 천천한 리듬 속에서 도시가 가지는 매력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여행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 것인지. 그리고 이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 여행에 대한 작은 의심이 피어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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