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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02. 2017

124. 가우디, 와인, 성공적?

2017년 5월 17~19일, 여행 238~24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가우디이다. 바르셀로나에는 그가 남긴 건물들이 유난히 많다. 친구 중 하나는 유럽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도시를 바르셀로나를 꼽았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바르셀로나를 유독 아름답게 만든다고 했다. 어땠길래 바르셀로나가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건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전날 도시락을 해두고 아침 일찍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무엇이 그토록 아름다웠나

도시락을 해서까지 구엘공원을 갔던 것은 오전에는 구엘공원이 무료개장이기 때문이었다. 볶음밥과 올리브가 들어있는 통을 들고 꾸덕꾸덕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1900년 스페인의 구엘 백작이 가우디에게 의뢰해 만들었다는 공원이다. 공원 전체가 유명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타일로 만들어진 공원이 입구 부분일 것이다.

구엘공원 전경. 무료입장 시간 이후가 되면 관광객들이 단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타일이 이뤄내는 색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창적인 느낌이다. 특히, 무료입장시간에 찾게 되면 해가 올라오면서 점점 타일이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공원 내부의 공간들은 나에게는 평범한 공원처럼 느껴졌다.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신경 써가며 가우디가 만든 세부 요소의 극치라고 불리는 공원임에도 그런 세부 요소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침으로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며 벤치에 누워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 것 때문에 그렇게 바르셀로나가 예쁘다고 했던 걸까?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다음 날에는 가우디가 만든 대표적인 건축물이 하나 더 남아있다. 성 파밀리아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아직도 완공이 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는 바르셀로나 중심에 있는 대 성당이다. 밖에서부터 굉장한 위용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들어간 모든 요소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정면에서 보는 인물들의 조각상은 성경 내용을 축약해놓은 것이라던가, 새겨진 글씨의 의미라던가 하는 것들이 모두 유의미한 것이다.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성당에 의미를 부여하는 '미친 디테일'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껴진다. 구엘공원에서의 느낌보다 더 웅장하고 놀라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엄밀히는 이쪽 사이드는 뒷면이다.

사실 진짜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빛의 성당'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투영한 빛이 그려내는 그 모습이 환상적이기 때문이었다. 예술품이나 건축물에 큰 경탄을 못 느끼는 나도 두 시간여를 계속 그 성당 내부를 뱅글뱅글 돌았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아쉽게도 아주 맑지는 않아서 빛이 시간에 따라 움직이면서 비추는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부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날씨가 더 맑은 날엔 스테인드 글라스를 뚫고 나오는 빛이 바닥에 그리는 색의 예술이 펼쳐진다.
내부 전경. 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천장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끊임없이 탐닉한다.

몇 시간을 돌며 그 빛을 보았을 때쯤은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했다. 좋은 날씨가 반겼고, 구엘공원의 그 모습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현란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빛은 따뜻했기에, 그것이 바르셀로나가 아름다웠던 이유.


가우디와 와인, 친구를 만들어주다


첫날 구엘공원에서였다. 도시락을 먹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두 한국인이 모습을 보였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말을 놨지만 어색한 듯한 분위기에서 '저 사람들도 각자 온 사람들이다!'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보통 이런 말을 내가 먼저 걸게 되면 같이 와서 합이 오래 맞아온 사람들은 으레 거절한다. 하지만 그 둘은 흔쾌히 '네! 좋아요!'하며 여기서도 찍어주세요, 저기서도 찍어주세요 하면서 활기차게 받아주었다. 알고 보니 둘도 각자 혼자 온 여행자들이었다. 약에 취해 사는(?!) 호영이와 일에 치여 사는 (!!) 선미는 나에게도 함께 다니자며 먼저 손을 건네주었다! 원래는 어디, 어디를 가려고 했다는 그들에게 점심에 간단하게 와인 한잔 어떠냐고 하자 단숨에 받아버렸다. 우리는 여행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이야기부터, 여행에 나와서 보는 한국, 연애 이야기, 하여간 주제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털어버렸다.

호영이와 선미. 와인이랑 맥주 사서 방에서 먹자고 했을때 기쁘게 받아주어서 고맙다

점심을 먹고 술기운이 올라온 채로 산책을 하다가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자!'라는 제안에 저렴하게 타파스를 내주는 곳에서 우리는 또 술자리를 이어갔다. 복작복작한 분위기 속에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길게 여행하는 나를 응원해주기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선미와 호영이를 위로하기도 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만남이 너무 좋다. 단순히 하루, 이틀 보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큰 매력 중 하나니까. 한국에 가면 오늘 다 섭취 못한 알코올, 링거에 꽂아가며 섭취하자며 MT 약속까지 해두며 아이들과 헤어졌다. 가우디의 건축물, 그 앞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와인 한 잔, 모든 것이 성공적인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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