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일, 10일 차, 하노이 그리고 버스
나의 여행자 모드―늦게 자고 일찍 깨는, 여행 한정이다―는 환경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트윈 베드의 평온함 호텔임에도 나는 기가 막히게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오전에 민우와 하노이 북부의 호찌민 묘와 문묘를 다녀오고, 오후에 짐을 챙겨서 저녁 전에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대여정을 출발하기로 되어있다.
일정 : 성 요셉 성당 → 호찌민 묘 → 문묘 → 루앙프라방행 버스
사실 일찍 일어난 데에는 호찌민 묘 방문이 가장 크다. 베트남 국민에게는 영웅과도 같은 호찌민의 시신이 보관된 호찌민 묘. 꾸준힌 방부처리와 관리로 아직도 시신이 온전하다는 호찌민의 시신을 보려먄 극히 제한된 입장시간(06:00-11:00)에만 관람이 가능하며 짧은 바지나 슬리퍼 같은 복장으로는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호찌민 묘가 멀어서 거기까진 택시로 이동하고 이후는 도보로 가기로 했다. 호찌민 묘의 위치를 기사에게 설명해 주던 민우는 뭔가 수상함을 느꼈다. "금일 휴업이라는데?" 불현듯 전 하노이의 숙소에 사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시신 손상을 염려해 월-목의 개장은 없다는 말. 순간 나 자신에게 반성이 됐다.
여행자에게 가장 확인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의 동선 상의 포인트에 대한 이슈 체킹. 민우에게 어마어마하게 미안해지면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스스로에게 반성하게 됐다. 사실 여행이 길어지면 요일 개념이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부분을 챙기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랑 같이 보려고 일정을 바꾼 민우에게 미안함이 컸다.
아쉬운 대로 호찌민 묘의 외관만 보고 문묘로 이동하였다. 문묘는 철학자들을 기리던 공간. 다행히 여기는 개장이어서 민우와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여행사로 가는 길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하노이 시내의 기찻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철길 마을과는 완전히 다르며, 지금도 이 근방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민우는 "나이 먹으면 편한 여행이 좋긴 하더라. 그래도 이런 풍경 자체는 참 좋은 것 같아."라 말했다. '마음 맞는 친구랑 여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느꼈다.
오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나는 루앙프라방행 버스를 타기 위해 호텔 로비에서 민우와 헤어졌다. 이제 가면 내년에나 볼 친구. 마치 부천 골목에서 술 먹고 헤어지는 것처럼 인사하고 돌아섰다. 픽업 맨은 나를 골목 구석에 데려다줬다. 루앙프라방행 버스를 타기 전 픽업 정류장에서 대기하는 것이넜다. 그곳에는 나외의 3명의 여행자(한국인은 없었다) 가 더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Caio, 영국에서 온 커플인 Simon과 Clara.
그들도 나도 이 버스가 예측 불허에 위험하단 걸 알기에 모두 불안해했다. "무슨 일 일어나면 서로 돕자. 도착할 때까진 우린 Tourist team이니까."라는 Caio에 말에 어떻게든 가겠구나 싶었다(그런데 Caio가 제일 어리다는 건 함정). 우리가 탈 버스는 사파에서 하노이로 올 때보다 더 불편했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올라온 것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군필 남성이라면 굉장히 양호하다고 외칠 것이다. 다만 불편한 것은 이 버스를 24시간 혹은, 그 이상 타게 될 것이라는 갓이다. 게다가 라오스로 넘어가는 길은 쉽지 않다. 버스에서 틀어주는 노래에 신이 났던 출발 전이었다. 과연 누린 이 분위기를 내일 도착할 때 까비 가져갈 수 있을까.
+) 외국인 4명 외의 영어 사용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베트남 인이었던 Mei. 그녀 덕에 오는 길이 이야기 꽃으로 풍성했고, 중간중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잘 이겨냈다.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