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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30. 2017

142. 스치듯, 벨리즈

2017년 8월 8~9일, 여행 321~322일 차, 벨리즈 벨리즈시티

정확히는 어제, 8월 7일 저녁 버스로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벨리즈로 가는 ADO(멕시코의 버스회사로 시설이 준수한 고속버스) 버스로 국경을 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Brian과 Reika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왔고, 창구에 가서 우리가 구매했던 티켓을 제시했는데, 그때부터 벨리즈가 꼬였다.


I Don't Like Him, Franklin

사실 그 날 낮에 세노테 다이빙을 마치고 나서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당시 다이빙을 지도했던 인스트럭터가 말하길 '열대성 폭우인 Franklin이 유카탄 반도에 접근을 해서 아마 며칠 동안 바다 다이빙은 막히고 세노테 다이빙도 부분적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티켓을 제시했을 때, 직원이 '열대성 폭우 때문에 버스는 하루 지연 도착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가 왔다.

지금 오는 것이 비라고? 영상효과 아니냐? 실화냐?

밤 11시 버스인데 10시에 취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밤중에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숙소를 구하더라도 다음 날 가야 할 버스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와 우꾼은 숙소를 버스터미널로 당일 예약(!?)을 하는 패기를 부렸다. 아침 8시에 국경까지 이동하는 버스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국경에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각자 좋은 침대(?)를 잡아 잠을 청했다. 내일 잘 이동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습기를 안고.


중미의 혈관, Chicken bus를 만나다!

결국 우리는 ADO 측에서 제시한 버스를 타고 국경지역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국경을 통과하는 벨리즈 소속 버스를 타기로 한다. 처음 조사할 때에는 좌석버스인가 싶었는데, 조사 결과 이 것이 치킨 버스(chicken bus) 임을 알게 된다. 치킨 버스라는 것은 버스 회사 이름이 아니라, 중미에서 굉장히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 시내/외 버스의 한 종류를 일컫는 말이다. 북미에서 스쿨버스로 이용되던 차량들을 개조하여 민간 버스로 이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찰 때까지 사람을 태워 마치 닭장에 사람을 태워 치킨 버스라고 불린다.

치킨 버스가 여행자들에게 유명하고 중미의 혈관처럼 불리는 이유는 원하는 모든 곳을 이동할 수 있는 최고의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원하는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지만, 벨리즈는 영어 문화권이기 때문에 이용에 큰 문제가 없었다.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이 매력포인트! 아무튼 처음 경험하는 치킨 버스를 타고 즐겁게 벨리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잘 지내자, 치킨 버스여!



하루뿐인 벨리즈, 스치듯 안녕

도착하고 나니 하루가 이미 거의 다 가있었다. 다음 날 10시쯤 바로 과테말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벨리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저녁때 잠깐과 다음 날 오전 일찍, 합쳐서 3~4시간이 전부였다. 짧은 시간 벨리즈 시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멕시코보다 확실히 다른 느낌을 갖고 있어서 '이게 중미인가'싶다가 도 영어를 대체로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샌디에이고인가'싶기도 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 있다면, 아래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닐까 싶다. 급하게 버스 터미널로 돌아갈 때였다.

버스 시간을 20분여 남겨두고, 10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황급히 돌아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가 오고 있었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찍고 허락을 받던, 찍기 전에 허락을 받던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서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이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 전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랑 마주 서기 전부터 끄덕이셨다. 그러고 나서 마주한 순간 찍은 사진. 아무리 장기 여행자여도, 백만장자가 아닌 이상 제한된 재정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무한정 여행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각자의 여행 상황에 따라 지금의 나처럼 3, 4시간밖에 한 나라에 실질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에도, 밝게 반겨주는 혹은 좋은 느낌을 주는 이런 경험들이 그 나라의 기억을 완전히 뒤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스치듯 안녕'해 주셨던 그 아저씨 때문에, 벨리즈는 하루뿐이지만 마음속에 잔잔하고도 깊은 감동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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