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상택 Aug 30. 2017

144. 쉘라에서의 보랏빛 추억

2017년 8월 12~13일, 여행 325~326일, 과테말라 쉘라

플로레스 이후의 목적지는 쉘라라고도 불리는 퀘찰테난고였다. 사실 계획을 만들던 당시에 유일하게 나와 우꾼의 희망여행 지역으로 동일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만약 중미를 가게 된다면 이 곳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조금 하고 싶었고, 우꾼은 여기에 펜팔로 알게 된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를 꼭 보기 위해 가고 싶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곳에서 스페인어를 배울 수는 없었지만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소소하게 보내는 일상을 얻기 위해, 우꾼은 원래의 목적을 위해 쉘라로 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게도 소중하고 따뜻한 시간이 되었다.


과테말라에서 친구를 만들다

퀘찰테난고는 해발 2500m 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과테말라에서는 그래도 꽤 큰 규모에 속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중심가가 꽤나 작은 소박한 도시에 가깝다. 그래도 시설이나 치안 면에서는 앞서 방문한 플로레스보다는 더 상황이 나았다. 깔끔한 건물들도 많고 맥도널드도 중심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도 있었으니. 아무튼, 이 도시에 방문한 가장 주요한 목적은 우꾼의 펜팔 친구인 Violet을 만나러 온 것!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우리를 숙소로 안내해주러 온 그녀는 우리를 집에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해주었다. 여러 가족과 지내고 있는 그녀는 우꾼과는 3년가량 메일을 주고받은 펜팔이었다. 한국 가수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다. 다행히 가족들도 우리를 너무 좋게 봐주시고 대접해 주셔서 첫날 짧지만 좋은 시간을 보냈다. 

도착한 날 바로 만났고, 저녁 버스로 조금 피곤해진 우리를 보고 내일의 약속을 다시 잡고 헤어졌다. 예상대로 우리는 꽤나 피곤해서 저녁을 먹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작은 마을 쉘라 산책

느지막이 일어나 Violet과 함께 퀘찰테낭고를 둘러보았다. 사실 볼거리가 다양한 도시가 아님은 진작 알고 있었고, 중앙 광장 주변의 박물관을 가본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과테말라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 여기서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면 정말 편안하고 수수한 풍경을 보며 할 수 있었겠지?

중앙공원은 젊은이들의 아지트요,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사람들의 모든 장면이 소박하고 인상 깊었지만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원래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공원 한편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도, 비눗방울을 좇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평범함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퀘찰테낭고는 쉘라라고도 불리는데, 이 의미가 무엇이냐 물으니 '산속의'라는 고대 마야인들의 언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퀘찰테낭고 자체가 산 위에 있지만 그 안에서도 분지처럼 내부에 분포하고 있어 그렇게 불린 게 아닌가 싶었다. 고산지대는 일조량이 많고 선선하다. 밖에 있어도 덥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으니 피부가 어둡다. 그런 고산지대 사람들의 특징답게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고산지대 사람들 특유의 외형을 띤다. 파키스탄의 훈자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이목구비 때문에 중미임을 느낀다. 

점심 겸 저녁은 Violet 가족과 함께 하기로 했다. 특별히 나와 우꾼이 한국음식을 대접해 주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사실 중미가 워낙 위험하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직 현지 시장을 본격적으로 보질 못했는데 Violet의 인도하심(?!) 덕분에 중미에서 처음으로 현지 시장을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 신기했다. 장 볼거리를 챙겨서 Violet의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과테말라 가족과의 보랏빛 추억

반갑게도 다시 초대해 주신 Violet의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나와 우꾼이 못난 재능을 좀 발휘해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시기로 한 모든 분이 우리 둘을 포함 14명이라는 것(...). 애초에 '아이들이 더 많으니까 많은 양은 안 해도 돼!'라고 말한 Violet의 말을 믿고 6인분 정도 되는 양을 준비했는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많은 양을 요리해 본 것도 처음인 데다가 재료도 부족하다 보니 한 사람이 맛만 볼 정도만 겨우 완성했다. 나는 제육볶음을, 우꾼은 채소전을 해서 다 함께 나누어 먹었다. 부족한 양에도 '우리는 이 식사 자리가 감사하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Violet의 친척들의 고마운 마음 덕에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되었다.

Violet의 대 가족과 함께! 숨은 우꾼 찾기 급인데?

나와 우꾼은 영어를, 가족들은 스페인어만을 할 줄 알기 때문에 Violet의 도움으로 열심히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며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글 이름을 적어달라는 요청에 그들의 이름을 메모장에 한국어로 큼지막하게 적기도 했고, 한국의 주방 문화라던가 한국의 모습 들을 말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기도 했다. 원래는 바로 떠나려고 했던 쉘라에서 Violet의 가족들의 환대와 사랑 덕분에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다. 덕분에 Violet의 고향마을에 있는 과테말라 내의 최초의 마야 문명지로 불리는 지역도 다녀와 볼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Violet의 아빠와 엄마를 'Guatemala Father & Mother'라고 부르며 서로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Violet도 우리가 떠나던 날 너무 아쉬워했다. 우꾼의 펜팔 덕에 과테말라의 그 작은, 볼 것 없다고 일컫어지는 것에서 Violet가족과 함께 했던 보랏빛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고맙다 우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