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4~16일, 여행 327~329일, 과테말라 파나하첼
쉘라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도 다음 일정에 대한 회의가 끊임이 없다. 그렇다고 치열한 회의는 아니지만, 나나 우꾼이나 가고 싶은 바가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목적지에 대해 '갈지, 말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나눈다. 쉘라는 둘이 일치했던 목적지였던 반면, 파나하첼은 나만 가고 싶던 목적지였다.
쉘라에서 예상치 않게 하루를 더 사용했던 터라 우군 입장에선 파나하첼을 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움직여 보기로 했다. 이제는 여객버스만큼 익숙한 치킨 버스를 타고 파나하첼로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서 결과적으로 뭔가 우리 답지 않은 여유 있는 여행을 오래간만에 즐길 수 있었다.
중미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걸쳐 있다. 과테말라 역시 그 영향권에 있으므로 여러 개의 화산과 화산활동으로 인한 지형들인 호수들이 꽤 있다. 파나하첼이라는 곳도 두 개의 화산(지금은 휴화산이지만) 밑의 큰 호수에 있는 하나의 마을이다. 이 곳의 화산 트래킹이 경치가 아주 좋은 것으로 유명해서 꼭 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였다. 중미가 트래킹 코스가 많고 내가 워낙 걷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 곳을 선택한 것. 실지로 이 곳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호수 둘레로 있었고 마을 간의 이동은 배로 해야 했다. 마을마다 약간의 특색은 있지만, 모두 아기자기한 골목들 사이에서 소박한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도착한 당일은 숙소로 가는 길에 간단히 마을 주변만 보고 체크인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화산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산 마르코 마을로 배를 타고 이동했다. 총 13개의 마을이 호숫가를 따라 존재하고 있으며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빠른 이동을 원할 때에는 배도 많이 탄다고 한다. 1불이 채 안 되는 가격이니 시간을 아끼기에 좋고 무엇보다 배를 타면 시원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산 페드로 화산 입구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어서 툭툭을 타고 이동했다. 화산 입구에 들어서서 들어가려고 하니 입장료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휴화산인 데다가 사실상 가이드나 특별한 안내가 없는 산인데 입산료가 자그마치 100Q(한화로 약 15,000원)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지불할만한 마음은 있긴 했어도 확실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산도 싫어하고 나를 위해 와준 우꾼에게 입산료가 이래 갖고는 가자고 조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화산을 뒤로하고 대신 옆 마을인 산 후안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친절한 현지인 아티스트(?!) 후안이 우리를 산 후안 마을까지 후하게 인도해주었다(...). 내려가는 길에 과테말라와 아티틀란 호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가는 길에 커피나무가 많이 보였다. 중미 국가들 대부분이 커피 산지로 유명한데 이렇게 아무 산길에나 커피가 있는 모양은 조금 신기했다. 비록 화산 트래킹은 못했지만 돈 안 내고 좋은 풍경도 보고 동네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산 마르코 화산에서 걸어서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면 산 후안 마을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곳은 벽화가 많은 마을로 알려져 있었다. 다양한 벽화도 벽화였지만 나와 우꾼에게 제일 인상적인 곳은 한적한 교회 터였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우리는 그냥 MP3에 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낮잠을 잤었다. 일반 가정집에 그려진 소박한 벽화도, 그 주변에서 연을 날리며 노는 아이들도, 교회터에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도, 나눈 이야기와 들었던 노래도 편안하고 여유가 있던 것들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 곳 파나하첼에는 특별한 카페 하나가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 'Cafe Loco'이다. 카페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사장님과 직원들이 운영하는 이 작은 카페는 5년째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여행 커뮤니티에도 익히 알려질 정도로 그 맛도 아주 뛰어난 카페라고. 나는 이 카페의 존재에 대해서 사실 잘 몰랐지만, 어머니가 하도 이야기를 하시는 탓에(?!) 파나하첼에 오게 되면 꼭 들러보기로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도착했던 첫날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맛볼 수 없었고 화산 산책을 마친 후 들러서 Cafe Loco의 커피 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나 우꾼이나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 직원분께 추천하여 커피를 한 잔씩 맛보았는데 산미가 아주 강한 커피였다. 처음 한 모금은 커피가 아니라 주스를 마시는 것인가 할 정도로 산뜻한 산미가 일품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얼음이 녹아 산미는 줄고 풍성한 향도 가득 채워졌다. 여행 중에 동결 건조 커피나 먹을 일이 많지 사실 한 잔에 정성이 가득한 커피를 마실 기회는 많지 않은데, 커피 한 잔을 멋지게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회사 일을 해봐서도 느끼고, 여행 중에도 늘 느끼지만 어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커피에 대한 열정에 미쳐 있는 다섯 분의 직원이 5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과 끈기, 그리고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카페의 이름처럼 '미쳐야(Loco)' 가능한 것이다. 여행 중에야 여행에 미쳐 있으니 이렇게 하루하루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지만, 여행 이후의 삶에서 내가 어떤 일을 저렇게 미쳐서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해 준 커피 한 잔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파나하첼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갔다.
P.S.
과테말라의 순간들을 동영상으로 편집해 보았다. 없는 부분도 많지만, 영상으로 보면 또 다른 재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