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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Sep 02. 2017

147. 어긋나는 온두라스

2017년 8월 19~20일, 여행 332~333일 차, 온두라스

당분간은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고 통과하는 국가들의 연속일 예정이었다. 엘살바도르를 시작으로 한 나라들이 대체로 그랬는데, 온두라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살바도르에 있는 동안 간단히 찾아봤는데, 수도인 테구시갈파를 벗어나면 몇 가지 볼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도시 간 이동도 그렇고 온두라스에 대한 선입견(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와 함께 살인율 1, 2위를 다투는 나라이다.)등으로 인해 테구시갈파 만 체류한 뒤 예정대로 니카라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만 하면 온두라스가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온두라스 입국이었다.


입국부터 어긋나는 온두라스

중미 국가들은 대체로 입국이 어렵지 않다. 과거 벨리즈만이 비자를 요구하고 있었으나, 최근 상호 무비자 협정으로 인해 단기 체류에 있어서는 비자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멕시코부터 파나마까지 비자 없이 육로 이동이 가능하다(중미 여행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고). 다만 몇 국가에서 황열(Yellow Fever) 예방 접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옐로카드(황열 예방 접종 인증 카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부분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응당 갖고 있는데, 같이 여행하던 우꾼이 가 이 옐로카드가 없던 것이다. 사연인즉슨 원래 갖고 있는데, 이집트 여행 중 여권을 통째로 분실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는 같이 여행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나도 이집트 다합에 체류 중이었기에 그가 황열 카드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인지가 되었다. 다행히 사본은 갖고 있어서 우꾼 혼자 남미 여행할 때 볼리비아 비자를 받거나 하는 부분에 큰 무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본으로 국경 통과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물론 우꾼이 미리 만들지 못한 부분이니 명백한 잘못이지만 융통성을 발휘해 줄거라 기대했는데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엘 살바도르로 돌아가시오.'라는 말뿐.

버스 차장은 재촉하고, 이미 입국도장을 받은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부탁하면서 5불 지폐를 내밀었다. 사실 입국비가 3불이라고 해서 잔돈 2불 받을 생각으로 우꾼은 5불과 여권을 내밀었던 것.

그때 버스 차장이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하더니 갑자기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잔돈은 없었다. 아마 잔돈 2불을 뇌물(!) 삼아 통과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중미까지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광경을 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이런 부정부패를 우리가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해도 어쩌겠는가 일단은 통과했는데!

그래서 입국 심사가 끝나고 테구시갈파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비용이 너무 비싸지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큰 병원에 갔지만 황열백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눌한 스페인어로 떠듬떠듬 황열 접종할 수 있는 곳을 물었더니 다른 병원을 소개하여주었다. 공공병원 형태의 작은 곳이었고, 안내 창구도 별도로 없어서 접종을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 백신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무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병원에 가기 전날 대사관에 문의 메일을 넣었었다.) 일부 병원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는 20~40불은 내야 맞을 수 있는 예방 접종인데 무료로 해주니 감사할 뿐! 시작은 꼬였는데 다행히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계산과 어긋났던 예수상

테구시갈파에서 머무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볼 수가 없었다. 선택적으로 한 두 개 정도의 것을 볼 수 있는 게 전부인데, 우리는 황열 접종 이후에 중앙 시장을 둘러본 뒤 대표적인 볼거리인 예수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버스들이 몰려오는 센트로 근처에 큰 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점심도 해결할 겸 들렸는데 생각보다 활기찬 분위기에 예수상 출발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3불 정도 되는 점심도 아주 만족스럽게 먹어서 더더욱!

센트로에서 버스로 약 40분 정도 이동하면 예수상이 있는 공원이 있는 위치에 도착할 수 있다. 당연히 치킨 버스이며 버스에 따라 공원의 입구까지 가기도 하니 스페인어가 된다면 잘 확인하고 버스를 타면 좋을 듯하다. 산책로를 따라 공원 내부로 들어가면 테구시갈파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고산지대 들은 대체로 낮에 날씨가 아주 좋다. 그래서 도시 전경이 아주 멋들어지게 보였다. 올라가서야 알았지만 테구시갈파가 분지지형이었다.

테구시갈파 도시 전경. 지금보니 테구시갈파는 분지형태여서 날씨가 맑았던 것 같다.

20분 정도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수상이 있는 영역(?)에 도착한다. 공원에 대한 입장료를 내고 예수상이 있는 영역에 대해 별도 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슬픈 부분. 내가 생각한 예수상은 예수상과 함께 도시 전경을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수상이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그 영역엔 없어서 예수상과 도시를 함께 잡을 수가 없고 예수상도 한단 위로 제작되어 있어서 예수상에 앉거나 해볼 수도 없다. 내가 생각한 그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맑은 날씨와 멋들어진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긋나기는 해도 괜찮은 풍경이었다. 흔히 예수상 하면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를 떠올릴 텐데, 중미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랄까.

예수상과 자기 모습을 담을 수 있는 포인트는 여기가 거의 유일하다. 정면을 담을 수 없으니 아쉽다


어긋났어야 했던 온두라스

숙소에 돌아와 남은 날짜를 계산했다. 나와 우꾼은 9/1일 새벽 비행기로 파나마에서 콜롬비아로 이동하는 비행기를 미리 끊어놓고 이동했었다. 나름대로 전반적인 계획이 있어서 그에 맞춰 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남는 게 아닌가.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이상의 세 나라를 10일에 나눠서 가야 하는데 계획 상은 니카라과가 5일로 잡혀있었다. 나카라과가 화산 트래킹이 있는데, 이게 시간 소요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걸리지 않으며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는 근교를 돌아보기에 비용 소요가 크며 물가가 비싸다는 것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심지어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로 가는 버스 티켓을 미리 끊었기 때문에 미룰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기후도 좋고 물가도 적당한 온두라스에서 조금 더 머물렀어야 했다는 게 계속된 우리의 후회 점 중 하나였다. 기왕 어긋나게 출발했던 거 끝까지 어긋났어야 했는데 다른 부분으로 어긋나 버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행이라는 게 애초에 생각대로,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시간을 보낼 방법이 있지 않겠냐며 서로 위로하며 온두라스를 떠나야 했다. 남은 나라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기대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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