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1~23일, 여행 334~336일 차, 니카라과 마나과
5일, 처음 계획표에서 나와 우꾼이 나카라과에 잡았던 시간이다. 화산 트래킹뿐 아니라 주변에 몇 볼거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잡았다. 하지만 막상 니카라과에 다가왔을 때 찾아보니 주변의 몇 볼거리들을 본 후에는 반드시 마나구아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우리는 그에 비해 꽤나 지쳐있었다. 니카라과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그냥 최초 계획보다 니카라과의 체류기간을 줄이고,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체류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고르기로 했다. 내 고집으로 늘어났던 계획이었는데, 우꾼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그런 마음을 품은 채로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한 마나구아는 꽤나 더웠다. 바다와 그렇게 멀지도 않은 데다가, 호수가 바로 인접하고 있는 데다가 지금 시즌은 우기라서 습도가 상당했다. 설상가상, 마나구아에서 잡은 숙소는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 한대가 전부였어서 낮에는 끔찍하게 더웠다. 마나구아 시내를 돌아보겠다고 낮에 나갔다가 혹독한 더위에 진이 쏙 빠져버렸다.
마나구아는 중미 국가 내 도시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내에 볼거리가 전혀 없다. 아마 전략적으로 개발된 도시가 아닐까 생각돼서 찾아보니 원래 수도는 현재는 레온이라는 도시가 위치해있는 지점이었으나, 1610년 화산 폭발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재개발된 도시 마나구아에는 도시 인프라는 괜찮을지 몰라도 역사적인 유적이나 건축물들이 남아 잇는 것이 별로 없다고. 게 중 유일한 볼거리라고 한다면 니카라과 호 가 있겠지만, 호수가 앞서 다녀온 나라들에 비해 깨끗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나무 모양의 조형물들이 있는데 국가에서 미관을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정작 마나구아 시민들은 '괜한데 돈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한다고 한다. 마나구아가 이토록 볼거리가 없을 줄은 몰랐지. 더위로도 고생하고 볼거리로도 내상을 입어 우꾼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하나 기대하고 있던 것이 있다면 활화산을 볼 수 있다고 알려진 마나구아 근처 마사야 화산이었다. 산 오르는걸 워낙 좋아하는 나로선, 별도의 차량 렌트 없이 걸어서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고 천천히 사진도 찍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고 갔다. 산 올라가는 우꾼이야 오르고 내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기지는 않았어도, 볼거리가 워낙 없던 (그런 게 좋다고는 해도 포스팅 거리가 없어 걱정일 게 분명해!) 마나구아 시내보다는 '거리'가 있으니 둘 다 약간은 기대심을 갖고 마사야 화산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화산을 걸어 올라갈 수 없었다. 2015년 정도에는 걸어서 올라간 사람의 후기가 있었으나, 2016년에도 차로 올라가야 했던 사람들의 후기를 접하기는 했었다. 막상 가보니 역시나 '도보로 가는 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한다'는 직원의 말에 따라 차량으로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차량을 이용해 분화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사실 화산 분화구보다 멋들어진 것은 화산 자체의 풍경인데...
물론, 도착한 마사야 화산 분화구의 풍경은 웅장했다. 화산을 가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활동 중인 화산 방문은 에티오피아에 이어서 두 번째였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분출이 얼마 전에 이루어졌던 터라 분화구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용암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쉬웠는데, 분화구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마사야 화산 역시 아주 대단했다. 뻘건 용암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역시 볼 수 없었다. 야간 화산 투어가 있는데 그렇게 와야 용암을 볼 확률이 높다고는 하는데, 관림 시간도 짧고 밤에 여기 오는 것이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라서 포기해야 했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 분화구까지 올라오는 모든 차량은 주차할 때 반드시 분화구를 등지고 후면 주차를 해야 하며, 시동도 절대 끄지 않는다. 혹여라도 분출될 시 바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아직 활동하고 있는 화산이라 생기는 웃지 못할 주의사항인 셈이다.
분화구를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지는 않으므로 보는데 시간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20여분 정도 화산 분화구를 보고 나면 중간 위치 즈음에 있는 박물관에 사람들을 내려준다. 원하면 차로도 내려갈 수 있었지만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는데, 날이 더워서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는 그 몇 걸음 사이에 후회하고 만다. 화산은 드라이브로 가자.
박물관에 볼거리가 딱히 있지는 않지만 유일한 볼거리라고 한다면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벽화였다. 마사야 화산이 과거 제대로 폭발한 적이 두 번 정도(17C, 18C) 있는데, 그때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원주민들이 겁에 질려 도망갔고, 그때 나오던 용암을 마치 뱀들이 습격하는 모양으로 기괴하게 그린 그림이다. 중/남미 늑유의 색채가 그들이 느꼈던 공포감을 잘 표현하는 그림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으로부터 메인 게이트까지는 약 2킬로 미터라 어렵지 않게 내려갈 수는 있는데 많이 덥고 그늘이 없어 조금은 힘들었다. 관광 콘텐츠들이 생기고 관리가 되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즐길거리(트래킹 같은 것)가 영리적 목적에 의해 사라지는 것은 항상 슬픈 일인 것 같다. 정말 안전을 위한 조치라면 콘텐츠를 유지하면서 다른 대처방안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화산을 비롯해 마나구아 시내에서도 여러모로 실망이 좀 있었던 나라라 니카라과가 나한테 사과해야 하지 않나 싶은 배신감마저 느낀다. 아마 다른 도시들은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을 거야 라는 자기 위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