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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Sep 04. 2017

151. 중미에서 배우다

2017년 7월 25일~8월 31일, 여행 307-344일 차, 중미

약 한 달여간의 중미 여행이 갈무리되었다. 사실 전혀 계획에 없던 목적지를 간다는 것은 설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대륙의 어떤 도시일 때와, 전혀 정보가 없는 대륙일 때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게다가 여행 시작 전 중미는 내게 편견으로 가득했던 나라였으므로 애초에 갈 생각이 없던 나라였다. 우꾼 덕분에 오게 된 중미 그리고 그 모든 편견들은 나에게 반전을 선사하기 위해 있었던 것 같다. 한 달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중미에서 느꼈던 점을 정리해 보도록 한다.


편견은 반전을 줄 때 효과적이다

SMTM6의 프로듀서 지코는 이렇게 외쳤다.

편견은 반전 줄 때 효과 있지

편견이라는 게 부정적으로 와 닿을 수 있지만, 여행에 있어서의 편견은 안전과 위험부담 최소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중미를 선택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은 아래와 같았다.

치안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살인, 강도, 폭력 등 강력 범죄의 위험이 높다.
생활수준이 아프리카 수준으로 낮으며, 여행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미 국가들에게 가졌던 편견들은 여행의 반전 요소로 강력한 효과를 작용했다. 치안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니 여행자 자체가 극히 적은 것으로 직결되며 이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고 개발이 더 되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나라들에 비해 '손이 덜 탄' 나라들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그걸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표정이다.

생활수준이 낮고 여행 인프라가 불편한 부분은 물가가 저렴하다는 점으로 다가온다. 이는 다양한 식재료를 사서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해 먹어도 비용이 적게 들기도 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리 먼 이동거리를 가더라도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페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지만, 스페인어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고 스페인어에 대한 탐구심을 솟게 해준다. 올 때 스페인어 한 마디도 몰랐던 내가 이제 숫자도 셀 줄 알고 몇몇 단어들은 알아들을 수 있고, 마트에서 고기 주문할 때 원하는 고기로 원하는 무게만큼 살 수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스페인어 배워볼까? 재미있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어려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조사를 많이 하거나 들은 게 많으면 편견이 생길 수 있다. 그 편견 때문에 어떤 여행지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했을 때, 편견은 당신의 여행을 막는 장애물보다는 반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하자.


준비의 무용론이 회의론을 만들진 않는다

중미 여행은 구상 없이 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앞서 여행한 사람들의 여행 정보를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파나마-콜롬비아 구간은 항공이 비용 대비 효율이 좋았으므로 예약을 해 두었다) 안에 중미를 여행했다.

이동했던 도시들이 표시된 지도이다. 수도를 거점으로 너무 먼 도시들을 갈 수 없다보니 수도 위주로 표시되어 있다.

이런 경우, 여행 계획을 세세하고 철저하게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나와 우꾼은 큰 계획만 간략하게 잡아두고 상세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현장 판단을 하는 자유일정 형태의 여행을 시도했다. 

물론, 날이 남아서 심시티라던가 심시티라던가 심시티를 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좋은 지역에서는 더 머물기도 했지만, 우리 예상보다 좋지 못한 곳에서는 일찍 뜨기도 했으며 덕분에 시간이 남아 휴식을 취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우리의 여행이 '준비 없이 가면 저렇게 쓸모없이 시간을 보내는구나'라고 여겨질 수도 있고 '준비해봐야 계획대로 되는 거 없구나'하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현지에서 먹는 음식들의 맛!

사람의 생각은 자유로우므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준비가 느슨한 여행'을 해본 사람으로서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런 느슨한 여행이 나를 회의론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계획의 소중함을 알게 되기도 하며, 계획의 무용함도 알게 되기도 하며, 그런 때의 대처 능력이나 내 정신적인 관리 전략 등을 배웠으면 배웠을 것이다. 마냥 그런 여행이 부정적이고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미 여행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게는 굉장히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큰 계획 속의 느슨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을 날리는 아이의 천진난만함도 볼 수 있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사람, 여행을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

어디를 여행하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누구와 여행하는가 일 것이다. 중미 여행의 결정적 계기가 미 검증된 최고의 파트너 우꾼(ttomot.tistory.com)으로부터 시작된 중미는, 연쇄작용을 통해 사람이 끊이지 않는 여행이 되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도움을 받았던 Hanna사모님과 목사님,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게 된 외대 친구들. 비앤비 말고 호스텔로 해보자는 우꾼의 제안과 나의 어설픈 일본어&영어로 친해진 Reika&Brian. 우꾼의 펜팔 친구이자 이제는 나와 우꾼의 Guatemalan Fam이 된 Violet 가족. 그리고 오며 가며 길을 묻고, 가격을 묻고, 어설픈 스페인어로 질문하면 친절하게 대답해 준 그 모든 현지인들. 어쩌면 여행에서 내 머릿속에 저장되는 기억과 풍경은 자연경관이나 명승지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야기와 분위기가 더 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중미에서의 여행은 또 한 번 여행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쳤고, 만났고,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그 누구보다 나의 가장 긴 동반자 우꾼에게 또 한 번 감사하다. 이어질 남미 여행의 초반부도 그와 함께 할 텐데 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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