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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Sep 03. 2017

150. 중미의 끝에서

2017년 8월 29일~31일, 여행 342~344일 차, 파나마

7월 말에 출발한 중미 여행이 한 달 조금 걸려 결국 중미의 마지막 국가인 파나마에 도달했다. 우꾼과 함께 다니고 있기에 비용적인 측면도, 정신적인 측면도 함께 의지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국가인 파나마는 볼거리가 많지 않은 걸로 알려져 파나마 운하만 깔끔하게 보고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다. 중미의 끝에서 깔끔한 마무리로 남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파나마, 멀리 갈 것 있나요?

티카 버스를 타고 약 17시간 정도 걸려 파나마에 도착했다. 도착할 땐 멀쩡하더니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우기가 시작된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모두 낮에는 쨍쨍하게 맑다가 밤만 되면 비가 쏟아지는데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물이 샘솟듯이 비가 온다. 우산 없이 장을 보러 갔다가 빗물로 샤워를 할 정도였으니까. 설상가상 아무리 찾아도 도심 볼거리가 니카라과 급으로 없는데, 유일하게 갈만한 곳이 안콘 언덕이었다. 파나마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비 덕분에 우리는 숙소에서 보는 풍경만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혹자는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요?'라고 묻겠지만, 그 비를 보면 그런 소리가 절대 안 나온다. 결과적으로 멀리 갈 것 없이 창밖에서 보는 파나마 풍경은 일품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 마천루가 많이 세워지면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었다는 정보에 걸맞은 멋진 풍경이었다.



파나마 운하,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비가 그친 단 하루, 지체하지 않고 바로 운하로 달려갔다.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나마 교외를 나가기 위해서는 알브룩(Albrook) 터미널로 항상 가서 이동해야 했다. 참고로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모두 달러를 사용한다. 잔돈 중 동전은 자기들 화폐로 주지만 지폐는 달러로 주니 달러가 유용하게 쓰인다. 아무튼, 별도의 투어 상품 없이 저렴한 교통비(25센트)로 파나마 운하 중 태평양 방향에 있는 미라플로레스 갑문(Miraflores Lock)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파나마 운하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하는 상영관(이래 봬도 아이맥스 상영관이다, 아이맥스!)과 박물관이 있다. 영어로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어 보기가 편하다. 파나마 운하는 완공된 지 이제 100년 정도가 넘었다. 원래 북미와 남미는 끊어짐 없이 중미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미 서부에서 동부로 물류 배송을 한다거나, 아시아에서 미 동부로 물류를 배송한다거나, 반대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미 서부로 물류 배송을 한다고 한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파나마 지협을 파 운하를 만들기로 한 것.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꾸준히 제시돼 온 방법이었지만 당시에는 스페인이 너무 바빠서(?) 시도되지 못했다고. 이후 프랑스가 최초 시도했지만, 질병을 지배하지 못해 실패했다. 미국이 황열 백신을 개발하고 나서 재시도하고 나서야 운하 완공에 성공했다고 한다. 

미라플로레스 갑문 중 내부 승강 갑문의 모습. 갑문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측 수위가 다르다.
배가 통과하기 직전의 모습. 수위를 맞추고 나서 갑문을 열고 배가 움직인다. 배가 있던 우측의 물을 중력으로 좌측으로 보낸다.

파나마 운하가 특히나 재밌는 부분은 바로 갑문식 승강 수문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파나마 운하가 위치한 파나마 지협은 대륙 중간 지점이 고지대로, 연안 지역보다 중심 부분이 수위가 26m가 더 높다. 즉 해수면과 운하 수면의 높이가 일치하지 않는다. 고로 배가 가려면 배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갑문을 이용하여 배를 잠시 정지시킨 뒤 펌프 또는 중력을 이용해 수위를 맞춘 뒤에 배가 이동한다. 과거에 만들어진 운하이다 보니 좁아 배의 동력으로 컨트롤하기 어려워 트레일러가 배를 끌어 가는 것도 재밌는 볼거리이다.

미라플로레스로 들어오는 현X 글로비스 선박. 타임랩스로 보면 운하 작동 모습을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배가 지나가는 동안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이 미라 플로레스 갑문에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구경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과정은 양측다 재밌는 과정이라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침 왔던 배가 국내 기업 현 X 글로비스 사의 배여서 더 신기했다. 두 번의 갑문을 지나면 배는 태평양을 향해 떠나간다. 저 배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으로 향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나보다 먼저 한국 갈 저 배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파나마 운하가 만들어진 역사와 그 과정 그리고 실제로 배가 통과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다.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대륙을 갈라놓은 사례기도 하며, 26m나 차이나는 수위의 배를 위아래로 자유롭게 옮기는 모습... 현대 기술 공학의 결정체이자 인간의 위대함의 산물이 이런 것이 아닐까. 고대 문명이나 아름다운 건축물 보다, 때로는 이런 딱딱하지만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것들이 주는 감흥이 크기도 한 듯하다.


기분 나쁜 마무리

한 달 남짓한 여행 중 에어비앤비를 꽤 많이 사용했다. 동행이 한 명 있기에 비용적으로 호스텔과 거의 차이가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시설 면이나 치안 면에서 훨씬 더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사용을 했고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이용하면서 한 번도 부끄럽거나 피해 줄 정도의 이용을 해 본 적이 없기에 내 이용후기에 좋은 리뷰를 써주는 호스트들에게 늘 감사했는데, 파나마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서 내가 좋은 평을 남겼고 이후에 파나마 호스트가 나에게 평을 남겨줬는데, Untidy(잘 정리하지 않았다)라고 남겨주었다. 너무 불쾌했다. 설거지는 매일 잘 해놨고, 화장실 쓰고 나서도 거품 안 생기게 다 닦고 했는데도 Untidy라니! 우꾼과 함께 왜 그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설거지 이후 물기 제거 안 한 것 밖에는 도저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적힌 리뷰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얌전히 깨끗이 쓰고 욕먹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뭔가 떠나는 마당에, 중미의 마무리가 불쾌하고 께름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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