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9일~10월 11일, 18~20일 차, 방콕
야간기차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하지만 숙면을 취하기에는 다소 시끄러웠다. 덕분에 몇 번씩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가 12시경에야 온전히 잠들 수 있었다. 도착 예정시간 한 시간 전인 5시에 잠에서 깨었고 6시 20분이 되어서야 나는 방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네 번째 국가, 태국의 수도 방콕이었다. 방콕에서는 애초에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방콕에서 방콕 하기, 이것이 내 방콕 계획이었다. 덕분에 특별히 보러 간 것도 적고 하여 방콕에서의 3박 4일 있었던 일들은 한 페이지에 다 적어보기로 한다.
일정 : 방콕!
새벽 6시에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한참을 늦장을 부렸다. 3~4시간쯤 쉬고 나서 마침 주일이고 이런 여유가 또 없으니 방콕의 한인교회를 가보기로 한다. 방콕에는 한인교회가 몇 없는데, 내가 갔던 곳은 스쿰빗에 있는 한인교회였다. 한인교회를 찾으면 또 하나의 좋은 점은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 잘 드리고 한식도 맛있게 먹었다. 내 숙소는 카오산 로드 근처였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카오산 로드를 보기로 한다.
'여행자들의 성지'라 불리는 카오산 로드. 태국의 방콕, 그리고 이 카오산 로드가 여행자들의 성지가 된 이유는 사실 방콕이 서양과 동양의 항공을 잇는 허브 역할을 했기 때문. 그렇게 여행자들이 몰리기 시작하니 여행사들을 비롯한 여행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여러 가지 노점―헤나, 머리땋기, 기념품, 사문서 위조(!)―들이 들어오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카오산로드가 완성된다. 더불어 저렴한 숙소들도 이곳으로 밀집하게 되어 여행자들의 성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의식주 모든 것을 저렴한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고 추후 다른 곳으로의 이동도 용이해 지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항공권을 구하는 것이 쉬워졌고, 노점들이 너무 많아 바가지 장사가 심하며, 음식점들도 동남아 특유의 맛보다는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춰진 형태로 바뀌어 갔다. 내가 느낀 카오산 로드는 그랬다. 이제 이 곳이 여행자의 성지로 불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자로서 씁쓸할 뿐.
방콕에서 방콕만 했다고 하니 어이없어하시는 분들이 있어 하루쯤은 나가서 무언가를 보기로 한다. 다만 남들이 보지 않은 것을 보고 싶어서 방콕 북부의 논타부리에서 진짜 태국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저녁 무렵에는 왓 아룬의 석양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생각했다. 사실은 짜뚜짝 시장이라는 방콕 최대의 주말시장을 가보는 게 목표였으나, 주말시장이라 평일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좌절하며 위의 일정을 계획했다. 논타부리는 숙소 근처의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40여분 정도 북쪽으로 이동하면 도착하는 수상버스의 종점이다. 방콕은 완벽한 도시 느낌이 강하다. 도로도 넓고 정돈되어 있고 특히 스쿰빗과 같은 시내 중심에 가보면 여의도보다 화려하기도 하다. 논타부리는 방콕에 속해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바글바글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좌판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10여분을 걸어 올라가면 논타부리 시장이 나오는데, 초입에는 시장에서 파는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서 파는 노점들로 시작하여 미로 같은 시장이 있다. 우리가 책에서, 늘 상상하는 동남아의 느낌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시 간을 맞춰야 했기에 간단히 팟타이와 사과 셰이크를 먹고(물가도 방콕 중심보다 싸다!) 바로 수상버스를 타고 다시 왓 아룬 건너편, 왕궁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해 뜰 때는 왕궁을, 해 질 때는 왓 아룬을 봐야 한다는 예전 출장 왔을 때의 가이드 분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왓 아룬의 일몰을 보려면 돈을 내고 루프탑 바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상업적으로 개발이 되었기 때문에 공원이라던가 야지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야지를 찾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시장에서 먹었던 음식이 소화되면서 나에게 배변욕구를 자극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한 택배회사 주차장에서 일몰을 볼 수 있었지만, 상업화된 지역에 방콕에 대한 비관론과 복부에서 울려 퍼지는 정체불명의 공명(!)이 석양과 함께 머무르면서 왓 아룬의 석양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방콕에서는 안정을 찾고 싶어 한인 숙소를 이용했다. 사실 한인숙소가 저렴하기도 저렴하고 시설도 가격 대비 만족스럽기 때문에 안 이용하는 게 손해이다. 나는 3박으로 내가 있던 도미토리에서는 장기체류에 속하는 편이었다. 방콕 자체가 볼 것이 많은 도시는 아닌 데다가 요즘 사람들(!) 은 거의 스쿰빗 등의 방콕 중심가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숙소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분은 동남아를 여행하고 있던 동생 영훈이. 몸은 건장하게 생겼는데 말투가 얼마나 예쁜지. 수상인명구조대 출신이어서 동남아에서 원 없이 물놀이를 하고 방콕에는 쉬러 왔다던 그가 날 부러워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누군가에게 부러운 존재가 된 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인 듯하다(난 실제로 그럴만한 사람은 아니니까.). 둘 다 같은 날 체크인해서 같은 날 체크아웃했고 같이 다닌 시간과 지낸 시간이 많아 나중엔 말도 참 편하게 했더랬다. 마지막 한 분은 이름 모를 여행자 한 분. 여자분이셨는데 우리 어머니 연배셨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동티베트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동남아만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하셨다(동남아도 못 간 게 아니라 자신이 안 가셨다고.) 이번에 동티베트 여행을 마치면서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동남아 여행을 추가로 하게 되셔서 오셨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 또래의 분이 자신의 몸보다 큰 배낭 두 개를 매고 다니시는 게 존경스럽고 대단했다. 엄마도 저렇게 까진 아니지만 곳곳을 누비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이기에 엄마 생각이 났다. 숙소에서 참 재밌는 일들이 많았는데 만났던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방콕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휴식과 국제학생증 발급! 사문서 위조의 본산(!?)인 이곳에서 나는 내가 학생 시절 발급받지 못한 국제학생증을 발급받으려고 했다. 사실 내가 저 학생증을 쓸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10월 10일 그날 나와있던 모든 호객꾼(국제학생증이나 여러 신분증을 위조하는 애들은 매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과 흥정에 흥정을 거듭해서 200B (한화로 7천 원) 까지 흥정했던 한 호객꾼이 있었다. 하지만 수중에 당장 돈이 없었던 그날, 내일 내가 다시 올 테니 이곳에서 만나자 라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11일 다시 찾아간 카오산로드에 그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발급받아 보려고 여러 상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짜고 친 것인지 300B 이하로 부르는 사람이 없다! 화가 몹시 난 나머지 밥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돼지고기 덮밥을 시켰는데 돼지고기가 적어! 밥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하는데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이 호객꾼은 왜 안 나타나며, 나는 45B(한국돈으로 1500원도 안 하지만...)를 주고 밥을 시켰는데 고기는 왜 세 덩이뿐이며, 내가 이렇게 돈을 동남아에서 아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복합적인 모든 감정이 폭발한 나는 바로 숙소 앞의 다른 식당에서 맥주, 쏨땀, 팟타이를 시켜 혼자 다 먹었다. 다 합쳐서 150B, 그러니까 한 5$정도를 쓴 것인데 이게 내가 한 끼에 사용한 역대 최대 금액이며 숙박비 보다도 비싼 금액이다. 아마 저 돈으로 라오스에서 카약킹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 5$짜리 폭식(?!) 덕분에 내 화는 바로 가라앉았고(쏨땀이 너무 맛있었다. 왜 내가 저걸 한 번만 먹었을까?) 그날 분노가 수면으로 대신 폭발해 꿀잠을 잤다.
다음 여행지가 네팔이다. 무언가 내 여행의 진짜 첫 단추가 여기서 끼워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와 긴장이 가득하다. 나 진짜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