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울 것같아, 울레리

2016년 10월 17일, 26일 차, 나야풀부터 울레리까지

by 오상택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어젯 밤 1시간 주기로 깨어나 화장실을 몇 번 더 갔는지도 모르겠다. 준비했어야 할 음식과 준비물들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빼야 할 짐만 겨우 빼내서 트래킹을 위한 최소한의 짐―이라고 해도 카메라랑 노트북이 들어가서 무게가 꽤 됐다―만 겨우 쌌다. 혹시 몰라 지사제를 한 번 더 먹고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곤 다섯시 부터는 계속 깨어있었다. 트래킹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설마 산에서 쓰러지기야 하겠는가!



일정 :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트레킹] 포카라 → 나야풀 → 비레탄티 → 힐레 → 울레리



안나푸르나로의 첫 걸음

우리가 흔히 아는 히말라야는 산맥의 이름이다. 그 산맥에는 여러 산군(산 봉우리들의 모임)이 있고, 민간에게 트레킹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산군이 바로 안나푸르나 산군이다. 인간의 정복을 허락하지 않은 성산인 마차푸차레를 비롯하여 해발 8천미터를 넘기는 안나푸르나 1봉, 그리고 해발 6~7천미터 대의 안나푸르나의 여러 설산 봉우리들이 있는 곳이다. 물론, 그러한 봉우리로의 진입 자체는 엄홍길 대장이나 故 박영석 대장과 같은 등정가들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대신 안나푸르나 산군의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등산로로 트레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ana.jpg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 지도. 초록색 부분이 안나푸르나 산군이며 파란색 선이 나의 동선이었다.

나는 여러 방법의 코스 중 가장 짧은 3박 4일 간의 푼힐 전망대 코스를 선택했다. 한국 분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ABC코스(Annapurna Base Camp,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는 11박 12일에 긴 여정과 큰 체력소모가 따르는데, 내가 인도가서 어짜피 또 고생할건데 여기서 체력소모가 너무 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다. 물론, 이 코스도 산행경험이 없다면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차를 타고 나야풀(Nayapul)로 이동한 뒤, 도보로 20여분 들어가면 비레탄티(Birethanti)가 나온다. 이 곳이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트레킹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체크포스트에서 자신의 TIMS와 입산 허가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트래킹이 본격 시작된다.



비레탄티 ~ 힐레 : 콧노래를 부르다

어젯 밤 거사(!)로 인해 어떠한 열량섭취도 하지 못한 나는, 비레탄티를 떠나기 전 물통에 물을 채우고 자그마치 80NPR(한화 800원)이나 하는 과일 주스를 마시고 트레킹을 출발했다. 이게 나의 트레킹 첫 날 첫 식사였다. 아무튼, 체크포스트를 벗어나면 바로 보이는 것이 바로 엄홍길 대장님이 세우신 학교 안내판이다. 등반가들은 쉐르파들과 굉장한 유대가 생기면서 동시에 네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등반가들이 사회복지단체와 기업 등과 함께 많은 학교를 산 곳곳에 세운다고. 표지판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비레탄티에서 한 동안은 도로를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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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치면 힐레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힐레까지는 차로도 올 수 있지만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 것이 여기까진 수월하다. 문제는 여기까지만 수월하다는 것이다.



힐레 ~ 울레리 : 울 것 같아, 울레리

인터넷의 대부분의 정보에 의하면 비레탄티부터 울레리까지 약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비레탄티부터 힐레까지가 약 3시간이 체 안걸렸으니 힐레부터 울레리까지가 2시간에서 길어야 3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정보 올린 사람을 심각하게 규탄하고 싶었다. 힐레에서 벗어나 걷다보면 한 교량을 만난다. 사실 트래킹 코스에서 교량 만나는 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닌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교량에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글귀가 나타내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니, 이보시오 의사양반. 지금 3500 계단이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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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3500개. 물론 그 갯수가 실제로 350개 인지, 3500개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옥도 같은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계단 한계단 오를 때마다 거친 숨을 내쉰다. 트레킹에서 계단이 힘든 이유는, 무릎 관절에 엄청난 부하를 주고 허벅지 근육이 쉽게 피로해져 금방 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오늘 어제 카레를 먹었지만 다 쏟아(!)내었으며, 그나마 출발전에 먹은 망고주스가 유일했다. 힘이라곤 남아있지 않았던 몸으로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텼던 것 같다. 사실 고도 변화가 가장 큰 구간이기도 해서 이 구간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 막판 한시간을 남기고는 도저히 갈 힘이 없어 40분을 쉬고 움직였다. 그런데 이 휴식이 내 트레킹 일 정의 최고의 휴식이었다. 왜냐면 쉬는 동안에 백인 친구 두 명, 네팔리 두 명이 함께 쉬다가 목적지가 모두 같다는 것을 알게되어 함께 움직인 것이다. 특히 백인 친구 둘은 나와 방도 같이 쓰게 되었다. 아이슬란드의 Thor(정확하게 그 분은 아니다. 아이슬란드어로 옮기면 좀 다르다고.)와 미국계 프랑스인인 Sophie와 네팔리 Ritesh와 Pree. 이렇게 모두 다섯 명이 낑낑 대며 마지막 울레리에 결국 발을 올려 놓게 되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계속 울레리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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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산 속의 숙소들은 보통 롯지(Lodge)라고 불리는데, 일행이 있어서 방을 공유해서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 또한, 2식 이상을 롯지에서 해결할 시, 방값을 안내는 방향으로 롯지 스탭과 협상(속된말로 쇼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흥정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 선에서 식사와 숙박을 해결하자. 우리는 방값을 깎고 온수 샤워를 무료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저녁과 내일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온수로 잘 씻고 한참을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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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기다리는 동안엔 카드게임을 했다. 보통 롯지에서 저녁이 되면 할 게 없어서(와이파이가 안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내면 손해본다.) 책을 읽거나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 일반적. 나는 저녁 메뉴로 달밧을 골랐는데, 달밧을 먹으면 밥을 무한정 먹을 수 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은 푼힐 전망대가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레파니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


+)

1. 고산에서 먹은 음식들은 비교적 간이 약했다. 카트만두 외곽이나 포카라 외곽, 그러니까 현지 사람들은 비교적 짜게 먹는 것 같은데 오히려 산 위에서 맛이 더 있었다. 물론 짠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쉽게 되었다.


2. 달밧을 먹고 쾌적한(!) 뒷처리를 하고서야 나의 배탈이 온전히 나았음을 알았다. 나의 아픔의 원인도 여기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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