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8일, 27일 차, 울레리부터 고레파니
네팔에서 해는 6시경에 졌다. 사실 겨울의 한국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체시계가 기가 막히게 일찍 작동한다. 고도가 높아서 일지, 내가 피곤한 탓인지, 그냥 기분 탓인지 그 어느 것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아마 아홉 시도 되지 않아 잠들었을 터. 결국 난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보내야 할 몇 개의 메시지를 이것저것 보낸 뒤, 방의 솔피, 토르와 함께 숙소에서의 멋진 설산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정 :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트레킹] 울레리 - 고레파니
소피는 지도를 들고 다녔다. 사실 트레킹 코스가 죽으라고 만들어 놓은 등산로가 아니기에 이정표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요즈음은 지도가 필요하지는 않다. 대신 지도가 있으면 고도의 변화와 지형의 상태를 알 수 있어 좋다. 새삼 지도의 위대함을 느낀다. 소피의 지도에 따르면 오늘 이동할 구역은 그렇게 길지도 않고 심지어 숲길이라는 것이다.
역시 지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한라산 트레킹 코스처럼 보이기도 한 숲길은 기온이 높지 않아 움직이기 훨씬 수월했다. 떨어지는 물든 울레리에서의 물줄기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물론 마을 초입에 들어오면 항상 고비의 돌계단들이 우리를 맞이했으며, 숲에서의 길은 습도가 그만큼 높기에 미끄러워서 서로 'Watch out'을 외치며 다니게 만들었다. 내가 이날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이상은 님의 '비밀의 화원'이었는데, 그 풍경이 정말 비밀의 화원 안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더욱 신기했다. 3시간 40여 분 만에 우리의 2일 차 산행은 끝났고, 네팔리 친구들이 예약해준 호텔로 바로 이동했는데 이름이 'SUPER VIEW'였다. 이름대로 'SUPER VIEW'였다. 해 질 녘이 되었을 때는 안나푸르나 1봉(인지 남봉인지 명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이 보이기도 해서 장관이었다.
등산 중에 사실 신기한 일이 있었다. 한 시간여쯤 등산을 했을까. 등산 중에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찾게 된 것이다. 코 X 롱 신발을 신으신 두 부부, 그런데 뒷모습이 낯이 익어 잽싸게 앞으로 가 인사를 드렸다. 아! 카트만두 NTB에서 봤던, 포카라 슈퍼마켓에서 뵀던, 그 부부셨던 것이다! 그분들도 내가 너무 반가웠는지, 오늘 저녁은 함께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으니 도착해서 짐을 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달라, 테라스에서 상택 씨를 기다리겠다고! 한국인이 너무 오랜만인 데다가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을 그것도 등산로에서 만난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고레파니를 와보니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숙소에 도착해 점심으로 뜨끈한 뚝바를 먹고는 룸메이트들에게는 '한국인 부부를 찾으러 갈 거야.'라고 말하니, 뒤늦게 도착한 네팔리들과 룸메이트들은 농담하냐며 웃다가도 꼭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고레파니에는 숙소가 입구 부분과 푼힐 부분에 밀집해 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15분 정도인데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이것이 쉽지가 않다. 심지어 이곳의 숙소는 한두 개가 아니므로 그들의 농담 섞인 말이 비단 농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도 한 이유다. 일단 나는 입구 부분에 위치한 체크 포인트에 가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입산객은 이 체크포인트에 거쳐야 하고 이름을 반드시 적었을 것이므로 내가 찾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므로 체크포인트의 방문자 목록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입구 부분부터 차례로 휩쓸며 숙소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30분여를 찾았지만 찾지를 못해 체크포인트에 주저앉아있었는데 누군가 '상택 씨!'하고 불러주셨다.
내가 갔던 한 숙소 중 하나였는데 주인이 '한국인이 없다고'대답한 곳에서 두 분이 반갑게 인사해주신 것이다. 결국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는 비밀!)를 나누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또래의 분들이 신데 정말 많은 곳을 돌아보셨고, 느끼신 분들이었다. 심지어 파워블로거! 존경스러운 '미경'님과 '동진'님께 정말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리며 이 것이 인연이 되어 또 다른 곳에서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너무 감사합니다!)
네팔을 돌아다녀보면 아이들을 많이 마주한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물론 안되고 불쌍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에 난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런 경우엔 사진을 지워버린다. 더 심한 경우에는 아이의 부모님이 사진값을 요구하기도.
아이들은 모두 그렇겠지만, 유독 네팔의 아이들은 눈에 선함이 있는 것 같다. 고레파니에 도착했을 때에는 정말 아이들끼리 재밌게 놀고 있고, 부모들도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을 한 장 담은 것이 있다.
이 아이들이 이 모습대로 자랄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선한 마음 가득하게 계속 자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