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설산을 마주하다

2016년 10월 19일, 28일 차, 고레파니에서 타다파니

by 오상택

어제 '미영'님 부부와 저녁에 반주로 소주를 대접받았는데, 덕분에 잠자리가 편안했다. 문제는 일어나서 두통이 조금 있었다는 것? 덕분에 아주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물론, 푼힐에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있어 조용한 새벽은 아니었다.


일정 :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트레킹] 고레파니 - 푼힐 전망대 - 타다파니



고레파니 ~ 푼힐 : 고진감래

Sofhie와 Thor는 4시 반이 되어 일어났다. 일출시간이 6시 10분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푼힐 전망대로의 아침 산행을 시작한다. 푼힐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리는데, 여기부터는 해발고도가 3000m에 육박하므로 아침과 저녁에는 싸늘한 초겨울 날씨에 가까워 재킷에 내피까지 입고 나왔다. 날씨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시야였다. 모든 사람들이 헤드랜턴을 갖고 와도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헤드랜턴이 없었다.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간 푼힐 전망대 앞에서는 50 NPR의 입장료를 받는다. 여기서 부터도 한 20~30분은 더 올라야 한다. 겨우 올라간 전망대. 하지만 아직 해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는 쪽 왼편이 안나푸르나 산군인데 구름이 잔뜩 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도 사진을 담아보지만 날씨가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날씨가 아예 안 좋으면 전망대에 구름이 앉아서 그 나름대로 또 장관이라던데 이도 저도 아닌 날씨에 우리 일행은 약간 실망해 가고 있었다. 뭐, 그래도 사람들은 해 뜨는 거 좋다고 '오이, 오이'를 외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해가 고개를 빼꼼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해 때문에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구름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안나푸르나 산군 중 몇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모습을 허락했다. 비록 전 산군은 아니라 안나푸르나 1봉이었지만. 물론 구름은 아주 잠깐 우리를 허락했고,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마차푸차레 등 역동적인 산군을 모두 볼 순 없었지만, 추운 날씨와 암흑을 뚫고 온 보람이 있는 새벽 산행이었다.

고레파니 ~ 타다파니 : 3,000m의 고도를 달리다


사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해발 고도 3,000m가 진짜 시작인 것 같다. 울레리의 계단이 미친듯이 힘들었지만 실질적인 난이도 자체는 이 구간이 가장 힘들었다. 왜냐면 고도 변화가 급격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고레파니는 해발고도 2,800에 있는 마을이고 타다파니는 해발고도 2,600에 있는 마을이지만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해발고도 3,000대를 몇 번 오르내린다. 그것도 완만하게 가 아니라 급격하게.

너무 힘들어서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할 정도로 미친 듯이 힘들었다. 숨도 많이 차고, 게다가 고도 상승도 엄청나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 천천히 이동한다.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이런 코스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야 내려가는 숲길이 등장한다. 내려가는 숲길은 폭포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사실 폭포 자체는 우리나라 산에서도 참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라 나는 낯설지 않은데, 서양인들에겐 굉장히 낯선 풍경인 듯. 심지어 소원을 비는 돌탑군에서는 그 풍경에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나와 토르, 그리고 소피 외에 영국의 조셉(Joshep), 프랑스의 플로(Flo)까지 총 다섯 명이 함께 타다파니까지 입성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비가 왔다. 부랴부랴 재킷 와 우의를 꺼내 입고 한참을 걸어서야 타다파니에 들어왔다. 울레리가 계단 때문에 무릎이 아파 힘든 기억이라면, 타다파니 구간은 정말 난이도 자체가 높은 구간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악천후까지. 사실 무엇보다 타다파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최악의(!) 숙소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울레리와 고레파니에서 네팔리들의 센스 덕분에 정말 좋은 숙소를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잘 이용했는데, 이번엔 최악의 숙소를 아주 비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하게 되어 나와 소피는 사실 조금 불만이었지만... 이 숙소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서로 'Think good' 하기로 했다.

차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며, 정치 얘기도 하고, 여행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최악의 숙소에서의 최고의 밤이 흘렀고, 내 트레킹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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