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2일, 세계일주 1일차, 홍콩
긴장을 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사실 첫 국가가 그렇게 어색한 나라도 아니고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미뤄두었던 방 정리도 한몫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섰고, 간단한 공항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한국을 떠났다. (출발 전의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게 아쉽다. 뭔가 출발할 때와 도착했을 때의 변화를 기록했어야 했는데.)
여행의 첫 국가는 홍콩이었다. 왜 세계일주 같은 어마어마한 계획에 관광국가 같은 느낌의 홍콩을 집어넣었냐는 주변의 질문이 많았는데, 이유는 단 하나. 여행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이다. 2013년, 서유럽권 5개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위해 비행기를 환승했던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Hugo. 그가 나에게 친구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 때문에 우리는 3년을 아이메시지와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이어왔다. 내가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었어서 내가 가이드를 해주고 난 뒤 세계일주를 하려고 했는데, 비자 발급 문제로 인해 그가 한국에 오기 어려워 내가 홍콩에 가는 것으로 여행 계획을 수정했던 것이다. 출발 전 그는 나에게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말고 오면 된다. 모든 걸 알아서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가 홍콩에서의 출발을 굉장히 어렵게 할 줄이야.
홍콩 국제공항 → 포트리스 힐 → 타임스퀘어 → 코즈웨이베이
비행기에서 잠만 자다가 도착했다. 늘 그랬듯 나는 빠른 속도로 비행기를 나갔고, 빠른 속도로 출입국 심사장을 찾았고, 빠른 속도로 줄을 섰다. 그리고 내 차례. 긴장되는 첫 국가에서의 출입국 심사. 무사히 통과될 줄 알았지만 심사관이 나를 여러 번 쳐다본다. 왜일까, 잠시 후 그는 나에게 생년월일을 물어봤다. 뭐지, 왜지, 내가 테러리스트처럼 생겼나? 이내 심사관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여권을 다시 돌려주며 "네가 안경 쓰고, 머리가 많이 변했고, 특히 살이 많이 쪄서 알아보기 힘들었어." 라며 말했다. 인도 비자에 찍힌 사진으로 확인했다는 그에 말에 나는 "살이 쪄서요."라고 고백했던 작년의 모스크바 출입국이 스쳐 지나갔다. 나라를 거치면서 출입국 심사가 쉬워지겠지. 나만 어려운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빠르게 짐을 찾은 뒤 hugo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남겼다. 그가 회사에 아직 있기 때문에 나를 데리러 올 수는 없었고, 그가 퇴근할 즈음을 맞추어 그가 살고 있는 곳 근처인 포트리스 힐(fortress hill)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홍콩 공항을 나서기 전, 짐 정리를 하고 공항에서 시간을 보낸 뒤 출발하기로 한다. 짐을 확인하던 도중 카메라 배터리를 놓고 온 것을 확인했다. 역시 사람이 아무리 챙긴다고 챙겨도 구멍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것저것을 하고 여권을 잃어버린 듯했지만 이내 내 셔츠 주머니에 있어 이내 안심하는 등 허둥지둥 대는 초보 여행자티를 한참이나 내고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뒤 두 시간(!) 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홍콩 공항에서 시내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은 버스와 급행 전철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급행 전철을 타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포트리스 힐까지 가는 A11 버스를 타기로 했다. 홍콩의 대중교통은 현금과 옥토퍼스 카드 (Octopus card)를 이용해서 탈 수 있는데 한국의 티머니와 흡사하다. 보증금 50 HKD와 50 HKD 단위로의 충전이 가능하다. 추후에 수수료 9 HKD를 제외한 금액을 환불받을 수 있으며, 할인 혜택과 홍콩 내의 결제능력이 탁월하므로 구입하여 다니도록 하자. 내가 탄 버스는 2층 버스여서 홍콩을 둘러보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맨 앞칸에 타서 풍경을 보기로 한다. 시내로 들어가면서의 모습은 부산을 떠올리게 했다. 바다를 끼고 있으며 계속 개발 중인 도시의 모습. 부산이 조금 더 큰 규모였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버스가 시내로 들어갈수록 나에게 익숙한 홍콩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 시간쯤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친구가 오기까지 포트리스 힐 근처와 빅토리아 공원을 가보기로 한다. 내 또래의 남자라면 어렸을 적 추석과 설날이 되면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참으로 많이 봤을 것이다. 그 영화 속 풍경은 2016년의 지금도 여전하다. 시선을 멀리해서 보면 첨단의 고층 빌딩이 가득하지만 바로 앞에는 허름하고 지저분한 아파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땅에는 현란한 간판이 가득한 거리가 있는 모습. 거리 한편에서는 도박(!)을 하고 있고, 공원 한편에서는 장기를 두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fortress hill의 맥도널드로 이동해서 Hugo를 만났다. 3년 만에 보는 친구는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에서 진중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뭐 오랜만에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보듯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 살이 많이 찐 것 같다.’라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모스크바는 한 번, 홍콩은 두 번, 과연 다른 나라에선 얼마나 많은 모욕감을 얻을 것인가!) Hugo의 집은 아까 보았던 외관은 지저분한 아파트 중 하나였다. Bob이라는 룸메이트와 같이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전형적인 수컷(!)의 집이었다. 그렇다고 허름한 것은 아니지고 아늑했다(우리 엄마가 보면 질색팔색을 하시겠지). 짐을 풀고 나서 Hugo가 대접하는 중국음식들을 먹기 위해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트램은 100여 년 전부터 이용하던 홍콩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이동수단이라고 한다. 정부에선 이를 없애고 새로운 교통수단들로 대체하거나 도로를 정비하고 싶어 하지만 홍콩인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가격이 2 HKD (한화로 300원) 밖에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램의 내부는 목조가 섞여 있있어서 번화가를 지날 때면 도시화된 홍콩 안에서 고즈넉한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코즈웨이베이의 타임스퀘어의 한 중식당에서 4개의 음식을 한 번에 시키는 것을 보고는 조금 놀랬다. 대접하는 것이라서 그러는가 싶기도 했는데, 중화권에선 여러 음식을 한국의 반찬처럼 생각해서 각각을 시켜놓고 덜어먹는다고. 염려된 것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저걸 다 먹어? 싶은 생각이랄까. 물론 먹으면 잘 들어간다.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고, 식사를 마치고는 홍콩의 밤거리를 걸었다. 트램을 타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홍콩은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다. 노란색 가로등들이 뭔가 우울한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형형색색의 간판들은 생동감 있는 맛을 준다. 꽤 많은 거리를 걷고 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다음날의 계획을 간단히 확인한 뒤 잠이 들었다.
+) Hugo와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만 말하면 홍콩의 사회는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 이곳 사람들도 좋은 대학을 위해 굉장히 치열하게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취업에 목숨 걸고 있다고. Hugo에 대한 것 중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것은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영문학을 부전공했는데 지금은 회계법인에 있다는 것. 나중에 들은 바로는 자기는 회계사는 아니고 거기서 IT업무를 담당하는 것인데 CPA가 필수라고... 어찌 됐든 한국보다 더 융통성 있게 직업 선택의 폭이 열려 있긴 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