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8일, 여행 37일 차, 바라나시
어찌 됐든 첫째 날은 별 일 없이 쉰다는 철칙대로 하루를 보냈다. 새벽 일찍 도착하다 보니 그렇게 보낸 시간이 아쉽기도 하다가도 아니 아쉽기도 하고. 지나간 날은 생각지 않기로 한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아그라로 향하는 열차 티켓의 구매와 화장터를 가 보는 것. 그리고 밤에는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을 누벼보는 것이다.
일정 : 바라나시 정션 - 마니카르니카 가트 (화장터) - 보트 체험
여행자 시계에 적응된 나의 몸은 기가 막히게 일출 시간에 일어난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일어나자마자 카메라 가방을 들처메고 어제 담지 못했던 갠지스 강가의 아침을 담으러 갔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사진으로 보자!
새벽부터 빨래를 하는 사람들,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는 사람들, 나와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 산책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게 한 곳에 모인 강가가 붉게 물드는 모습은 가히 장관. 영상을 찍으며, 사진을 찍으며 아무 말도 없이 본 것 같다.
일출을 보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은 뒤 Joanna와 함께 아그라행 기차표를 예약하러 가기로 한다. 아마 Joanna와는 델리까지는 함께 할 것 같다. 처음엔 여행사에 커미션을 주고 기차표를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350 INR 짜리 티켓에 커미션이 150 INR이 웬 말인가! (대부분 여행사가 담합했는지 커미션을 포함한 가격을 다 500 INR을 제시했다.) 그래서 표의 상태를 확인하고 직접 예약하기로. 원래는 기차역까지 걸어갈까 싶었는데, 인도의 5km는 그렇게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제 만난 한국분이 릭샤 흥정을 조금 더 해보라는 말에 희망을 얻었다. 직접 가서 예약하기로 하고 번화가인 고돌리아로 향했다. 사실 사이클 릭샤나 오토 릭샤나 가격차이는 없다고 한다. 오토릭샤가 더 비쌀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라고. 문제는 인도인의 상인정신이다. 기차역에서 숙소로 올 때 오토릭샤 150 INR에 왔었는데, 왕복 100 INR에 해달라니 누가 하겠는가. 하지만 급한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이다. 사이클 릭샤 기사 한 명이 100 INR에 왕복 콜을 외쳐 그를 선택했다.
문제는 표를 구매한 다음이었다. 기차역에 내릴 때, 우리는 50 INR을 주었었다. 돌아갈 때 50 INR을 주기로 한 것이었는데, 이 사람이 100 INR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주차하며 기다리는 동안 경찰에게 뺨을 맞았다며(...) 처음엔 이 사실을 믿지 않았고, 일단 가자고 말했다. 사이클 릭샤 기사가 불법유턴을 하려는 순간 인도 경찰이 몽둥이를 들어 기사를 때리려 했다! 그랬다. 인도는 아직 태형이 남아있어서 경찰들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던 것(처음에는 그냥 지휘봉인 줄 알았다)!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우리는 100 INR을 약속했기에 더 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돌변하는 태도가 더더욱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내려서 50 INR를 주니 마구마구 성을 내던 것이었다. 다행히 주변 경찰들과 시민들의 덕분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실 이 일 외에도 황당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Joanna와 같이 걸어가다가 어떤 남자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Joanna를 주먹으로 치기도 했고, 화장터에 갔을 때에는 사진도 안 찍고 있던 나에게 '너 참 영리하구나! 핸드폰으로 찍으면 모를 줄 아냐! 거짓말하지 마!'라고 외치던 것. 화장터에서 사진은 통념상 금지이고 찍으면 돈 달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찍고 가만히 있었는데 하도 뭐라 그래서 나도 똑같이 눈 땡그랗게 뜨고 '거짓말하지 마!'라고 되받아 쳤다. 주변의 다른 현지인들이 내가 가만히 앉아 있던걸 다 봤기 때문에 그냥 가라고 일러줬다. 정말, 방심하면 훅 들어온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갠지스 강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했다. 영상으로도 많이 봤고, 익히 들어서 '아 그런 곳이겠구나.'하는 생각은 응당 들지만, 일출을 볼 때도, 갠지스 강 주변을 산책할 때에도 특별히 그런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오히려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생과 사의 교집합인 모습의 갠지스 강, 진짜 바라나시를 만나려면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가야 한다. Joanna는 힌두 대학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오후 일정은 각각이라 나만 화장터로 가보기로 했다. 강가를 따라 쭈욱 화장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30여 분 가까이 걸어가면 마니카르니카 가트에 도착할 수 있는데, 여기서 부터는 호스피스... 를 자처하는 사기꾼들이 달라붙어 돈을 내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해서 하는 수 없이 제한적으로 허락되는 부분만 사진 촬영을 했다.
가까이에서는 보고 있는 외국인을 영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고, 굳이 가까이에서 시신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화장터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그 모습을 한 시간 정도 앉아서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내가 앉아서 보고 있던 곳에서는 사람들이 배를 만들고, 앉아서 쉬고, 음식을 팔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불과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죽은 사람이 물로 가고 있고, 산 사람은 물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바라나시를 사후세계로 가는 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인 정도(심지어 내가 있던 저 날 아침, 어떤 여자가 바라나시에서 자살기도를 했다고!) 지금의 갠지스강의 가트들도 과거에는 부자나 왕들이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살아가기 위해 만든 별장 같은 것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가트들이 또 지금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이 묘한 공간에서 한참을 벗어날 수 없었다.(위의 미친 아저씨만 아니었어도!)
갠지스 강은 해가 강변으로 떠서 바라나시 쪽으로 진다. 응당 일몰은 강 건너에서 봐주는 것이 인지상정. 정확하게 약속은 안 했지만 오늘 저녁에 보트를 함께 타기로 Joanna와 약속했지만 시간 내에 오지 않아 나 혼자 보트를 타게 되었다. 더 저렴한 보트 드라이버들이 많았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철수 씨의 보트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 혼자 출발한 것은 아니었고 한국인 부부 한 분이 계셨다. 철수 씨는 우리에게 갠지스 강의 건너편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문화적, 역사적인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모르고 보았을 때보다 알면서 보는 풍경은 더욱 이색적이었다.
한국인 부부께서는 장기근속 휴가로 약 3주간 인도를 둘러보고 계신 것이었다. 회사 그만두고 이렇게 나와있다고 하니, 인도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것 같다며 빙그레 웃어주셨다. (역시 세계일주는 자랑할게 못된다.)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럼에도 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요즘 청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자신들의 아이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며. 그러다가 예전 본인 모습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군대 다녀오시고 해외로 꼭 나가고 싶은데 당시에는 여권 하나 발급받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다고. 그래서 국내를 무전여행하다시피 적은 돈만 갖고 배낭 하나 들고 떠났던 기억이 있는데, 회사 그만두고 배수진 치듯한 모습이 본인 옛날 모습 떠오르는 것 같아 아련하다고. 그때 한을 풀려고 평소에 '휴가 생기면 인도 갈 거다'를 항상 외치셨다고. 뭐, 결국 이뤄 내셨다. 저녁 함께하시자는 말씀에 한식당에서 한참을 또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버님도 아버님이시지만 어머님도 만만치 않게 여행을 좋아하시는데,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못 가셨던 것. 그러면서 나에게 두 분 다 입 모아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보라'는 말씀을 여러 번 되풀이해 주셨다. 흔히 아는 말이지만 여행을 청년 땐 돈이 없어서 못 가고, 중년이 되면 시간이 없어 못 가고, 노년이 되면 체력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한다. 지금 시점이 가장 좋으니 너무 얽매이지 말고 떠나보라는 말씀이셨다. 또, 저녁값을 계산해주시면서(졸지에 또 국제거지 신세가...) 상택 씨랑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여행 중이든 여행 후든 만나면 대접하는 것으로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도 하시고 그러라며 덕담도 해주셨다. 감사인사도 드리고 혹시 여행 중간중간 사진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어 연락처를 여쭤도 봤지만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그렇게 보내는 것'이라며 웃으며 숙소로 돌아가셨다. 문득,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조용히 다짐했던 것 같다. 숙소 들어가기 전 갠지스 강을 다시 쳐다보았다. 좋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갠지스강 때문인지 또 만감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