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0일, 39일 차, 아그라
기차의 지연도착은 우리를 '티켓 취소 후 재발행'이라는 최악의 수를 비껴가게 해 주었다.
문제는 이것이 '최악의 수'만 비껴가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시련은 하나가 아니었다.
일정 : 기차 - 아그라
지연 출발 한 시각이 18:30이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이 04:30이었다. 난 항상 알람이 있든 없든 저 시간에 일단 깨는데, 열차 도착 예정 시간이 07:00였기에 다시 잠들었다. 06:00경에 다시 깨어서 GPS를 확인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아그라 근처도 와있지 않았던 것. 인도의 기차는 여러모로 유명하다. 기차만 이용해서 인도 전역을 이용할 수 있을 만 큼 광역적인 인프라 구축이 되어있고, 그 요금도 거리 대비 저렴하다. 물론 구축된 양적 인프라에 반비례하는 객차의 질적 인프라와 한국 정치인들의 공약만큼이나 지켜지지 않는 기차 시간 들도 유명하다. 맨 마지막에 언급된 그것으로 인해 아직 가지 못한 것. 그것도 한두 시간도 아닌 무려 5시간을 더 연착된 시간인 11시에 내릴 수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별별 생각을 다했다. 아그라 역은 어디 있는지, 이 기차는 정말 아그라 역에 가는지(인도 기차는 정차역을 알려주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의 5시간을 먼지 가득한 침대칸에서 보내야 했다.
5시간 연착된 기차에서 꼼짝없이 움직이지도 못했기에 그냥 점심과 저녁을 빠르게 먹고 쉬기로 했다. 호스텔 근처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주고 점심을 해결했다. 바라나시 식당에서 먹던 가격의 두 배를 내고 먹으려니 괜히 맛이 없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반나절 이상 만의 제대로 된 식사이니 기분 내어 먹고는 호스텔에서 모자란(열차칸에서 그렇게 잤는데 왜 모자란 걸까) 잠을 다시 청했다. 잠을 자는 동안 몸이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감기 기운인가 싶어서 감기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좀 나아진 듯도 싶고 저녁 때도 되어 저녁을 먹으러 멀리까지 나가보았다. 숙소가 있던 타지마할 동문은 굉장히 물가가 비싼 곳이었고, 여행자 숙소가 몰려 있는 남문이 훨씬 더 저렴했다. 감기 기운이 불안해서 누들 수프에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 라씨와 함께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곳곳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데왈리 축제의 공식적(그러니까 인도 사람들은 자기가 끝내고 싶을 때까지 데왈리를 즐기기에 언제 끝날 지를 모른다고.)으로는 마지막 날이라 더욱 소란스러웠다. 거리의 가게들도 곳곳에 꽃을 걸고, 등불을 비추어 복을 빌었다. 머물던 숙소도 화려하게 전구를 걸어놓았다.
숙소 옥상에 오르니 호스텔 사장님이 디왈리를 맞이 하기 위해 페타(인도 전통 설탕과자)를 주시며 불꽃놀이를 곧 시작할 거니까 다들 모여 있으라고 했다. 졸지에 호스텔 모든 손님이 모여 수다를 떨면서 데왈리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고, 요란 시끌벅적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마 바라나시였으면 더 시끌벅적하고 재미있었을 수 있었겠지만 조용한(!?) 도시 속에서 보내는 이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HAPPY DEWALI!
옥상에서 있을 때부터 몸이 영 좋아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감기 기운 떨어지라고 고춧가루도 듬뿍 넣고 밥 대신 수프를 먹은 건데도 영 좋지가 않다. 일단 빨리 자보기로 하는데도 영 아니올시다. 9시에 잠이 들어보려고 방으로 가서 잤지만 1시간 단위로 매번 일어났다. 식은땀에 오한, 게다가 속은 왜 더부룩하지. 아, 그랬다. 나는 소화불량이 오면 오한, 발열, 현기증이 같이 오는 사람이었다. 새벽 4시쯤이 되어야 내가 소화불량 일거라는 결론이 섰고 그제야 소화제를 먹었다. 항상 아프면 별 생각이 다 지나가는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그라로 온 이유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선데 이래서 내가 내일 타지마할을 볼 수 있을까 였다. 체력적인 상황을 봐서는 일정을 대폭 수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시쯤이 되어서 소화제의 약효가 온 건지 기분이 쎄헤서 잽싸게 옥상 화장실로 뛰어가다가 옥상 바닥에서 내가 먹은 음식들을 강제로 확인하게 되었다(물론 깨끗하게 물청소를 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자고 이런 개고생을...'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네팔에서 아플 때도 저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열차에 이어서 체하기 까지, 정말 재수가 없으려면 이렇게 겹쳐서 없어주는 나였다.
+)
몸이 부실해지니 글도, 사진도 찍을 여력이 통 없었다. 지금은 아픈지 2일 정도 지나서 몸이 거의 정상기능을 회복했다. 바라나시에서 파리가 꼬이는 로컬푸드와 라씨를 먹어도 멀쩡한 나였는데, 결국 소화불량이었다니. 앞으로는 음식을 꼭꼭 씹어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상택 어린이 었다. 애도 아니고 정말 체해서 일정 꼬인 게 지금 생각해도 짜증 나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