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1일, 40일 차, 아그라
출발 20여분을 남기고 모든 걸 게워냈다. 화장실에다 골인도 못 시켜서 부랴부랴 물 부어 내고 하수구로 싹싹 밀어내서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니 10분 남았다. 대강 씻으려고 방 화장실로 들어갔더니 Joanna는 벌써 기상. 상황을 말하고 10분만 기다려 달라 하고 짐을 정리했다. 하필이면 타지마할은 경비가 삼엄해서 가방도 함부로 못 갖고 간다. 카메라에 렌즈, 지갑과 여권만을 대강 챙긴 채 바로 타지마할로 향했다. 몸 상태 자체는 나아졌지만 아마 어제 아침부터 오늘 새벽까지 먹은 모든 음식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에너지 자체가 바닥난 상태에 한 시간 단위로 깬 잠 덕분에 나는 산 송장처럼 타지마할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일정 : 숙소 - 타지마할 - 숙소
타지마할 입장권은 오전 6시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타지마할에서의 일출을 위해 보통 5시부터 매표소에서 줄을 선다. 아마 평상시의 나였다면 4시쯤 일어나서 씻고 4시 반이 되면 바로 나가서 매표소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이었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 것도 대기지만 입장도 꽤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검문검색이 아주 철저하다. 힘들게 들어갔다.
검문검색이 끝나자마자 또 구토 증세가 올 것 같아서 Joanna에게 먼저 타지마할 보고 어디에서 만나자라고 말을 전한 뒤에 화장실부터 향했다. 그 와중에 화장실 가는 길의 석주가 너무 아름답...긴 개뿔, 이쁘다는 기억은 남는데 사진이고 뭐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을 나오고 나서야, 그제야 내 눈에도 타지마할이 보였다.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 찰나면 속 빈 강정이 된 것처럼 무게감이 없이 축 쳐졌다. 원래는 쉬는 게 맞는데 오늘 안 보면 아그라에서 하루를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타지마할로 가는 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 이십 걸음 걷고 바닥에 주저앉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보통 내가 아름다운 곳이구나 라고 판단되면 사진을 100~200장은 찍는 것이 기본(물론, 그중에서 건지는 게 한 장이 될까 말까)에 내 사진도 찍어보려고 사람들에게 부탁도 하고 신나서 돌아다닐 텐데 여기서 찍은 사진이 단 30장이다. 힘이 없어서 카메라 렌즈 갈아 끼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여기 입장료가 자그마치 1,000 INR(한화로 약 20,000원!)이나 되는 데다가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그 아픈 와중 있었던 약 4시간 동안 찍은 30장의 사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나중에 만난 Joanna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찍은 사진이 하나 있는데, 이게 내 당시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저 사진을 찍고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서 휘청 휘청. 타지마할에 대한 소감이나 풍경 묘사보다 내 몸 상태만 언급하는 걸 보면 나도 진짜 아팠던 기억만 남아있던 것 같다. 아그라에는 타지마할 외에도 아그라 성이라는 굉장히 큰 성이 있는데, 힘이 드니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로 호스텔 가서 누웠다. 구토 때문에 속이 안 좋을 까 봐 밥도 못 먹고 인도 민간요법 중 하나인 바나나 두 개와 빠른 열량 섭취를 위해 망고 주스 하나를 먹고 잠이 들었다.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체력 회복과 전날 잠들지 못한 잠까지 모두 몰아 한참을 잤던 것 같다. 네팔에서도 그랬지만 아픈 게 제일 서럽다, 타지마할이고 나발이고 싫다 싫어 나의 몸이여.
일어나니 저녁시간이었다. 몸은 나아졌지만, 에너지가 없기에 배가 고팠다. 이럴 줄 알고 바나나를 더 사두었었지만 과일만 먹었더니 입에 단내가 물씬 나는 느낌이었다. 괜시레 스프라이트가 생각이 나고 칼칼한 카레나 걸쭉한 달 소스가 생각나는 저녁이었다. 밖에서 시끄러운 영어가 들리길래 한국인인가 싶어 내려가 봤지만 아그라 포트를 보고 돌아온 Joanna였다. 나 때문에 혼자 아그라 포트를 가게 되어 미안했는데 다행히 저렴한 가격에(릭샤를 10 INR만 내고 다녀왔다고!) 잘 보고 왔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겠냐는 말에 또 탈이 날까 두려웠던 데다가 마침 다른 중국인도 있길래 둘이 가라고 보내주곤 밤길을 걷기로 했다. 아직 디왈리를 다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마저 터뜨리지 못한 폭죽을 터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헤이! 헤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쳐다봤는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우리나라로 치면 송편 빚듯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뭐냐 물으니 '뿌리! 뿌리!'를 외쳤다. 아, 음식의 이름이 뿌리였던 것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기름 솥에 튀긴 튀김을 뿌리라고 하는데, 카레를 곁들여 먹는 것을 길거리에서 봤었다. '두 유 원 투 트라이?' 보통 이런 경우 접시에 음식을 담은 다음 가격을 부르는 케이스가 있었어서 나는 또 강박적으로 '이즈 잇 프리?'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막 웃으며 힌디어로 한참 떠들다가 '노, 프리! 포 해피 디왈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바로 옆에는 인도 사원이 있었고, 사원 주변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대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인도에서는 항상 '노 쌩큐'를 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달려다는 릭샤 운전수, 항상 '헬로 마이 프렌드~'를 외치는 식당 주인, 옷깃을 붙잡는 아이들. 항상 나의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려는 그들의 모습에 늘 경계하고 있던 것이었다. 디왈리 때문이 든, 인도 사람들이 원래는 친절해서든, 그날 대접받았던 뿌리는 나에게 있어서는 따뜻한 인도의 모습을 느끼게 해 준 음식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냥 산책하러 갔다가 받은 대접이라 전화도, 카메라도 챙기지 못해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