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3일, 43일 차, 델리
이제야 몸이 제기능을 할 수 있는 상황인 듯했다. 화웨이에서 고기를 많이 먹은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된 듯하다. 인도에 오면 강제로 다이어트를 하는 기분이다. 분명 먹는 양은 늘거나 비슷한데 맨날 먹는 게 채소뿐이니까. 아무튼 어제 먹은 닭과 양 덕분에 힘이 많이 돌아온 듯하다. 그 힘으로 오늘은 델리에서 볼 수 있는 볼거리들을 보러 걸어 다녀 보기로 한다.
일정 : 숙소 - 간디 박물관 - 라즈 가트 - 붉은 성 - 올드 델리
숙소에서 올드델리의 간디 박물관까지 약 3km. 릭샤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걸으면서 풍경도 보고 사람도 보기로 한다. 이 판단은 사실 좋지가 못하다고 나중에 생각했다. 공기 오염이 심각한 델리를 걷다니. 그래도 지나가는 길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여행 속 또 다른 재미!
현지 식당도 좋지만 난 인도에서는 길거리 음식이 최고 좋은 것 같다. 5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가 분명 같은 음식인데도 가게마다 향신료를 섞는 비율이 제각각이라 맛이 항상 다르다. 물론 내 이장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지만. 교통비가 저렴한 인도에서 대부분 릭샤를 타고 다니겠지만 가끔은 걸어가는 느림의 미를 느껴보시길.
한참을 걸어서 간디 박물관에 도착했다. 사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이과생답게 세계사를 정통하게 알지 못한다. 누군가 나에게 간디가 누구냐 물으면 '비폭력운동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낸 인물'이라던가 인터넷에서 유명한 'Be폭력 주의자, 유혈사태의 대명사'라고 대답할 정도니까. 그런 나에게 간디 박물관은 간디의 역사적인 의미뿐 아니라 간디가 인도인들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안에 있는 간디의 삶을 보면 우리나라 생각이 물씬 난다. 영국의 식민치하에서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통일에 앞장섰던 그는 인도인들에게는 국부로 칭송받는데, 모든 지폐에 간디가 그려져 있을 정도.
간디 박물관 근처에서 조금 벗어나면 라즈 가트(Raj Ghat)이라는 큰 공원이 있다. 한글로 해석하면 '왕의 터'인데 간디가 국민장으로 화장되었던 화장터인데 지금은 공원처럼 구성되어 있다.
평화로운 공원의 모습을 보면서 억지로 공원을 만들려고 하고, 억지로 동상을 만들면서까지 누군가를 기억하게 만들려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요한 건 시설물과 동상이 아니라 그 인물이 실제로 걸어온 행적과 그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더욱 애틋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써서, 아니 정확히는 오늘 일정 시작 전에 조드푸르행 열차 티켓 때문에 시간을 많이 써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붉은 성(Red fort)으로 향했다. 사실 아그라 성이 더 멋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파서 못 간 나로선 대리만족 수단이 필요했다. 인도에서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성이었다. 사막 속의 성, 사실 이건 나중에 자이살메르에서 보게 되겠지만 나라마다 다른 성의 모습을 늘 재밌게 보고 있다. 인도의 성은 유럽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높게 솟은 성벽은 유럽의 성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지붕이 둥근 형태는 이 지방 특유의 느낌을 가졌다.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지어져 붉은 성이겠으나 아그라 성도 실제 붉다고. 해가 저물수록 붉은 성은 더욱 붉어지며, 해가 지면 은은한 조명 때문에 또 한 번 아름답다. 인도의 관광지들은 가격이 창렬 하기로 유명한데, 붉은 성은 외관이 아름다우므로 내부에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아그라 성을 못 본 입장료로 들어가서 보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야간에는 야간 조명 공연(그러나 한국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힌디어로만 제공된다)이 있어 그것의 관람료인 60 INR만 내면 입장이 가능하다. 물론 그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성의 전체를 둘러볼 수는 없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인지 사람들도 많고 무서워진 델리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술을 사기 위해 와인샵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 인도에서는 술을 안 파는 식당들도 왕왕 있다. 그래서인지 술을 와인샵에서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좀비처럼 사람들이 손을 허우적대면서 술을 사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뭔가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 같아서, 늦은 시간의 귀가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일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쉬움 반, 즐거움 반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