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4일, 여행 44일 차, 델리
오늘은 델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밤 아홉 시에는 야간기차를 타고 조드푸르(Jodhpur)로 이동해야 한다. 가기 전에 미처 보지 못한 델리의 볼거리인 쿠틉 미나르를 보고 이동하기로 한다. 오늘은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어제 간디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국인 '현민 형님'과 함께 돌아보기로 한다.
일정 : 쿠틉 미나르 - 올드 델리 역
출발 전 간단하게 뿌리 집에서 뿌리 한 접시를 먹고 출발했다. 현민 형님은 처음 먹어보는 인도 길거리 음식이 입맛에 잘 맞으시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맛있게 뿌리를 나눠먹고 있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인도인 모녀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굉장히 환한 미소로 자기 딸이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도 같이 보고 있다며 대답해 주었다. 박신혜와 이민호를 (아마 '상속자들'을 재밌게 본 모양이다) 굉장히 좋아하고 가수는 엑소가 최고라며 방긋 웃는 모습에 엑소와 이민호 그리고 박신혜 님께 감사해하며 웃으며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인도인들이 우리 뿌리 값을 계산했던 것! 사실 그 뿌리가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단순히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선뜻 음식 값을 계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알기에. 몇 번을 거절했지만 완고한 그들의 태도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식사를 마치고 라씨를 한 잔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델리에서 처음으로 라씨를 시도해 보았다. 위생상태는 바라나시보다 훨씬 못하지만 맛은 괜찮았다. 그리고 이 라씨는 거대한 스노볼의 첫 눈가루였다.
쿠틉 미나르는 뉴델리로부터 메트로로 30분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쿠틉 미나르 역에 내려서 도보로 1km 정도였기에 릭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보통 몇 km를 가던 릭샤 기사들은 100 INR을 부르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무슨 일로 10 INR를 부르는 것! 중간에 어디를 들른다고 하긴 했지만 10 INR인데 무슨 상관있겠냐며 우리 둘 다 릭샤에 몸을 실었다. 알고 보니 쿠틉 미나르를 가기 전 기념품 샵에 먼저 들러야 했던 것! 들르는 것은 상관이 없었는데 우리는 살게 없었으므로 그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성의 없게 샵을 둘러보고 나왔더니 릭샤 기사가 '10분을 봐야 나한테 커미션이 온다. 너희가 10분을 채 보지 않았으므로 다른 샵을 하나 더 가겠다.'라고 말하는 것! 고것 참 괘씸하다고 현민 형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갔고 두 번째 샵에서는 약속대로 10분을 보고 나왔는데 릭샤 기사가 짜증을 그렇게 낼 수가 없었다. 어쨌든 쿠틉 미나르에 도착했고, 약속한 10 INR을 주자 돈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 뭐지 공짠가 싶어 가려니까 '코리안 텐 루피'를 달라던 것. 한국돈 10원 달라는 건가, 그럼 5루피인데? 싶어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기념품 샵에서 물건을 사지 않았으니 (커미션이 오지 않았으니) 자신에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것. 현민 형님이 거기서 어이없음이라는 것이 폭발하셔서 성을 내셨다. 그 인도인도 화가 났는지 자기 차로 우리를 받는 시늉을 하려고 차를 가까이까지 확 몰아왔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인도인이 자기 친구들 불러서 이모저모를 따저보자 길래, 순간 '아 이거는 인도에 뼈 묻힐 각 이다.' 싶었다. 형님께 '10 루피 주고 그냥 가야 된다, 얘랑은 싸울 수 있는데 다구리(?)는 안될 것 같다.'라고 말씀드려서 10루피를 던져주고 '네가 약속한 건 10 루피니 이 돈 받기 싫으면 버리던가 알아서 해!'하고 빛의 속도로 천천히 빠르게 걸어 나왔다. 쿠틉 미나르 입구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안심했고, 혼자 여행했으면 이런 상황에서 당황했을 텐데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가끔은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쿠틉 미나르는 일종의 석탑인데 그 높이가 상당하다. 바로 옆에는 원래 있던 신전을 없애고 지으려던 더 높은 석탑의 기초만이 남아있다. 건축가가 짓다 사망하여 더 이상 지을 수 없었다나. 한참을 놀라면서 주변까지 잘 보았다. 주변 풍경은 이탈리아 로마의 포로로마노 같았다.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쿠틉 미나르 이후로 무언가를 더 볼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됐지만 동선들이 다 돌아서 움직여야 했으므로 뉴 델리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침 현민 형님이 '어차피 방 체크아웃했을 텐데, 내 방에서 쉬다가 밤 기차 타라'고 배려해 주셔서 형님의 방에서 쉬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라씨가 꽤 마음에 드셨던지 한 잔 더 하자고 제안하셨다. 라씨야 늘 맛있기에 나도 한 잔 더 하는 것에 동의하고 맛있게 마셨다. 현민 형님 방에서 한참을 쉬면서 현민 형님의 일정을 도와드렸다. 내가 이미 했던 일정이기에 괜한 오지랖(!)이 발동하여 형님의 기차 예약과 일정까지 도움을 쫙 드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늘 야간기차는 밤 9시에 탑승해 8시경에 도착하는 11시간의 여정. 그런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화장실은 가급적 이용하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라씨 두 잔의 힘일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 날 이후로 라씨는 하루 한 잔 이상 먹지 않는다. 아무튼 배가 너무 아파 바나나도 챙겨 먹었지만 난 결국 기차 화장실을 이용했다. 1+1이 항상 좋은 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