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4일, 3일 차, 홍콩
"왜 홍콩을 가? 시간 아깝게. 결혼하고 신행(신혼여행)으로 가면 되지!" 내 일정을 말할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유사한 대답 중 하나였다. 홍콩, 많은 한국사람에게는 정말 가깝고 (세계일주 코스로는) 정말 갈 이유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 준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일정 : 침사추이 → 람마 섬 → 센트럴 (IFC) → 빅토리아 피크
Hugo와 내가 침사추이에 갔던 이유는 Hugo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 위해서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내가 3년 전 약 40일간 떠났던 유럽여행을 위해 거쳐야 했던 환승지로 돌아가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르. 2013년 4월의 한국은 굉장히 추웠고, 영국과 프랑스에는 이미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난 바로 뒤였기에 나의 준비물들은 온통 가을, 겨울 옷이었다. 그 와중에 환승지가 쿠알라룸프르. 가지고 간 옷 중 가장 얇은 옷을 챙겨 입었음에도 땀이 비 오듯 했지만 환승지에서의 매력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공항에서의 휴식을 선택하지 않고 시내 관광을 선택한다(사실 대기시간이 13시간이어서 나갔던 것이지만). 쿠알라룸푸르에는 굉장히 유명한 빌딩(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이 있다. 당시 착륙시간이 너무 늦어 한 군데 정도만 볼 수 있었으므로 나는 그 쌍둥이 빌딩에 갔다. 삼각대를 준비했던 나는 여차저차 쌍둥이 빌딩을 찍고 있었는데 웬 아시아인 둘이 다가와서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는 친화력이 좋던 그들과 나는 어디서 왔는지, 무얼 하는지 간단한 이야기 정도를 주고받으며 타워 근처에서 같이 번개 출사(!?)를 했고, 같이 사진을 남기기에 이른다.
이 사진은 내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Hugo의 메일 주소를 받았던 나는 사진을 주었고 그 이후로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둘은 서로 여행했던 곳의 사진을 보내주면서 3년간 메신저 펜팔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그가 한국에 오기로 했지만 안타깝게도 비자 문제로 올 수 없어서 내 일정을 수정해서 홍콩을 먼저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중국에서 지내는 Kenny가 연휴를 이용해서 홍콩으로 왔고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침사추이 근처 딤섬 가게에서 나, Hugo, Kenny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그들의 고등학교 동창 Yolanda―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다. Hugo에게 들은 것인데 침사추이에 있는 Heritage 1881이라는 곳은 과거 홍콩에서 출발하는 여러 배들의 시차를 보정하고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3년 동안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다가 만난 우리들을 위한 안성맞춤인 의미의 장소여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원래 식사를 마친 뒤 우리의 계획은 홍콩의 시장들이 몰려있는 몽콕(Mong Kok)과 침사추이 근처의 항만의 풍경을 함께 보고 사진을 찍으러 다닐 예정이었다. 그런데 Kenny도 Yolanda도 관광객처럼 다니지 말자(?)고 제안했고, Hugo는 원래는 다음 날 나와 같이 가서 트래킹과 물놀이를 할 계획이었던 비밀 장소(?)를 오늘 가자고 말했다. 그 비밀 장소는 바로 람마 섬(Lamma island). 홍콩은 우리나라처럼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졌다. 큰 갈래로 나누면 카오룽 반도와 본 섬, 그리고 란타우 섬이 있으며 그 외의 작은 섬들이 몇 개 더 있는데 그중 하나가 람마 섬이다. 중화권 사람들에게는 주윤발의 고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나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람마섬을 갔는데, 내 여행의 전체적인 일정을 고려했을 때 이 친구들이 나를 훈련시키려고 데려간 줄 알았다.
홍콩 시내는 덥고, 습하고, 시끄럽고, 매연이 가득해서 아수라지만 여기는 그에 반하면 완전 천국이다. 물론 특정 구간에는 그늘이 없어서 걸을 때 굉장히 땀이 나지만 구간의 약 60~70%가 그늘이 있는 구역이라 굉장히 트래킹 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Yolanda의 말로는 홍콩 본 섬 내에도 그렇고 몇 군데의 트래킹 코스가 있고, 우리들―홍콩러를 말하는 건지, 그들을 말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은 여가시간에 트래킹을 자주 한다고 한다. 한국과는 다소 다른 풍경인가 싶다가도, 경우에 따라 다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홍콩을 단지 쇼핑만 하고, 도심지의 예쁜 풍경만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것! 트래킹에 도전해 보시길!
트래킹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정자에서 꽤 오랫동안 휴식을 했는데 너무 오래 쉬어서(!) 배 시간을 놓쳤다. 그래서 여유롭게 한 시간 뒤의 배를 타기로 한다. 혹 람마 섬을 여행하실 분이 계시면 뱃시간을 잘 알아 두시길.
뱃시간을 놓쳐서 일정이 미뤄진 상황이라 선약이 있는 Yolanda는 먼저 귀가했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예매한 Kenny와는 IFC몰에서 3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홍콩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였다. 미드 레벨의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하니 아찔했지만 다행히도 가장 빠른 경로로 정상까지 이어주는 '피크 트램'이 있었다.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의 그것과 유사한 피크트램을 타고 가면 홍콩의 야경을 이동 중에도 볼 수 있다.
단, 진행 방향 기준 오른쪽 창가에 앉을 것! 왼쪽은 산을 끼고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대신 내려올 때 왼쪽에 앉으면 된다. 정상에 올라온 뒤에는 건물 안으로 이동하면 야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로 이동이 가능하며 홍콩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입구가 두 개 나온다. 하나는 홍콩 섬 남쪽 방향, 다른 하나는 홍콩 시내와 북쪽을 볼 수 있는 방향이다. 아쉽게도 밤이 되면 홍콩 섬 남쪽의 풍경은 항상 불이 꺼져서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시내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서 아름다운 야경을 보았다.
남산과 달리 빅토리아 피크는 시내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단지 꽤 높을 뿐. 그래서인지 서울의 야경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인다. 그리고 낮에 보면 굉장히 허름한 건물들이 밤에 색채를 잃는 대신 코앞에서부터 빛을 뿜어내기 때문에 굉장히 화려함을 자랑한다.
홍콩에서의 모든 일정이 다 즐겁고 좋았지만, 이 날이 유독 즐거웠다. 어쩌면 우리가 홍콩에 와야 할 특별한 이유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쇼핑도 좋지만 숨어있는 홍콩의 매력을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