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5일, 4일 차, 홍콩
사실상 홍콩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베트남으로의 출국이 있어서 원래는 일정을 꼭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Hugo와 상의해서 늦잠을 자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할 땐 천성이 농부인지 또 기가 막히게 새벽에 깨버렸다. 새벽에 일어나서 물집이 난 것을 확인하고 물집에 실을 꽂아놓곤 기절하듯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12시였다. Hugo도 비슷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일정을 아주 여유롭게 시작했다.
일정 : 록푸 -> 몽콕 -> 침사추이
사실 오늘은 나를 위한 일정이라기 보단 Hugo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일정이었다. Hugo는 내가 오기 전에 캐논에서 주최하는 사진 마라톤을 신청했기 때문에 같이 움직였다. 체크포인트는 쿠오룬 반도의 록푸(Lok fu)였다. 체크포인트들을 하나씩 돌아다니면 홍콩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마라톤은 록푸를 출발지점으로 홍콩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쿠오룬 지역의 여러 포인트들을 둘러보도록 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과거 중국에서 넘어온 이주민이나 영국 사람들의 일을 돕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그래서 과거 마을이 있던 터로 가보면 과거 이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물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체크포인트는 구 카이탁 공항 근처의 골목들. 지금은 본 섬 외곽, 오히려 란타우 섬이나 마카오에 더 가까운 위치에 공항을 만들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홍콩 공항은 구룡반도의 끝인 카이탁에 있었다.
애석히 도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던 이 곳에 공항이 세워지면서 많은 비행기들은 강제로 곡예비행으로 착륙을 해야 한다는 '카이탁 랜딩'이라는 기술도 있었다고.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1980년대 홍콩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그림 중 하나인 도시를 굉장히 낮게 나는 그림도 카이탁 랜딩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서서히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카이탁 공항이 없어진 자리에 크루즈 항이 들어가기로 하면서, 집값이 많이 오른 동네라고 한다. 첨단의 발전을 달리는 홍콩 속에서 1980년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Oldies but Goodies'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모든 사진 촬영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면서 '일정 중 가장 홍콩스러운 곳이 이 곳'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식사. Hugo는 한식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어쩌면 그는 앞으로 한국음식을 먹기 힘들게 될 나에게 해준 최대한의 배려를 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MTR 무료 와이파이로 폭풍 검색을 해 보니 침사추이의 아이스퀘어에 경치가 좋은 한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움직였다. 파인 다이닝으로 분류되어 있어 비싸지 않을까 했던 Hugo의 우려와 달리 단품 메뉴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홍콩 물가라는 점을 반영해보면 한식당 자체가 비싼 가격이다.)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인 중경대하(청킹맨션)과 호텔 풀들, 그리고 침사추이의 야경을 보면서 맛있는 한식과 함께 소주를 기울였다.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Hugo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 와중에 생겼던 홍콩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문할 때 당연히 한국어로 주문해도 될 줄 알고 한국어를 했는데 종업원이 대부분 현지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행히도 그 가게에 한국인 점원이 딱 하나 있어서 그분이 내 주문을 받게 되었다. 'JI-HYE'라는 명찰을 달고 일하던 그녀는 굉장히 즐거운 모습으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있었다. 현지인들과 재밌게 여유를 부리다가도, 자신의 일을 해야 할 때에는 명확하게 돌아서는 모습에 한국에서 내가 봤던 모습들이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렇게 일을 즐겨 보았던 것이 언제였던가. Hugo와도 그 사실을 말하니 '홍콩 사람들은 대체로 일을 즐기는 편이야. 나도 그렇고.' 라며 말했다. 계산을 마치고 Hugo가 그녀를 불러 살기에 불편함은 없는지 등을 잠깐 물어보았다. 23살의 그녀는 이렇게 하다가는 시간이 그냥 가겠다 싶어서 바로 홍콩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반듯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도 동료들과 활기차게 웃으며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을 얼마나 즐겼었는지, 이 여행이 마치 도피처럼 도망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고민 없이 결단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 청춘이라는 게 어쩌면 저런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둘 서로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사건이 나와 Hugo에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큰 깨달음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 몽콕에 갔던 이야기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쓰는 몽콕 이야기.
홍콩 사람들에게 몽콕은 우리나라의 동대문 같은 공간이라고 한다. 물론 동대문은 옷만 구입할 수 있는 한정적인 마켓플레이스인 반면 몽콕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이 다 있다는 점이 차이. 아마 몽콕 야시장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많이 몽콕을 찾을 텐데, 이 몽콕이 홍콩러들에게는 수치(?)의 대명사라고. 몽콕―그러니까 줄여서 MK, 침사추이는 Tsim Sha Tsui의 약자를 따서 TST라고 한다.―스타일이라는 말이 굉장히 안 좋은 뜻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몽콕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면 되는데, 염색된 머리에 독특한 머리스타일이 마치 동네 부랑배라던가 속된 말로 '양아치'를 떠올리게 해서라고 한다. 혹시 홍콩 여행을 갔는데 같이 간 친구가 나를 성가시게 한다면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해 보자! "You're like MK!"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