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노이에서 만난 사람

2016년 9월 26일, 5일 차, 홍콩에서 하노이로

by 오상택

오늘은 홍콩에서 하노이로 이동하는 날이다. Hugo와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행 버스에 올라탔다. 비행기는 오후 한 시였지만 9시에 도착해서는 사진을 정리하고 영상을 만들고 소일거리를 하다가 느긋하게 출발했다. 애초에 국가나 도시의 큰 이동이 있으면 아무 일정을 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기 때문에 하노이에 가서도 여유를 누리리라 다짐했다.



일정 : 홍콩 국제공항 → 하노이 국제공항



베트남 예행연습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는 예전에 한 번 와본 경험이 있어서 길도 쉽게 찾고, 출입국심사에서의 굴욕(!)도 없었다(사실 있을 법했는데 그 역시도 인도 비자를 보고 수긍했으니 이미 당한걸 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이동수단은 다양하다. 내 숙소는 호안끼엠 호수에서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대형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쉽게 가지만 가격이 제법 (사실 한국 물가 기준으로는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기본료가 500 원부터인 택시니까) 나가기 때문에 9000 VND(한화로 450원) 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타야 할 17번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와 같은 상황의 동양인 2명이 혹시 공항 가는 버스를 아냐고 나에게 물었다. 중국인이었다. 그래서 난 17번 버스를 타야 하니 나랑 같이 가자 했는데, 자기들이 7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고 그 정류장은 이 근처니 여기서 타자고 말하는 것이다. 17번 버스는 좀 떨어진 정류장이라 걷기가 귀찮았던 모양. 뭐 얼마나 차이 나겠어 싶은 마음에 알았다고 응했는데, 이 'CHINA'들 덕분에 엄청나게 '차이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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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버스의 종점부터 호스텔까지는 6km였는데, 이 거리를 짐을 짊어지고 걸어야 했던 것. 6km가 사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큰 어려움이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내 발에 이미 물집이 나있다는 것. 물집이 심해질 까 봐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하노이는 오토바이가 정말, 정말, 정말 많은 곳이기 때문에 마스크 없이 호흡하면 '아, 내가 매연을 먹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너무 힘들었다. 초장부터 힘든 예행연습이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자 중국인들이 '뒤를 돌아봐, 정말 예뻐' 라길래 돌아봤는데 빌딩들 사이로 해지는 모습과 오토바이 떼(!)를 볼 수 있었다. 비로소 진짜 느껴졌다. 내가 베트남에 와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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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과 나는 숙소가 한 골목 차이로 있어서 숙소 근처에서 헤어졌다. 저들 덕분에 오자마자 땀을 뻘뻘 흘리며 걷게 되었지만, 저들 덕분에 그 땀을 흘리는 동안이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 저들에게 어떤 연락도 없었다. 아마 걷는 게 죽기보다 싫어졌는지도 모르지 :-(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다

힘들게 숙소를 도착했는데 또 이마저도 옆 건물. 일이 안 풀리려면 이렇게 안 풀린다. 어쨌든 제대로 된 건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물집에 실꽂기. 군대에서 배운 방법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인다. 여러분 군대를 갑시다(슬픔). 쉬고 있는 중에 같은 방 독일인이 같이 주변 산책하고 뭐 마실 건데 갈 거냐고 물어서 나는 거기 가서 밥을 먹고 마실 것도 좀 마셔야겠다 싶어서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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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끼엠으로부터 꽤 긴 거리로 여행자 거리가 이어져있다. 많은 호스텔들이 있고 노점 식당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한 카페에서 간단히 먹을걸 먹고 같이 마실 걸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미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노이에 머무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나에게 내가 갈 여행지의 다양한 정보를 주었다. 지난 학기 학교 도서관에서 문득 베트남 관련 책자를 읽고 바로 티켓을 구입해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긴 카메라도 따로 없는데 왠지 남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10유로짜리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오게 되었다고. 홍콩에서도 그랬고, 이 사람도 그렇고 정말 대단한 결단력이다. 사실 나이가 제일 부러웠다.


거의 다 마시고 일어날 즈음에 한 한국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도 오늘 떠나는데, 맥주를 너무 많이 사놔서 남은 맥주 좀 가져겠냐며. 공짜 맥주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알았다고 하고 그의 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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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60929_060756296.jpg 한국인 여행자를 싫어하는 국호씨랑.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다이나믹 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 없지만, 그에게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50만 원으로 유럽에서의 2개월 생존! 유럽에서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50만 원으로 2개월을 생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교통비만 해도 50만 원이 드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사실 국호 씨는 2개월의 유럽여행을 제대로 준비했으나, 암스테르담에서 총기 강도를 만나서 가진 돈을 전부 털리게 되었다고. 그래서 부모님에게 거짓말로 급전을 받고, 근처 호텔에서는 불쌍하다고 특별 할인가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텔에서 유럽 무전여행을 폭풍 검색한 결과 나온 것이 카우치 서핑. 그는 카우치 서핑으로만 2개월가량의 유럽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외국인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다.


그가 나에게 여행을 잘 하라며 당부했고 신신당부한 것 중 하나는 '로컬이 돼라'였다. 누구나 가는 식당을 피하고, 한국인을 최대한 피하고, 숨겨져 있는 골목을 걸으며 가끔은 계획에 없는 산책을 해보라는 것. 열두 시가 다돼서야 다시 숙소로 들어왔고 여행에서 극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하노이에게 감사해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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