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5일~16일, 여행 55~56일 차, 자이푸르
인도에는 4가지 색채를 가진 도시가 있다고 한다. 금빛의 자이살메르, 백색의 우다이푸르, 청색의 조드푸르. 그리고 마지막 한 도시가 이제 가게 될 핑크색의 자이푸르이다. 앞선 3개의 도시가 도시만의 색채가 명확했기에 큰 기대로 자이푸르행 새벽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침 조드푸르로 갔던 친구들도 자이푸르로 오고있다는 소식에 자이푸르에서의 여행이 기대되기도 했다. 대신 우다이푸르의 숙소가 쌀쌀했고 새벽열차의 추위 덕에 약한 감기기운도 오고 있어 기대만큼의 걱정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실고 출발했다.
새벽에 출발한 기차는 오후 한 시가 다 되어서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조드푸르에서 출발하는 석재와 정우, 혜원은 3시 30분 도착 예정인 기차였고 남는 시간에 잠시 나가 모자란 유심 데이터를 충전하고 기차표를 확인하기로 한다. 플랫폼을 나와 역 출구로 가는데 익숙한 배낭을 발견했다. Joanna였다. 조드푸르에서도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마주쳤었는데 자이푸르 역 한복판에서 만나다니!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인도 여행을 마무리 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델리로 돌아가려는 Joanna였다. 서로 신기해 하며 자이푸르 정보를 간략히 공유 받고 들어오는 기차로 Joanna를 보냈다. 생각치도 못한 만남에 서로 즐거웠다. 부디 호주에서의 여정이 무사하길! 역을 벗어나 데이터를 충전하고 기차표도 확인 한 뒤 친구들을 만났다. 아쉽게도 4명이 함께였던 조드푸르였지만 자이푸르에서 만난 건 준영이를 제외한 셋이다. 준영이는 조드푸르에서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니 뎅기열(!) 판정을 받았기에 휴식을 취하고 네팔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 숙소를 잡기 위해 릭샤를 탔는데 릭샤 꾼이 데려다 준 곳은 숙소 밀집지역이기는 하나 너무 오래된 숙소와 비싼 숙소만 가득 한 곳! 짜증을 한아름 안고 기존의 숙소 밀집지역을 가려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소리들이 들렸다. 자이푸르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식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무언가 느낌이 결혼식의 그것!
알고보니 결혼식은 내일이었고 하루 전에 가족들이 모여서 즐기는 피로연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티카를 발라주고, 각종 달다구리(영어로는 그냥 Sweets이라고만 했다)와 짜이를 주며 잠시나마 인도인들의 결혼 문화를 느껴볼 수 있었다. 릭샤기사때문에 났던 짜증이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상냥한 인도인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담을 수 있었고, 직접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생각치 않을 때 볼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았다. 실컷 축제를 즐기다가 숙소를 잡지 않았던 우리 상황을 고려해 그들의 자상함을 뒤로 한 채 숙소를 잡으러 나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KFC를 갔다. 각자 먹고 싶은 메뉴(난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걸 시켰지만...)를 시켰는데 가격이 메뉴판과 달랐다. 세금이 약 30%정도 붙었기 떄문. 의도치 않으니 계산서가 보이기도 했다. 허허.
나는 야간 열차는 아니어서 큰 피곤함은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낙타 사파리와 조드푸르의 강행군에 이어 야간열차까지 힘이 안들 수가 없었다. 아침내내 늦잠과 늦장을 반복하다가 열차 예매를 위해 역을 갔지만 티켓이 남아있는게 없었다. 내일 와서 예약하라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와서 숙소에서 쉬며 시간을 보냈다. 홍일점 혜원이는 혼자 일정을 시도하러 나갔다. 하루가 그냥 가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는지 석재가 '암베르 성에 가보자'라는 의견을 꺼냈고 그에 나와 정우도 가방을 메고 암베르 성으로 나섰다. 자이푸르에는 사실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진짜 말 그대로 봐야 할 스팟 자체가 도시 속에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암베르 성은 그 중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커다란 성이다.
산을 둘러싸며 있는 암베르 성은 정말 굉장한 규모였다. 그러나 성 내부에 들어가보면 생각보다 볼 거리가 없다. 인도의 성들을 많이 가봤지만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트 성 만한 성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오디오가이드의 효과가 큰 걸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암베르 성이 너무 크지만 그에 비해 볼거리가 적다고 판단한 우리는 한참을 헤매이다가 그늘이 있는 바닥에 주저 앉아 우리 이야기나 수근수근 대었다. 앞으로 가야 할 지역들에 대한 정보, 사막에서의 일,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인도가 다시 생각날까. 와 같은.
이 날 암베르 성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석재가 좋은 일(!, 개인적인 일이라 정확하게 기술하기 어렵다)이 있어 탄두리 치킨을 쏜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안주와 1차 맥주까지 석재가 모조리 쏘는 대범함으로 나와 정우, 혜원이는 그 날 고기로 포식을 했다! (동갑이면서도 이런 대범함을 보여준 석재에게 너무너무 감사.) 1차로 탄두리 치킨에 양고기 케밥, 닭고기 케밥... 거기에 맥주를 한 사람당 (정우 빼고!) 두 병에 위스키를 비워냈다. 한창 재밌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구의 연애 이야기에 누구의 조언과 그걸 듣는 누구의 거들기에 누구의 웃음. 1차로 사온 술이 떨어져 갈 즈음 나와 석재가 모자란 술을 사러 나왔다. 2차 술은 내가 샀다. 사실 여행에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실 돈도, 이유도 없는데 이 친구들과 보내는 진짜 마지막 시간이기도 했고, 매번 신세 지는 것 같고 미안한 것도 있어서 내가 샀다.
다녀오니 한국 분 한분이 더 앉아 계셨다. 어두워서 정확하게 볼 수 없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여행자셨다. 사실 여기서 부터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자기고백같은. 연애이야기로 1부가 끝나고 여행 이야기로 2부가 열렸는데, 거기서 나와 그 새로오신 분 사이에 작은(?) 언쟁이 있었다. 요점을 정리해 보면 그 분께서 '이런 여행을 해야만 한다' 라고 주장을 하셨고, 나는 '여행의 방식은 개인에 따라 다르니 그건 본인이 느껴보고 결정할 부분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왜 그렇게 강요하느냐' VS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강요다' 뭐 이러면서 말을 주고 받다가 분위기가 과열된 걸 서로 느낀 찰나에 다른 친구의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가서 마무리가 되었던 것. 그 자리에서는 그냥 '저도 과했다'라며 서로 넘어갔지만 아마 당시에는 그 분도, 나도 좋은 기분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술자리를 정리하면서 정우가 '형이랑 그 분,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말해주니 그 분위기가 그냥 무던히 흘러가진 않았다.
잠자리에 돌아와 생각할 때, '그 분, 꼰대(?) 아닌가'라는 생각을 되뇌였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꼰대 같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60일이 접어들었고, 여행에 방귀 꽤나 껴본 사람이 된냥 나도 누군가한테 감놔라 배놔라 하는 꼰대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 분도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시고, 경험이 있으신 분이었는데 내 의견이랑 다르다고 근거 없이 우기는 '꼰대'같은 모습을 보인건 아닐까. 인도여행에서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때 정보를 주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으로 다가간 건 아닐까.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하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함께 찾아왔다. 그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이렇게 써내려가는 이유도 앞으로 그러지 않고 싶다는 생각에 적는다. 남은 여행 동안 감정적인 대응이나 내 의견에 대한 강요보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정보제공 정도와 의견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겠다고, 이 글과 함께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