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7일 ~ 18일, 여행 57 ~ 58일차, 자이푸르
과음으로 인한 두통과 어제의 부끄러운 기억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일찍 잠이 깨었다. 다른 친구들이 어딜 가냐고 혀를 내둘렀지만, 자이푸르에서 보고 싶던 것들을 오늘 안에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보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 석재에게 여권과 기차 에약서를 남겨놓고 바로 숙소를 나섰다.
알베르 성의 뒤통수(?)가 남아있지만, 자이푸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진짜는 나하르가트 성이라고 했다. 자이푸르 도시에서는 약 2~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마침 숙소의 다른 한국 분 한분이 간다길래 함께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성 앞까지 가려했으나 버스 노선이 중간에서 끊겼다며 모두 내리라고 해 약 1.5km를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성 앞에 서니 나와 같이 온 한국분 모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지그재그로 오르는 아득한 길이 꽤 오래 이어진다. 사실상 등산에 가까웠다. 성 내부 외에도 성벽을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코스가 조성되어 있지만 나와 한국인 동행은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참을 올라 정상에 올랐으나 성 입구가 없어 5분 이상을 더 걸어서야 성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올라가니 역시나 볼 것은 없었다. 특이한 것 중 하나가 왕 한 명이 왕비 아홉 명(!)과 생활했다는 궁전이 하나 있었다. 9개의 방은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왕이 원하는 날, 원하는 방에 머물렀다고.
괜히 왕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었지만 그 외의 볼거리가 없다는 점, 그리고 날씨가 굉장히 뜨거웠다는 점 때문에 어제의 암베르 성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주고받은 뒤 내려와야 했다. 같이 온 분은 암베르 성에 간다길래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을 남긴 채 헤어졌다. 나는 자이푸르 내 핑크 핑크함을 볼 수 있다는(?) 핑크시티로 이동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핑크색을 찾을 수 없었다. 4색 도시를 보았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이 곳의 색채는 너무나 빈약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핑크색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하와 마할'을 찾아갔지만 핑크보다는 오렌지에 가까운 이 색감. 다른 색의 도시에 비해 보이기가 초라한 이 곳이 속 빈 강정 같아 조금 속상했다. 그래도 하나 본 것 중 가장 기억 남는 것은 하와 마할 앞, 거리의 사진가! 다게레오타입(최초의 양산형 카메라) 구조에 칼 자이츠 렌즈를 갖고 있던 이 아저씨는 자기 사진기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즉석 해서 사진을 찍어주는데 200 INR (4,000원) 이라길래 순간 혹했지만 숙소에서 친구들을 보기로 한 약속에 그분 사진만 찍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자이푸르를 떠난 지금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이다. 사진의 품질이 생각 외로 좋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아저씨의 모습 때문에.
더운 낮 날씨 탓에 한참을 쉬고, 슈퍼에서 인도 라면을 사 와서 정우와 나와 석재가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는 일찍 잠이 들었다. 확실히, 어제는 힘들었으니까.
곯아떨어져서 느지막이 일어났다. 오늘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으니까. 낮동안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주워 먹고는 역으로 이동했다. 석재가 타칼 티켓 예매에 성공해 준 덕분에 나는 자이푸르에서 파탄콧으로, 나머지는 쉼의 도시 바라나시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짜로 나와 저들이 마주칠 확률은 없기에 마지막 인사였다.
이 여행기에 다 적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꿈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같이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동갑내기 석재와 동생 같지 않은 정우 그리고 막내이자 홍일점이어서 항상 오빠들 사이에 치이는 혜원이. 그리고 여기에는 없지만 조드푸르에서 뎅기열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 막둥이 준영이까지. 모두 자신의 여행을 끝까지 안전하게 그려가길 바라면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인사했다! 바라나시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마음껏 즐기길!
그들이 가고 내 한 시간 뒤 내 기차가 왔다. 이제 진짜 혼자가 되었고, 조사 중에서도 정보가 제일 부족해 미지의 세계인 파키스탄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P.S)
파탄 콧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왔다. Ashu와 Prince 그리고 두 명의 경찰과 한 명의 군인. 처음에는 정적이 흐르던 기차에서 내가 'I like PUNJABI MUSIC'이라 말하며 중학교 때 유행하던 '뚫훑송(...)'을 불렀다(내가 왜 그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 순간 기차는 펀잡 음악의 축제가 열렸다. 알고 보니 그 기차는 펀잡지방을 지나가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펀잡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 거기에 '뚫훑송'이라고 알려져 있는 Tunak Tunak Tun은 인도의 국민가수가 부른 명곡이라고... Oldies but Goodies라고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한참을 노래를 듣고, 한참을 인도 이야기를 들으며 수다를 떠는 바람에 야간기차에서 1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