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9 ~ 20일, 여행 59 ~ 60일 차, 맥.간.
1시에 잠이 든 야간열차에서도 여행자 시계는 간다. 기똥차게 5시에 잠이 깼고, 마침 그 시간에 Ashu와 Prince는 자신들이 내려야 할 역이라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들이 내렸다면 내가 내리는 역과도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GPS 상에서 70km 정도의 거리에 역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침으로 준비한 과일과 어제 먹다 남은 과자를 먹고 짐을 간단히 정리해 놓은 상태에서 누워서 쉬기로 했다.
인도의 기차는 느리다. 70km를 한 시간 안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시간 쯤 자고 일어나서 위치를 확인했는데 곧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는 넣고 얇은 외투만 남기고 정리를 마치고 가방을 아래로 내려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왠 요상한 카톡이 왔다. 아버지를 통해 온 카톡이었는데 간단하고 정중하게 (굉장히 표현이 저급했으므로 자체 필터링을 거쳐본다) 요약하면 '촛불을 들기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 라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누가 봐도 유언비어였고 말도 안되는 조작되어진 증거들로 작성된 유언비어였던 것.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카톡으로 '그런 메시지는 보지도, 전달하지도 마시라'며 이래저래 답변을 드렸는데 열차가 멈췄다가 출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한 것 같아서 '파탄콧? 파탄콧?' 주변에 묻자 '파탄콧! 파탄콧!' 이라고 대답이 왔다. 황급히 배낭을 들고 기차 출구로 갔지만 너무 이동속도가 빨라 뛰어내리기 힘들 정도로 가속이 붙어있었다. 그랬다. 나는 카톡에 대답을 하려다가 기차역을 놓친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들한테 왜 그런 카톡을 보내서 라는 원망을 했다가 내 자신한테 실망감이 다가왔다. 그런 것도 하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서니, 내가 이러려고 세계일주를 나섰나 하는 자괴감이 찾아왔(이 문장이 뭔가 익숙하게 들린다면 기분탓)다. 결국 나는 파탄콧에서 약 20km 떨어진 카투아라는 역에서 내리게 되었다. 공장밖에 없는 이 황량한 곳에서 어떻게 나는 파탄콧에 가야하나하는 막막함이 찾아올 때쯤, 기차에서 날 본 것인지 한 청년이 다가와서 '나도 파탄콧 방향쪽으로 가야하니까, 나랑 같이 버스터미널 가자. 여기서 2km 정도 걸어가면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마치 그 청년의 꼭두각시가 된 것 마냥 멍하니 따라 나섰다. 북인도 주요도시는 뭔가 내가 들어볼 법한 곳, 그리고 역에서 터미널이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은 곳이 많았는데 이 쪽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찌됬든 덕분에 버스를 타고 파탄콧으로 돌아왔고, 파탄콧에서 나의 최종 목적지인 맥클로드 간즈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후 4시에 기차를 타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2시가 되어야 맥클로드 간즈에 하차를 할 수 있었으며, 방을 구하기 까지 한 시간 정도 헤맨 덕에 3시가 되어 체크인을 했으므로 도합 23시간의 이동이 마무리되었다. 아마 인도 내에서 가장 긴 이동이 아니었나 싶었고, 이동을 마치면서도 '내가 이러려고 여행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이 말에도 무언가가 떠올랐다면 기분 탓) 샤워기를 틀었는데 찬물... 온수기를 안틀어 놓은 직원들에게 화를 내며 또 한 번 '내가 이러려고...'를 반복해야 했다. 피곤한,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다.
푹 잤다. 사실 푹 잤다기 보다 뭔가를 하려다가 누워서 잠이 들었다. 졸지에 잡은 250INR에 잡은 더블룸을 혼자 쓰다보니 침대를 넓게 썼고, 뭔가를 누워서 하려다가 잠이 든 것. 자기 전 트리운드에 가는 한국분들이 있다길래 낑겨서 함께 가기로 해놨는데, 아침 일찍 가기로 했던 시간에 다행히 맞추어 일어났다. 맥클로드 간즈의 메인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사원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고 나서 그 곳부터 트래킹을 시작했다. 트리운드 트래킹은 맥클로드 간즈의 가장 큰 볼 거리 중 하나이다. 트리운드에 올라 히말라야 산맥의 산봉우리들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이 핵심!
중간 지점부터 약 3시간 정도 산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산의 험하기는 네팔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며, 만약 마을부터 올랐으면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산을 올랐어야 할 것 같다. 푼힐 전망대에서 보던 안나푸르나는 굉장히 먼 곳에 산이 있는 느낌이지만, 트리운드 트레킹의 정상에서 보는 히말라야 파노라마는 정말 예술이다! 고도가 높기에 구름의 이동이 빨라 구름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네팔이랑 정말 비슷한 듯하지만, 탁 트인 시야와 더 가까운 해의 위치, 주변 풍경들은 네팔 안나푸르나와는 또 다른 모습을 자아냈다! 고프로 타임랩스를 잊은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차이를 마시고, 낮잠을 자고, 한참을 늦장을 부린 뒤 내려왔다. 듣기로는 일몰 때의 산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와서 같이 등산했던 분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진 뒤 잠이 들었다. 왕복 5시간 가량의 짧은 산행이지만 그래도 어제의 피로도와 오늘의 산행이 어우러져 많은 피로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잠에 빠져 들었다. 어제는 뭔가 이동하느라 피곤했고, 오늘은 아침일찍부터 오후까지 산행에 피곤했는데 실제로는 하루를 알차게 쓴 것 같지는 않아 개운하지 않다가도 '이렇게 쉬면서 다니는 것도 인도 마무리니까 가능한 거야.'라는 생각이 드니 또 묘하게 설득력 있어서 그냥 잠이 들었다.
P.S)
저녁 식사를 등산 같이 했던 분들과 하려다가 혼자 식당에 나섰다. 식당에서 다른 한국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수록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 때, 우리 옆자리에 앉아있던 스위스 사람이 '너희 어느나라 사람이니?'를 묻기 시작하더니 한국이라고 하자 '곧 한국에 갈 것인데, 한국에서 갈만한 곳을 알려줘'라고 물어왔다. 졸지에 우리는 한국 지도를 그려서 한국에서 갈만한 곳을 추천했고, 그 보답으로 그 친구 역시 스위스 지도를 그려가며 스위스의 언어권과 갈만한 도시들을 추천해 주었다. 보기드문 풍경이라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