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1일 ~ 23일, 여행 61 ~ 63일 차, 맥.간.
9월 22일에 출발한 내 여행은 어느덧 2개월에 접어들었다. 길다면 긴 기간이지만 아직도 내 계획상으로는 더 많은 기간이 남아있었다. 맥클로드 간즈에서는 인도 여행을 사실 상 마무리하면서 휴식하러 온 경향이 크다. 인도에서 다녀 본 도시 중 가장 조용했으니까. 이틀을 지낸 생활 패턴으로 여행 2개월 동안 찾아온 나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남아공으로 입국할 비행기에 대한 일정 조율 (일행을 사전에 구해놓은 상황이라 서로 일정을 맞추기로 한다.)이 마쳐지지 않아 맥그로드 간즈에서의 일정이 늘어났다. 일정이 늘어난 김에 쉬기도 하고 보지 못한 것들을 보기로 한다. 트리운드 트래킹 외에도 맥그로드 간즈의 볼거리가 몇 가지 더 있는데, 그중 내가 보고 온 것은 달 호수(Dal lake)와 박수 사원과 폭포(Bhagsunag)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인도를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 혼자서 무엇을 보러 간 적이 없다. 바라나시부터 델리까지는 중국인들과, 델리부터 멕 클로드 간즈 트리운드까지 한국인들과 함께했으니까.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을 나 혼자 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고 이것은 꽤나 즐거웠다. 대화 없이 노래와 팟캐스트 만으로 즐겁게 이동했다. 달 호수도, 박수 폭포도 그 자체는 사실 조금 초라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두 곳을 다녀오니 어느덧 오후가 되었고, 시간도 남길래 달라이 라마가 강연을 하러 온다는 절 근처에 위치한 코라(Kora)를 걸었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코라를 걷는다. 코라 주변에는 '마니차'라고 하는 원통이 있는데, 이 마니차에는 불경이 적혀있고 이를 돌리는 행위가 불경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시킨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옴-마니-파드메-훔'을 외우며 돌리는 모습이 이상적이었다. 게다가 걷는 동안은 여기가 티베트인지, 인도인지 싶은 느낌.
오랜만에 온전히 홀로 걷는 이 시간이 아직도 즐거운 것을 보면 여행이 아직 나에게 지루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고 싶다의 느낌보다는, 그냥 어느 순간은 다른 사람과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맥클로드 간즈에 지내면서 대부분의 아침 식사를 하던 탈리집이 있었다. 쫄깃한 난이 일품인 그곳에 가면 많은 현지인들이 일렬로 앉아 밥을 먹는다. 50 INR(한화로 약 1,000원)에 한 접시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그곳에 은근슬쩍 나도 접시를 받아 들고 앉는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접시를 받아 들고 밥을 먹다가 그냥 옆에 있는 사람한테 'Good morning'을 외쳐 본다. 그냥 싸늘하게 보는 경우가 30%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인도 사람이라고 영어가 다 잘되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명사로 대화가 가능하기에, 밥을 먹으며 짧은 대화를 한다. 가끔 외국인들이 그 탈리집에라도 오면 20분이고, 30분이고 대화를 이어간다. 나 스스로 사람을 찾아서 심심함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변화였다. 사실 이건 동양권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갖고 있는 소양(?) 갖다. 특히 서양 쪽 사람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묻고,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을 건다. 나도 약간은 그런 모습을 갖게 되었달까. 그래서 아침시간이 제일 흥미롭다.
가끔은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인사하고 그들이랑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건 내가 혼자 밥 먹기 적적할 때나,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을 때 안주 공유나 술 공유(인도에서는 술을 큰 병에만 팔아 조금만 먹기가 힘들다)하고 싶을 때 지나다니는 한국 분들이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간단히 술자리 갖고 헤어지는 것. 여행 동행이랑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각자가 다른 여행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자신들의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고 서로 다닌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다. 맥클로드 간즈에서 만났던 두 그룹이 기억에 남는다.
20일 저녁과 21일 오후를 함께 보낸 리쉬 캐시에서 돈을 몽땅 털린 '영욱'이와 진주에서 무계획으로 오신 '상환'형님. 매 식사를 사과주와 멋진 경치를 보며 보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던 상환 형님은 항상 나와 영욱이의 여행기를 묵묵히 들으며 굉장히 많이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다. 이번 여행이 처음이라는 형님은 모든 것이 신기했고, 나나 영욱이 처럼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셨기에. 영욱이는 일찍 군대를 다녀와서 고민이 많은 친구였다. 자신의 꿈을 접고 새로운 운 것을 시작하려는 '힙찔이' 영욱이의 기상천외 여행기는 영욱이를 더 크게 만들겠지.
22일과 23일 저녁을 같이 보낸 민족고대 '민욱'과 '상혁' 역시 길에서 마주쳤다. 영욱이와 상환 형님이 나를 사과주의 길로 인도한 것처럼 그들을 맥간에서 볼 수 있는 맛난 술인 사과주의 길로 이끌었다. 밤마다 모모와 땅콩, 과자 같은 가벼운 안주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선후 배라기에는 너무 친한, 4살의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형제 같은 모습이 부러웠다. 네팔의 정상에서 XX를 외쳤던 이야기, 타지마할에서 이어진 XX 행진이 끊긴 이야기, 휴학한 이야기... 24살로 둘 중 형이었던 상혁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군대도 안 간 친구가 개척정신이나 이런 것들이 대단했고, 우연치 않았지만 그를 따른 민욱이 역시 대단하다. 20살, 과연 그런 결정이 쉽게 가능했을까. 둘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여행 자체를 같이 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을 이야기로 함께 보낸다. 가끔 지루할 법한 시간들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귓속을 채우고 별과 풍경을 보며 눈을 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일까, 여행 계획 실천은 많이 느슨해진다. 네팔에서 비자를 연장하지 않았던 것은 계획을 최대한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인도에서 어느덧 1주일 이상이 딜레이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변화, 바로 계획에 목메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23일은 호스텔에서 사진 정리를 하고, 파키스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훈자를 배경으로 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 관람하며 휴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만, 계획 자체가 어그러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데 오늘 일이 터졌다. 인도 이후 파키스탄, 그 후 남아공으로 가는 계획인데 파키스탄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이 너무 비싸 델리로 돌아와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마침 에티오피아 항공에서 저렴한 비행기가 있길래 결제를 하려는데 아뿔싸, 인터넷이 끊긴 것인지 결제가 실패했다는 창이 떴다. 바로 계좌부터 확인했는데, 돈은 빠져나갔다. 가끔 이러는 경우가 있다. 돈은 나갔는데 에약이 안 되는 경우. 계획에는 목메지 않는다. 다만, 큰 틀은 끝까지 갖고 간다는 것이 또 하나의 변화였다. 그런데 계획에 그리고 재정에 차질이 생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스카이프 크레디트로 급하게 카드사에도 전화해봤지만 승인이 난 거래는 내가 직접 해명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에티오피아 항공 측에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보냈지만 답변이 없었다. 게다가,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 호스텔 로비에서 트는 뉴스에서는 계속 Breaking news로 파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하면서 연기가 나는 산악지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품고 일단 암리차르로 이동하기로 한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 그리고 시크교의 성지 암리차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