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라호르가 주는 선물

2016년 11월 30일, 여행 70일차, 라호르

by 오상택

이틀을 쉬었다. 아무것도 안 해서 인지 죄책감이 들 정도였지만, 때로는 이래도 된다고 위로해 보았다. 오늘은 라호르 성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기로 한다.


인디언 과는 다른, 파키스타니!


숙소부터 라호르 성까지는 약 4km 남짓이므로, 한 시간쯤을 걸어가면 된다. 이 걷는 시간 동안 내가 파키스탄에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걸어가면서 내 인생에 찍어야 할 셀피를 다 찍은 기분이었다. 외국인을 보면 기본적으로 'Hello, How are you'를 묻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한 명이 찍기 시작하면 사람이 붙고, 각자의 카메라로 나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내 카메라로는 사진을 잘 안 찍어 몇 개 없지만…. 인도에는 인사로 안부를 시작하면 그 뒤에 목적이 붙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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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외국인이 굉장한 볼거리(?!) 인지라 인사하고 사진 찍는 것으로 시작해서 보통 먹을 것은 기본이요, 마실 것과 잠자리까지 내어준다고도 하니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홀드 라호르를 지나다 만난 한 슈퍼 사장. 자기 가게를 널찍하게 찍어달라고 부탁한 그는 나에게 음료수를 몇 개나 내어주고 그도 모자라 슈퍼에 있던 먹을 것도 꺼내 주었다. 다음에 사진 인화를 부탁했는데 다시 라호르로 돌아오면 그에게 사진을 전해주고 싶다.

라호르로 돌아가면 다시 보고 싶은 그. 이름을 적었는데 너무 어려워 외울 수 없었다.


나를 위한 선물 : 여행 중 면도와 이발


면도 전 내 모습. 수염에 크림 발라놔서 티가 안난다.

거창하게 '버킷리스트'랄까 까진 없지만, 사막에서 별을 보는 것과 같이 여행 중에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길거리에서 면도와 이발을 하는 것. 사실 그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때 문이었다. 안 하려면 안 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소중... 까진 아니지만 힘들게 자라준 털들이 조선시대 이방처럼 자라는 모양이 스스로도 보기 흉하고 불편해서 빨리 밀고 싶었다. 인도 암리차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서 결국 실패했지만, 파키스탄에 넘어오니 종종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가격으로는 150 PKR (1500원) 정도에 면도와 이발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라호르 성 앞에 있던 한 아저씨가 50 PKR에 면도와 이발을 모두 해준다고 해서 잽싸게 콜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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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와 이발 실황! 머리를 뭐 그리 오래 자르는지 싶었지만 생각보다 성공적! (앞머리 일자 뺴고...)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 엄청난 가격! 여행 중 나를 위한 선물, 성공적! 이발과 면도를 마친 상쾌한 기분으로 라호르 성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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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도 파키스탄도 관광객에게 받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힘든 것 같다. 라호르 성은 다른 성과 다르게 공원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사실상 무너진 곳들이 너무 많다. 라호르 성보다는 그 앞의 바드샤히 모스크가 더욱 더 아름답다. 입장료 안내고 모스크를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을 정도.


조용한 숙소에 사람이 오다


4인 숙소를 혼자 쓰고 있었다. 라디오도 큰 소리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두 명의 게스트가 들어왔다. 자유는 끝났지만 심심함도 덜었다. 일본에서 에디터 일을 하고 있는 이치로 씨와 무려 입자물리(!, 독일의 심 박사가 생각나는)를 전공하는 코타로였다. 일본어를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던 터라 전체 대화 중 20% 정도 듣고 혹시 이 이야기하는 거냐며 물으면 영어와 일어를 섞어 대답해 주는 그들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같이 찍은 사진이 없는 게 못내 아쉽기는 했다. 이치로 씨는 도쿄로, 코타로는 훈자로 향한다고 했다. 아마 코시로와는 다시 만나게 될 텐데...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혼자가 아닌 밤이 불편하지만 사람이 있으니 괜시레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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