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일, 여행 71일 차, 라호르
인도와 파키스탄, 고작 100km도 안 되는 거리로 떨어진 두 나라지만 생활환경이 다르다. 인도는 아침 일찍부터 모든 일과가 시작되지만, 파키스탄은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은 있어도 아침에 일하는 사람이 없다. 거리를 나가봐도 아침에 연 가게가 없다. 숙소 근처 가장 큰 슈퍼도 10시 반은 돼야 여니까. 애석히 도 나의 몸은 그 시간에 맞춰져 있지 않으므로 일찍 일어나도 아침에 뭔가를 할 수 없다. 보통 이럴 때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10시가 되어서야 밖을 나서 본다. 오늘은 훈자로 들어가기 전 심카드를 만들고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라호르에 먹을거리가 많다는데 의외로 나와보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특히 숙소 근처가 더더욱. 밥 먹기 전에 라씨를 팔길래 한잔 마셨다. 가격은 60 PKR(600원). 인도 루피로 환산해보면 35 INR정도이니 저렴한 라씨에 속하진 않지만 가격은 비슷하다. 이래저래 환전해보면 파키스탄의 물가는 인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다. 양은 훨씬 더 많고 맛은 부드러웠다. 파키스탄의 유제품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우유도 한번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차파티에 카레를 파는 가게에서 밥을 먹기로 한다. 이 것이 오늘 여행기의 포인트가 되는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 주문을 마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웬 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파키 스타니 치고 영어가 굉장히 유창했기에 대화를 나누었다. 16세의 소년은 시험을 마쳐서 오늘 일찍 끝나 자기도 밥을 먹으러 왔단다. 내가 주문한 것이 먼저 나오는데 소년이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왔다. 'Enjoy your meal!' 이런 파키스타니의 호의가 이제는 익숙해져서 고맙다는 인사와 식사를 이어갔다. 그는 '바쁘지 않으면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현지인의 초대를 늘 기대하는 나로서는 당연 '콜'을 외쳤다. 밥값도 그 친구가 내길래 '아, 정말 파키스탄은 혜자의 나라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릭샤를 타고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애석히(?)도 그 친구는 굉장히 유복한 편인 듯했다. 라호르 시내에서 꽤 큰 옷가게를 갖고 있는 아버지와 접객실이 별도로 있는 단독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집에서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자기 시험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내일이나 모레에 자기가 '라호르의 색다른 면'들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알겠다 대답하니 아빠 가게 직원의 오토바이로 날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아, 파키 스타니는 정말 친절한 애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고 숙소의 일본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친구 추가가 되어 있던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메시지는 날 헛웃음 짓게 만들었는데... 사실 파키스탄은 보편적으로는 굉장히 성문화에 보수적이다. 이슬람 문화권이 대부분 그렇지만 여자들 사진도 함부로 찍을 수가 없으며, 동성애와 같은 문화들은 이 나라에서는 양지에서 끌어올 수 없는 문화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를 파키 스타니에게 받게 될 줄이야. 어쩌면 억압된 문화 속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아닐까 싶기도. 애석히 도 벗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는 추호도 없기에 정중히 거절했지만 계속 메시지가 왔다. 단호하게 '그렇다면 난 널 라호르에서 다시 볼일이 없을 것 같아. 미안.'이라 대답하자 얌전해졌다. 저쪽의 문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 취향이 아니니까... 내 취향을 존중해줘 파키 스타니여. 오밤중에 헛웃음이 나오는 경험이었다. (나의 어떤 면이... 헙)
심카드를 만들고 나니 사실상 저녁이었다. 겨울 시즌이라 해가 빨리 진다. 4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5시가 되면 해가 사라진다. 숙소로 돌아가니 일본인들이 어딘가 갈 채비를 해놓고 쉬고 있었다. 어디가냐 물으니 '수피 나이트'를 보러 간다고. 매주 목요일 밤 9시에 라호르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볼거리 중 하나다. 수피라는 개념은 이슬람 문화권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라호르에서의 그것이 조금 더 신기하다나. 나도 따라나서기로 한다. 도착한 모처는 이슬람 신전이 있는 곳이었다. 보통은 조용하거나 그들의 율범을 읊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심상치 않았다. 북소리와 함성소리 그리고 모여있는 사람들. 수피라는 것은 일종의 춤과 음악을 통해 신을 만나는 의식이다. 거기에 덧붙여 사람들은 신을 더욱 잘 만나기 위해(?) 일종의 마약을 사용한다.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북소리와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어디선가 쉴 새 없이 던지는 과자와 사탕 심지어 어떤 이들은 10루피 지폐를 뿌리기도 했다. 그리고 두 명의 춤꾼이 그 좁은 틈새에서 빙글빙글 돌며 음악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 아니면 정말 신을 만난 건지 반쯤 돌아간 눈을 하며 춤을 추었다.
인도도, 파키스탄도 그들의 종교에 대해 굉장히 맹목적인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수피 나이트도 그의 한 면모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늦으면 릭샤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에 적당한 시간이 되어서 나왔다. 한 켠에서는 약과 마약을 위한 너구리 굴이 만들어졌다. 신을 마주하기 위해 약을 하는 건지, 약을 하려고 이 밤이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한 그 풍경이 라호르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