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바람의 계곡을 느끼다

2016년 12월 5~6일, 여행 75~76일 차, 훈자

by 오상택

훈자가 일본과 한국인들에게 특별히 유명해진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입봉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훈자에서 애니메이션 속 바람의 계곡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이틀간 산책과 산행을 나섰다.


12월 5일 : 독수리 둥지에서 바람의 계곡을 느끼다

나를 제외한 유일한 외국인(?) 문형은 개인적인 일로 오늘의 산행을 함께하지 못했다. 훈자에는 여러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그 중 난이도가 가장 쉽다는(?) 이글 네스트 코스를 올라가보기로 한다. 호스텔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원래는 그냥 훈자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인데, 그 바로 옆에 ‘Eagle’s nest’라는 호텔이 들어서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글 네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누군가는 2시간, 누군가는 3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출발했다. 어제 배웠던 바 대로 수로를 따라 걸어본다. 도로는 차를 위한 도로이므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져 있는 반면, 수로는 바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굉장히 높고 흙이 많은 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글네스트가 있는 부근의 마을로 이동할 때 까지 장관이 펼쳐진다. 중간 중간 볼 수 있는 훈자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덤이다. 사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감사 또 감사를 외치며 연신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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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 쯤 걸으면 이정표가 등장한다. 이글네스트로 가는 길은 여기서부터는 산책보다 등산에 가까워 진다. 내가 이글네스트로 갔던 이 날은 날씨가 좋아 멈추는 곳이 곧 뷰포인트요, 다리 아파 서는 곳이 곧 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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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 덕에 중간 중간 히치하이킹(!)으로 차로 몇 번 이동하였다. 덕분에 이정표로부터 한시간 반 쯤 지나서 이글네스트를 찾을 수 있었다. 첫 이정표부터는 계속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로 왔기에 길이 어렵진 않았다. 이글네스트 호텔 옆 언덕은 정말 말그대로 독수리 둥지 같았다. 황량한 흙 언덕, 그러나 중간중간 어떤이유로 생겼느니 모르는 울퉁 불퉁하고 옴폭 패인 지형들이 마치 둥지와 같았다.

이글네스트에서 바라보는 훈자 마을의 파노라마. 중앙의 라카포시, 우측의 레이디 핑거와 울타르 사르가 보인다
뾰족하게 올라온 레이디 핑거 그리고 울타르 사르에 연결된 거대한 설산이 구름을 내뿜고 있다

여기서 보는 훈자의 파노라마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앞뒤로 해발 7천여 미터의 울타르와 라카포시 그리고 독특한 형태의 레이디핑거와 그 외에 웅장한 산세를 가진 잡산(!)들. 그리고 그 산들을 따라 언덕에 조밀하게 주거지역을 형성한 훈자 마을까지. 그리고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 여기가 바로 바람의 계곡, 훈자였던 것이다! 한참을 구경하고 내려갈 때에는 현지인들의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숙소까지 한 번에 오게되었다. 내심 내려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먼저 ‘카림아바드 가면 같이 가자!’라고 말해주었다. 매번 느끼지만 파키스타니들의 친절함은 정말 최고! 돌아와서 개인적인 일이 끝난 문형과 식사를 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형은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앞으로 훈자에서의 날을 잘 보내기로 했다. 오늘도 식사 후 하늘에는 별이 쏟아졌다. 아름다운 훈자의 밤이었다.


12월 6일 : 훈자 사람들에게 바람의 계곡을 느끼다

훈자는 마을 자체가 경사가 있어 산책만으로도 다리가 당겨 온다. 그래서 일정이 굉장히 여유롭다. 뭐, 나의 운동 부족도 있고, 아시아에서의 마지막 나라이자 여행자의 무덤이라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은 탓에 일부러 빡빡하게 다니지 않는 것이지만. 훈자는 꽤 오래까지 왕국이 지속되었으며 그 왕국에서 사용하던 두 개의 큰 성이 있다. 카리마바드에 가까운 발티트 성,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알티트 성. 발티트가 경사가 높아 마실 산책으론 좋지 않아 아침에 알티트 성에 가보기로 한다. 알티트 성이 있는 곳은 카리마바드 내의 알티트라는 마을이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성을 입장해서 풍경을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가는 길의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대체로 훈자는 그런 것 같다. 특정 뷰포인트보다 어디인가에서 돌아보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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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트 성 근처의 호수. 너무 비싸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던 알티트 성. 발티트는 한번 근처에 가볼 의향은 있다

알티트를 나서고 나니 시간이 애매했다. 점심을 먹기전에 발티트 성 방향에 있는 하세가와 학교에 가보도록 했다. 하세가와 학교는 생전 훈자를 사랑했으며 울타르를 정복 중에 사망한 일본 출생 산악인 하세가와를 기리기 위해 그의 부인이 기부로 설립한 학교로, 훈자에서 가장 명문 학교로 손꼽힌다고. 입구에서부터 총을 든 가드아저씨가 있지만 굉장히 친절하시다. 나와 문형은 한참을 이 학교 앞에 앉아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워낙 사진찍는거 좋아하는 파키스탄 사람들이라지만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 가드아저씨가 준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몇 명의 사진을 찍어주었는지 모르겠다. 끊임없는 ‘원 픽쳐!’에 나와 문형은 계속 셔터를 누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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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둘러 쌓인 문형!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예뻤다

시험기간이라 아이들이 조금 바쁠 거라는 말에 다음에 또 보긴 힘들수도 있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문형이 파키스탄 아이들의 대체적인 생활 환경을 말해주었다. 여기 아이들이야 시골 마을이니 공부할 환경이 오히려 조성되는지 몰라도 보통의 아이들은 빠르면 3~4살 때부터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만큼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파키스탄 아이들에게 쉬운일이 아니라고. 특히나 이 하세가와 학교처럼 외국인의 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학교의 경우 영어와 우르드 모두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추후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중일을 제외한 극동아 지방을 이렇게 오래, 자세히 돌아보는 것이 필리핀 이후로 오랜만이기에 이러한 풍경은 낯설었다. 아직은 아시아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서는 길에 시험을 마치고 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바람의 계곡에 사는 아이들처럼 천을 두른 아이들. 이곳의 아이들도 바람의 계곡의 아이들처럼 평화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맘 껏 펼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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