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훈자,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곳

2016년 12월 7~8일, 여행 77~78일, 훈자

by 오상택

딱 3일이었다. 훈자의 좋은 날씨가 허락된 것은. 어젯밤 별이 평소 같지 않음에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날씨는 구름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원래 산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유럽에서 융프라우를 갔을 때도, 베트남에서 사파를 다녀올 때도, 네팔의 안나푸르나와 인도의 트리운드도 예측 불가능한 날씨로 인해 도움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했다. 훈자는 나를 허락해 줄까. 걱정되는 아침과 함께 일정을 시작했다.


12월 7일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아침엔 특별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제로 포인트 주변을 걷는다던가, 근처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짧게 담소를 나눠본다. 오후가 들어서 살짝 해가 들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하늘이 열린 게 아니라서 산을 보는 데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한다. 훈자 계곡 근처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자랑하는 울타르(Ultar sar)! 해발 7,000m를 넘는 울타르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불가능하고, 울타르 메도우라고 하는 베이스캠프 겸 평지까지는 일반인이 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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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르 메도우 중간 지점. 절벽사이의 이어졌었던 두 길 사이로 올라가면 울타르의 빙하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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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와 설산을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어 많은 분들이 찾는다. 보통은 울타르 메도우 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 질 녘에 돌아올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나와 문형은 점심 먹고 한시에 느지막이 나가야 했다. 울 타르 가는 길은 쉬운 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흙길을 가야 했고, 중반부에는 절벽을 지나야 했다. 길을 잘못 들어 암벽등반 수준의 길을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후반부에는 사람 한 명 겨우 설 수 있는 폭의 길을 걷기도 했다. 사실 오르기 전에 우리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늘도 안 열리고, 생각보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형님.’이라는 말과 함께 반신반의로 올랐는데, 올라선 곳에서의 풍경은 ‘올라오길 잘했다. 정말 길이 있다!’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나중에 안 거지만 우리가 간 곳이 울타르 메도우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중간 정도 되는 지점. 하지만 절벽의 아찔함과 절벽에서 보이는 라카포시 방향의 산들, 훈자 마을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울타르 메도우 내려오는 길. 사실은 사유지라 이 길로 내려오면 안 된다고

궂은 날씨에도 울타르를 성공(?)적으로 내려와서 쉬면서, 훈자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진 파수(Passu)에 대한 계획을 문형과 함께 짰다. 진작부터 가려고 했지만 문형의 개인적인 사정과 휴식으로 미뤄졌기에. 날씨가 안 좋다는 예보가 있지만 더 이상 미루기가 어려워서 나와 문형 둘만 가려고 했다. 훈자 마을에 있던 외국인은 총 네 명이었다. 나와 문형, 그리고 고급 호텔에 묵는 중국인 남성과 훈자에서 유명하다는 호주 여성. 그러나 어젯밤 우리가 모두에게 접선해보았지만 그들 모두 파수에 가지 않는다고 중국인 아저씨는 자취를 찾을 수 없었고 호주 여성은 혼자 다니기로 유명한, 몇 년째 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파수를 언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날 밤 라호르에서 만났던 코타로가 내가 있던 숙소로 온 것이다! 사실 훈자로 올 예정이었기에 내가 머무는 숙소를 알려주었었는데 고맙게도 내 숙소로 체크인을 한 것! 함께 방을 쓰며 파수에 가는 것으로 얘기를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실현되는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 말은 나와 문형이 훈자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이 되었다.


12월 8일 : 훈자의 보물찾기

어제 극적으로 합류한 코타로가 합류함으로써 적절한 가격에 파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호스텔에서 우리의 요리와 안전을 책임져 주는 이사 칸까지 무료로 가이드를 해준다며 따라나섰다. 파수는 카림아바드로부터 한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가는 길에 여러 볼거리들이 많아 훈자에 들르는 많은 분들이 반드시 오는 마을 중 하나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파수를 향해 간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는 사실 슬픈 사연이 많다. 이 도로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군인만 600여 명. 기념비가 훈자 마을에 있을 정도이다. 사연 많은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터널을 하나 만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옥빛 물색을 가지는 아름다운 호수, 아타바드 호(Attabad lake)를 만나게 된다. 날이 조금만 더 맑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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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바드 호수. 긴 터널 세 개를 지나도 끝나지 않는 규모로 수심이 약 110m에 달하는 굉장한 규모의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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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와 범람으로 인해 2010년 이 곳에 있던 마을과 과수원 등이 수몰되며 생긴 언색호인 아타바드 호가 지금은 관광지로 됐다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 아직도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거센 바람과 추위에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나와 문형, 코타로는 이런저런 재밌는 사진과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파수를 도착하기 전의 중간 지점 즈음에는 후사이니(Hussaini)라는 마을이 있다.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드가 아닌 이 마을 만의 언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명물 중 하나는 바로 아슬아슬한 발판만 있는 현수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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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내내 고수(?)인 이사 칸이 다리를 하도 흔들어 대서 걸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갈 땐 한참 걸리는데 적응이 되고 나면 손잡이도 안 잡고 성큼서큼 걷게 된다. 한참을 재밌는 사진을 찍은 것 같다. 후싸이니 마을을 지나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호수라 불리는 보리스 호(Borith lake)가 있었다. 아쉽게도 겨울철 보리스 호수보다는 여름철의 보리스 호수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호수 주변에 풀이 펴면서 장관을 연출한다고 하는데...

날씨도 안 좋은 데다가 겨울철이어서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 호수를 내려와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마침내 파수 마을의 입구에 다다른다. 우리는 여기서 빙하가 있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이싸칸이 자기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된 산행은 약 1시간이 넘게 행진했다. 가시덤불을 넘으니 커다란 검은색 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사 칸이 말하길, 빙하라고 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얼음이었다! 흰색의 빙하를 보려면 더욱 안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한참을 들어가고 나서야 우리는 투명하거나 아주 차서 안까지 하얗게 가득 찬 얼음, 바로 빙하를 보고 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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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들이 이루는 진짜 '설산'! 그런데 저 눈을 만지려면 2시간 넘게 눈과 먼지 바람을 뚫고 가야 한다

그런데 빙하가 있는 근처인 데다가 협곡처럼 빙하와 바위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엄청나게 차가운 돌풍이 불어닥쳤다. 머문 지 20분도 안 되어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긴 시간 바람을 쐬며 산을 타서 인지 차에 탄 모두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돌아오며 찍은 사진들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너무나 아쉬웠다. 날씨가 조금만 더 도와주었다면... 산은 언제나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2013년 스위스 이후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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