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12일, 여행 79~82일 차, 훈자
사실 이미 지낸 훈자의 일상들도 빡빡한 일정이 아니었다. 여행자의 무덤, 그 이름답게 나의 일정도 사실 하루에 할 만한 일정이 아닌 반나절이나 그 보다 짧은 일정을 하루에 소화하고 있었다. 잦은 정전과 인터넷 불량으로 연락은 잘되지 않고 바깥을 걸으며, 앉아서 햇살을 맞으며 쉰다. 훈자는 그런 곳이었다.
생각 외로 파수 빙하의 후유증은 컸다. 사실 하산 길에 넘어지기를 몇 번 반복한 탓에 손도 엉덩이도 쑤시기에 어디 멀리 다닐 생각을 못했다. 나와 문형은 거의 방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고, 일정을 길게 할 수 없는 코타로는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훈자를 돌아보겠다며 나갔다. 나는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대대적으로 세탁했다. 뜨거운 물에 세제를 잔뜩 풀어 그동안 빨지 않은 외투들까지 모두 빨았다. 금방 마를 거라는 희망이었지만 사실 날은 맑지 않았다. 바람에 마르겠지 싶어서. 얇은 옷과 얇은 바지를 빼고 옷을 전부 빨았더니 반나절이 다 가버렸다. 호스텔 로비에 내려가 보니 이사 칸이 양파와 마늘을 까고 있었다. 사실 그전부터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제대로 되는 메뉴도 없었던 데다가, 한식을 할 줄 안다는 이사 칸의 말과 다르게 김치가 모두 떨어져서 되는 한식이 별로 없었었다. 그런데 오늘, 재료를 사서 김치를 담그려고 한다고 다음에 내가 도와준다고 발 벗고 나섰다. 필리핀 여행 때도, 그리고 한국에서 거의 김장 버무리기와 잡일이 내 담당이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외국의 김치는 대체로 배추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양배추를 사용하며, 젓갈이 없어 피시소스나 간장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찹쌉풀은 물론 없고. 이사 칸의 경우는 양배추 대신 우리나라로 치면 쑥갓처럼 생긴 채소를 배추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양파와 생강, 마늘과 인도 고춧가루 게다가 무려 한국 고춧가루를 섞어 속을 만든다고 했다. 양파를 그냥 썰어서 쓰길래 ‘마늘이랑 생강 갈아서 사용하는 김에 양파도 반만 갈자’라고 최대한 한국식과 비슷하게 만들 것을 주장했다. 간장으로만 간을 한다는 그의 말에 소금과 설탕도 조금씩 넣자고 제안했고, 버무리는 과정까지 내가 했다. 준비는 같이 하고 만드는 건 내가 한, 훈자식 김치를 만들었다!
이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 그리고 치킨카레를 저녁으로 문형과 코타로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익지는 않아서 깊은 맛은 안 나지만 겉절이랑 비슷한 맡이라고 문형은 칭찬해 주었고, 코타로는 일본에서 먹던 기무치랑 비슷하다고 좋아했다. 나중에 코타로에게는 ‘일본에서 김치를 산다면 상온에 하루만 보관하면 더 맛있는 맛이 날 것이다.’라는 팁을 주었다. (사실은 그거보단 천천히 익혀야 하는 게 맞는 거지만….) 훈자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까지 하니 훈자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훈자 사람처럼 지냈다고 생각하고 싶다!
코타로는 동경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과정에 있는데 교육에 관심이 많아 우연하게 어제 하세가와 학교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짧지만 수업시간을 배정받게 되었다고 했다.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따라나서 보기로 했다. 코타로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학교로 가는 길, 코타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재미있게 살자’라는 주제를 물리와 역어서 강의하고 싶다고 했다. 강의 내용을 들으며 일본과 한국의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일본과 한국의 입시문화는 굉장히 비슷하다. 그렇기에 갖고 있는 문제점도 상당히 닮아 있다. 나는 그에게 ‘우리나라 학생들은 꿈이 계속 바뀌게 되는데 그게 안타깝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코타로는 ‘꿈이 바뀌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꿈을 유지하는 것이 학생에게 더 힘든 것이 될 수 있다.’라는 관점을 자신의 대학원 생활과 연관시켜 이야기해 주었다. 현실에 맞게 꿈을 바꾸는 것은 큰 잘못된 것은 아니며 꿈을 바꾸느냐 관철시키느냐에 대한 고민이 학생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그에 말에 망치로 맞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가 말하고 싶었던 ‘꿈이 바뀐다.라는 것은 우리가 커가면서 굉장히 제한적인 장래희망이나 목표를 설정하는 그 현실(어떤 목적성 없이 공무원이 되고 싶다.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 고민 자체가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그도 내 의도를 다시 듣고는 ‘TAEK이 말한 것도 맞아. 분명 그런 의미로의 꿈의 변화는 너무 슬픈 일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바를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즐기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덧 하세가와 학교에 도착했다.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고 학생들의 조회를 본 다음 교실로 이동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코타로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애석히도 학생들은 물리 강의를 원했고(!) 코타로가 준비한 이야기는 짧게 이야기를 하고는 우리도 같이 학생들과 수업을 들었다. 파키스탄은 30~40분의 정해지지 않은 수업시간을 가지며, 중간중간 학생들이 갑자기 들어오기도 한다. 별도의 타종이 없어 선생님이 그냥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면 다음 교시로 바뀌기도 한다. 물리 다음 시간이 수학이어서 학생들이 나에게도 수학에 대한 강의를 듣길 바래서 ’ 어떤 공식을 외우기보다 그 공식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수학을 더 재밌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라는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해주고 또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마무리되자 코타로와 나, 학생들은 각자가 생각한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이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재미있게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학생들도 이런 모습이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수업을 하는 것보다 수업을 듣는 시간이 더 길었다.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짧고 아쉽게도 코타로는 이란으로의 이동을 위해 오늘 내려가려고 했다. 그는 대중교통이 아닌 히치하이킹으로 24시간이 걸리는 이슬라바마드를 가보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했다. 종이에 큰 글씨로 ’Pindi’를 적고는 길가에 나왔다. 같이 배중 나온 문형과 나는 그가 바람(!?)을 맞을 때마다 땅바닥에 표시를 하며 웃었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갔지만 차를 잡지 못했고, 목적지를 3시간 거리의 길기트로 수정하여 히치하이킹을 이어갔다. 13대의 차를 보내고 14번째 차가 오고 나서야 고타로가 탈 수 있는 차를 구할 수 있었다. 라호르에서, 그리고 훈자에서 길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코타로를 그렇게 보내야 했다.
코타로가 간 뒤, 둘만 남은 나와 문형은 근처 가니쉬 마을을 돌아보고 밥을 먹었다. 셋이 먹던 식탁이 둘로 줄으니 묘한 정적이 흘렀고, 숙소로 돌아와 방을 보니 나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자 코타로가 갔음을 다시 실감했다. 안녕, 코타로.
둘만 남은 저녁 시간, 날씨가 좋으면 파수에 다시 가보고 싶었던 나와 문형은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해서 좋으면 바로 파수를 다시 한번 가보자는 약속을 해두었다. 파수를 다녀온 날을 포함해 훈자에 들어왔던 초기에 비해 날씨가 너무 안 좋았기에. 다행히 11일의 아침은 굉장히 날씨가 좋았다! 히치하이킹을 이용해서 파수 마을과 아타바드 호를 보고 왔다. 확실히 산은 날씨가 좋아야 더욱 좋다! 결혼식이 있다고 했지만 늦을까 봐 그것은 그냥 패스하고 돌아왔다.
산속의 파수 마을은 카리마바드보다도 훨씬 가려져 있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마저도.
아타바드 호 역시 파란 하늘과 역동적인 구름이 저번 방문보다도 더욱 아름다웠다. 히치하이킹을 못할까 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다음번에 또 파키스탄에 온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
문형과의 훈자에서의 마지막 저녁. 훈자에 있는 동안 문형 개인에게 굉장히 다이내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덕분에 보려고 했던 많은 것들 중 일부를 포기하기도 했어야 했다. 이제 파키스탄을 아주 떠나게 될 문형은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와서 못 본 게 많은데, 덕분에 파키스탄에 또 와야 하나 싶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 히치하이킹으로 라호르로 가는 기점인 길기트로 떠났다. 혼자 남은 방과 혼자 남은 훈자. 날씨가 좋아 원래는 어딘가를 가보려 했지만, 그 적막함 때문인지 방에 남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이 여행기를 적었다. 한국이 그립지 않냐 는 친구들의 질문에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여행 중에 혼자가 아니었다가 혼자가 되는 순간은 가끔 공허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청소, 빨래를 끝내고 방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잠이 들었다. 그렇게 훈자에서 홀로 남은 외국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