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굿바이 훈자

2016년 12월 13일 ~ 16일, 여행 83 ~ 86일차, 훈자

by 오상택

모두들 가고 혼자 남은 훈자였다. 아마 그렇게 많은 날을 이곳에서 보낼 것 같지 않지만 가는 날까지 재밌는 일들이 생기기를 바랐다. 어제는 방에서 쉬면서 그동안 업로드하지 않았던 글을 올렸다. 오늘은 이 곳의 명절 중 하나인 '이즈마엘리'라고 하니 밖을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12월 13일 : 훈자의 명절, 이즈마엘리

혼자인 만큼 부지런을 떨 이유가 전혀 없다지만 요상하게 나의 생체시계는 세시, 네시에 맞춰져 있다. 일어나서 한참을 빈둥거리며 쉬다가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마을 산책을 나서보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몇 번 가던 '훈자 스낵 샵'에서 치킨 수프와 사모사를 먹는다. 간단한 끼니로는 제격인데다가 따뜻한 국물 덕에 온몸이 녹는다. 발티트 성 방향으로 올가가보니 스카우트 밴드들이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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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마엘리를 맞이해서 연주를 시작한다고 했다. 신기한 구경 거리에 아이들도 몰려나와 있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여기 아이들은 참 착하고 순수하다. 사진기를 든 사람만 봐도 재밌어 한다. 물론 걔네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나중에 커서 무슨생각을 하게 될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날씨도 마침 좋아 남는 시간 발티트 성을 가보기로 했다. 카리마바드 마을이 내려다보는 발티트 성은 아주 크지는 않아도 주변 산세와 마을 풍경과 잘 조화되어 위엄을 뽐냈다. 한참을 구경하며 동영상을 찍고 내려와 숙소의 아가와 놀았다. 명절이라지만 낮에는 큰 볼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면서 한 번더 나가보기로 한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즈마엘리의 메인 이벤트인 불 지피기(?)가 시작된다고. 아침에 모인 사람들은 일찍부터 등산을 한다고 한다. 여러 산 봉우리나 중턱에서부터 땔감들을 뿌리며 올라가고, 저녁 5시 즈음에 해가 지면 위에서 부터 불을 지피며 내려온다고. 이윽고 마을 사람들은 집에 걸어놓은 조명을 하나 둘 켜기 시작했고, 산 정상의 사람들은 불을 붙이면서 내려오기 시작하니, 산에 촛불을 켜놓은 것처럼 장관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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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모스크에서는 이 기간에 먹는 음식인 '하리샤'를 나눠주기 시작한다. 훈자 버터와 보리를 넣고 끓인 죽의 일종인데 축제기간이라고 큼직한 소고기 살덩어리를 넣어주었다. 보리 껍질이 까끌거렸지만 구수하고 맛있었다. 뭐 다먹어갈 즈음에는 조금 느끼했지만 :-( 지나가는 길 곳곳에서도 불을 피우고 있어서 우리 숙소에서 보면 촛불을 일정 간격으로 켜놓은 모양새였다. 괜시레 촛불 시위를 하고 있을 한국도 생각이 나고, 아름다운 풍경에 불이 꺼질 때 까지 넋을 잃고 보았다. 큰 볼거리는 없었지만 마지막의 그 풍경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2월 14일 : 훈자에서의 마지막 날

내일, 훈자를 떠나게 된다. 아침에는 떠나기 전 입어야 할 옷들을 빨고 방을 치웠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방인지라 괜시레 잘 정리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에서일까. 긴 바지들에 찢어진 상처가 있길래 근처 세탁소에 가서 수선하기로 한다.

IMG_7937.jpg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자 사진을 찍기 어렵다. 얼굴을 찍지 말라는 요청에 미싱기만 찍어본다

하나 수선 하는데 꼴랑 50PKR인데 큰 돈을 주자 잔돈이 없다며 낼 수 있는 잔돈인 80PKR 만 받아도 된다며 웃는 아주머니덕에 기분 좋게 나왔다. 세탁소를 나서니 하늘이 완전히 열렸다. 그 보기 힘들다는 라카포시도 완전히 열려 있었다. 가기 전 마지막 선물인건지, 아니면 빨리 지금이라도 라카포시로 오라는 손짓인 건지. 짧은 구경을 마치고 아직 신청하지 않았던 캐나다와 케냐 비자를 신청하고 집에 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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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 16일 : 돌아가는 길도 힘든 훈자

새벽 4시, 일찍 일어났다. 바로 나가려했지만 훈자에서 라호르까지 가는 길이 약 24시간이기에 급하게 몇 동영상을 유튜브로 받아놓는다. 간단하게 씻고 아침에 한 번 더 밖을 둘러보았다. 가는 날이라고 날씨가 안좋다. 빨리 떠나라는 식으로 해석해야겠다. 이사칸과 할아버지, 그리고 숙소에서 항상 보던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가고 싶었지만 아무도 일어나있지 않아서 조용히 짐을 챙겨 그냥 나가기로 한다. 카리마바드에서 바로 가는 버스는 아침 일찍 끊겨서 길기트로 먼저 가기로 하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해서 갔다. 길기트에서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NATCO는 모두 끊겨서 고민 하다가 사설 밴이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바로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 그런데 버스보다 차가 작아서인지 많이 흔들렸다. 덕분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간 도착지인 라왈핀디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라호르로 돌아왔다. 라호르로 돌아가는 길에 보는 지는 해가 아름다웠다.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보면서 훈자에서의 시간들이 생각이 났다.



훈자가 사실상 파키스탄의 실질적인 마지막 볼거리였다. 처음 훈자 마을을 계획할 때 꿈파링 형님의 계획을 참고를 했는데 일주일을 머무는 것에 나는 그보다 짧은 일정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자의적으로는 '여행자의 무덤이라는데 오래 있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남아공에서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는 문제 및 항공권 가격 문제 때문에 항공권을 12월 27일로 확정 지었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타의에 의해 이만큼의 시간을 훈자에서 보내게 된 것. 아마 단일 도시에서는 가장 오래 머문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 앞으로도. 거의 2주를 지냈다.) 지내는 동안 왜 그 많은 여행자들이 '훈자는 여행자의 무덤'이라고 외치는 지 알 수 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파키스탄이라는 국가적 특성으로 물가도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보다 빼어난 것은 훈자의 사람들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와 문형이 '훈자 사람들은 예스맨 컴플렉스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우려를 표했을 정도로 친절하고, 친절하려고 했으니까. 문형과의 시간들도 인상적이다.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생소한 삶을 살고 계셨고,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추가 할 정도였으니까. 훈자, 그리운 마을이 될 아시아의 마지막 여행지가 그렇게 접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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