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아시아를 마치며

2016년 12월 17일 ~ 26일, 여행 87~96일 차, 라호르&델리

by 오상택

16일, 훈자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아시아 내의 여행 일정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27일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기에 남은 시간을 라호르와 델리에서 보내게 되었다. 특별했던 날들의 기록만 남기면서 아시아의 여행 기록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일정 : 라호르 - 암리차르 - 델리



12월 17일 ~ 21일 : 외국에서 보내는 생일

힘든 버스 이동 끝에 파키스탄의 라호르로 돌아왔다. 파키스탄에서 보내야 할 편지들을 적어 후원자 분들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라호르에서 쉬는 동안에는 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외국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다. 여자 친구와 가족, 몇몇 친구의 생일 축하를 메시지를 통해 받았고, 라호르에서는 훈자를 여행했던 문형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외국에서의 생일은 생각보다 참신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생일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해지지 않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생일이라고 특별한 생일 선물들이 몇 있었다. 문형 께서는 라호르 안에서 손꼽히는 일식집에서 일식을 대접해 주셨고, 생일 밥이라도 챙겨 먹으라는 친구들의 후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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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에게는 마침 옷도 놓고 왔겠다 싶어서 숙소 근처의 리바X스 에서 옷을 샀다. 나를 위한 작은 생일 선물. 이 옷만큼은 잃어버리고 싶지도,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잠이 들 때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생일처럼 특별한 시간이나 데이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메시지 하나와 작은 관심들이 외국에서의 생일을 보다 강렬하게 기억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아주 늦은 감사인사지만 축하 메시지를, 관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12월 22일 ~ 23일 : 인도, 결코 순순하지 않은 그곳

오늘은 파키스탄을 떠나 인도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저번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오는 때에 와가 국경의 국기 하강식을 꼭 보리라 다짐했더랬다. 그래서 오늘은 국기 하강식 2시간 전에 출발했다. 그런데 국경 근처에 와서 릭샤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 게다가! 인도와 파키스탄은 30분의 시차가 나기에 내가 2시간 전에 나왔다고 생각한 것은 파키스탄 기준시간이었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30분이 더 모자라게 되었던 것이고 나는 또 졸지에 거대한 배낭을 메고 미친 듯이 국경 사무소로 뛰어갔다. 20분 전에 국경에는 도착했지만 덕분에 국기 하강식은 밖에서 전광판으로 보게 되었다.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암리차르에서 하루 쉬는 동안 델리에서 하룻밤 정도를 신세 지기로 한 인도인 Lovel이 연락을 즉각 즉각 하지 않았다. 일단 델리로 넘어가서 그의 연락을 받아보기로 하고, 내가 이동하는 차편의 정보와 도착 예정시간을 메시지로 날려놓고 뉴델리 역으로 데리러 오라고 부탁해 놓고 기차를 탔다. 그러나 그는 내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도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게다가 열차는 연착돼 새벽 1시에 뉴델리역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그것에 답장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할 뿐. 새벽 1시에 체크인을 받아주는 숙소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밤늦은 시간은 너무 위험해 뉴델리역 외국인 예약 사무소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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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낭은 없었지만 파키스탄에서 받은 따뜻한 담요를 덮고... 일어나서 뉴델리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허접한 방을 구해서 나갈 때까지 지냈다. 250루피, 우리 돈 5천 원이지만 인도 내에서 지냈던 다른 숙소들에 비해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지는 숙소였다. 며칠 파키스탄의 초 저렴한 물가와 그에 맞는 가격대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내가 이런 숙소에서 자야 한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크리스마스에 다시 반성했던 생각이지만. (그래도 와이파이 하나는 끝내줬다.) 앞으로 더 험한 여행지가 많겠지만 당분간은 인도만큼 어려운 난이도의 나라는 없을 것 같다.


12월 24일 ~ 26일 :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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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크리스마스는 전혀 크리스마스 같지 않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지만 힌두교도가 절반 이상이나 되는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24일 이브에는 델리 내의 한인 식당 사장님이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하셔서 거기에 다녀왔다. 북인도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큰 새우와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보들보들한 두부, 그리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밑반찬들을 무료로 나눠주시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사실 나는 한인식당에 잘 가지 않는다. 네팔에서의 기억 이후로는 더더욱 가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항상 한인식당이나 한인업체는 한인들 사이에서 구설수를 낳기 때문이다. 내가 갔던 그곳도 인도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그곳이고 말도, 탈도 많은 그곳이기에 나도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사장님이 베풀어 주신 것이 너무 많아 감사할 따름이었다. 자신이 느끼고 가는 기억만 가져가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에는 한인교회에 다녀왔다. 한인교회에는 늘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이 있는데, 델리의 한인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챙겨주셨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꼭 사간다는 모 브랜드의 치약을 선물로 주셨는데, 여행을 하는 나에게도 굉장히 유용한 선물이 될 듯했다. 26일, 크리스마스가 지났고 남아공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정확히는 27일 새벽 1시였지만) 날에는 위의 언급된 한인 식당 사장님이 식사도 주시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도 보내주셨다. 델리에서 Lovel에게 버림받아서 졸지에 5일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래도 선물 같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아시아를 정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시아를 떠나며


1.


유럽을 여행한 이후 '아시아에 뭐가 볼 것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 대한 큰 매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의 처음 생각도 "동남아는 다들 가는 곳이고 나중에 갈 수 있으니 짧게, 인도나 파키스탄은 배낭여행의 성지 같은 곳이니 꼭 가지만 정해진 기간만"으로 생각하고 준비했었다. 결론적으로 내 예상은 너무나 빗나갔다. 동남아는 저렴한 물가와 보석 같은 포인트들, 그리고 대중적이지 않은 루트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한 나라 일주일'로 배정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토 자체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관광비자로 주어지는 기간을 다 써도 모자란 곳이었다. 부분적으로 한 달만 본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긴 기간이 아니었다. 아예 계획에 넣지 않은 중동 지역과 서아시아 부분은 엄청나게 아쉬울 뿐이었다. 애초에 1년 안에 세계일주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것을 몸소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여행도 내 계획처럼 잘 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내 일정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내 여행의 깊이나 폭을 안 좋은 방향으로 바꾸게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개발도상국이나 우리나라보다 흔히 '못 사는'나라라고 말하는 나라들에 대한 막연한 오해들이 있다. 이런 오해들을 많이 깼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진국 인도에서 4G를 그렇게 자유롭게 쓸 줄 누가 상상했을까. 파키스탄 버스에서는 기내식과 음료 무제한 그리고 와이파이가 터지는 비행기급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아직 인프라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의 진출이 활발해진 라오스의 한국 물품 물가가 놀라웠으며 베트남 에서의 한류 열풍도 신기했다. 어쩌면 이미 개발될 대로 되어버린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 무언가를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파키스탄에서 만난 문형 덕분에.


3.


아무것도 아닌 여행이라는 생각을 더욱더 하게 된다. 베트남, 라오스 같은 대중적인 루트를 갈 때만 해도 나 같은 사람은 굉장한 레어템이었지만 여행지가 고되고 희귀해질수록 나와 비슷하거나 나 이상으로 이미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삼 느낀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여행하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선 더 많은 고수들과 조우할 텐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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