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7일, 여행 97일 차, 케이프타운
어제 가이드를 한 것은 큰 화근이었다. 델리의 안개를 무시하고 반바지에 맨투맨 티를 입었는데 엄청나게 추웠던 것. 거기에 찬물로 샤워를 한 데다가 뿌리를 먹은 게 화근인지 속이 영 편하지 않았다. 덕분에 비행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부터 좋지 않은 속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공항 가기 전부터 화장실을 두세 번이나 갔고, 공항에서도 갔으니. 그래도 막판에 먹은 바나나라씨가 효험을 발휘해 준 건지 끙끙 앓다 보니 많이 나아졌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아프지 않게 되었으니. 그렇게 14시간에 비행 끝에 남아공 케이프타운 공항에 입성했다!
엄청 신기한 기분이었다. 공항다운 공항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에는 위치해있지만 아프리카 내에서는 손꼽히는 부국이다. 특히 케이프타운은 천혜의 자연경관 덕분에 잘 정돈된 관광도시이기에 치안과 교통 시설 대부분이 잘 갖춰진 도시였던 것! 내가 있는 곳이 아프리카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물가인데, 공항 애 서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기위햐 갖고 있던 달러를 환전해 쓰려고 했다. 그런데 아시에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심지어 우리나라도 이정돈 아니었다) 환전 수수료때문네 10불만 환전했다. 이마저도 숙소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으로 다 써버렸다. 인도, 파키스탄에서 비싸야 2천 원 내고 다니던 택시들에 비해 편도 이동에만 만원이 사라지니 여긴 이미 내겐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이었다. 그래도 날씨 하나만큼은 아프리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에 타니 슬슬 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북반구 국가에서 남반구 국가 그것도 해발고도가 낮은 곳이었기에 기온의 기본치가 달랐다. 화폐도 내가 아프리카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 준 도구였다. 보통 화폐에는 그 나라의 랜드마크와 인물이 들어가는 게 부지기수인데, 남아공의 경우 야생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아프리카임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해였다. '착각하지 마, 넌 아프리카에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혼자가 아닌 사전에 연락했던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다니기로 했었다. 아프리카 커뮤니티를 통해 여행 출발 전부터 연락해오던 탁이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다. 내가 머물 던 숙소에는 탁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남아공 케이프타운을 찾아온 여행자들이 있었다. 저녁은 그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도 오롯이 혼자 보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여행자들과의 시간은 오랜만에 새로웠다. 저녁을 같이 해 먹기 때문. 물가가 비싼 유럽에서 흔히 하는 모습이지만 3개월간의 아시아 여행에선 그런 풍경을 찾기 힘들었다(직접 해 먹는 것이 사 먹는 것보다 손해니까... 애초에 주방도 잘 없다). 갓 입국해서 장 볼 시간도 없었던 지라 회비 없이 첫날은 얻어먹기만 했는데, 부족한 재료에도 정이 느껴지니 더 맛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생소한 사람들끼리 먹는 여행자들의 식사자리가 오랜만이어서 어색하지만 즐거웠다.
P.S.
파키스탄의 문형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국제기구(UNESCO) 관련 사람을 만났다. 나와 동갑내기인데 말라위에 파견나와 있는 여자분이었다. 계약직으로 파견되어 왔다고 했는데, 문형도 문형이었지만 이분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해외 파견은 어떻게 가능한 건지 다음에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