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준비 없는 여유

2016년 12월 28~30일, 여행 98 ~ 100일 차, 케이프타운

by 오상택

어제저녁식사에 탁이와 우리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12/31과 신정 그리고 주말이 걸치기에 우리가 실제로 출발할 수 있는 날짜는 일주일도 더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전에 연락한 동행인 환진이가 합류해서 나미비아 비자를 받게 되어야 출발이 가능했기에 생각지도 못하게 케이프타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준비되지 읺은 여유를 나는 잘 즐길 수 있을까?


12월 28일 : 케이프타운 적응기

늘 그렇듯, 새 도시의 첫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철칙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과 더불어 어제 가보지 못한 마트 등을 가보며 적응기를 가져보도록 했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파란 하늘 와 웅장한 산들, 그 앞에 펼쳐진 도시! 게다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맑은 공기에 나도 모르게 뜀박질을 하게 되었다. 케이프타운의 어느 곳에서라도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언즈 헤드, 시그널 힐이 병풍처럼 서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공원에서는 재즈음악공원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음악이 무르익으면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아프리카 특유의 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져 뛰는 것을 멈추고 마트로 들어갔다. 남아공의 물가는 사실상 한국과 같다.

IMG_8180.jpg
IMG_8186.jpg
IMG_8218.jpg
IMG_8193.jpg
IMG_8195.jpg

과일이나 채소, 육류 등이나 유제품들은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지만 공산품들의 가격은 한국 수준이었다. 외식비도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갔다. 가급적 외식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곤 숙소에서 쉬었다. 한낮의 더위가 아직 몸에 맞지는 않았기에.


12월 29일 : 프리패스

케이프타운을 들어오기 전부터 내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다. 내 몸 상태를 비유하자면 프리패스 같은 것이어서 음식물을 먹으면 거의 그대로 퇴장하는 상태였다. 화장실에서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던 것. 비행기에 오를 때에는 그날 먹은 뿌리때문이겠거니 했는데, 남아공에 들어와 식당이 바뀌어도 중상이 계속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결론적으로는 말라리아 약의 부작용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말라리아 예방약은 출국 전 1주부터 1주 단위로 먹는 약인데 독성이 강해 먹지 않는 이도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 출국 전 부모님과의 약속이라 안사올 수도 없었다. 안 먹자니 한 알에 3천 원이나 하는 약 값이 아까워서 오늘도 복용을 하고 일정을 나갔다. 워터프런트를 구경하고 홍콩으로 떠나는 한국분과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워터프런트는 말 그대로 '물 앞에 있는' 위락시설이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곳이기는 한데 나한테는 큰 매력은 없었다.

IMG_8232.jpg
IMG_8234.jpg
워터프런트 전경. 저 노란 표지판 안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면 테이블 마운틴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점심을 적당한 카페에서 먹는데 어째 먹기 전 부타 속이 내 속이 아니었다. 프리패스 내 위장이 안 좋아짐과 동시에 체한 것 같은 어지러움이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한국 분도 어지러움을 느꼈다. 택시를 타고 바로 워터프런트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프리패스 위장 덕에 그 날은 물론이요 그 이후도 몇 번이나 날 고생하게 만들었다. 아, 화장실에서 힘쓰고 싶다!



12월 30일 : 애증의 비자발급

IMG_8241.jpg 숙소 근처 롱스트릿의 모습. 비자 발급때문에 여기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지

나와 동행 탁이가 남아공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다음 목적지인 나미비아로 가기 위한 비자 발급. 케이프타운 내의 나미비아 영사관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같은 숙소의 다른 한국인들도 3번이나 퇴짜를 맞고 나서야 비자 신청이 수락되었기 때문. 그래서 나와 탁이도 어젯밤을 비롯해 오늘 아침도 굉장히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할 서류를 몇 번이나 재확인했다. 준비를 마치고 영사관으로 향했다. 나미비아 영사관에선 모든 업무를 한 명이 보기에 재수가 좋지 않으면 대기시간이 굉장히 길다고 들었는데 9시 정각 방문객은 우리 둘 뿐이었다. 신청서를 맏아들고 빛의 속도로 작성한 뒤 서류와 제출하였다. 영사가 꼼꼼히 읽어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앞서 한국인들이 준비한 식으로 서류를 준비했는데 영사는 "숙박은 1박, 차량 렌트는 4일, 그런데 여행 계획은 2 주니 엉망진창이다. 다시 만들어서 와라!"라고 말했던 것. 그때그때 기준이 다르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한 큐에 될 줄 알고 노트북도 안챙겨왈기에 우리는 부리나케 숙소로 돌아와 여행 계획 자체를 통째로 다시 만들었다. 영사관이 12시까지만 업무를 보기에 서둘러야 했다. 마감 15분을 남겨 다시 영사관에 도착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몇 분을 기다리고서야 우리의 비자 신청이 수락되었다. 한국에서 준비했던 파키스탄 비자보다 어려웠다.

IMG_8251.jpg
IMG_8281.jpg

비자 발급을 마치고는 근처에서 갈 수 있는 가까운 보캅마을에 다녀왔다. 동남아 이주민이 많이 지내는 이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알록달록한 마을의 모습이다. 그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집주소를 찾기 힘들었기에 각자 자신의 집을 알아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색을 칠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에 들어서는 단순히 "남의 집과 같은 색을 칠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유쾌하게 말해주지만 슬픈 사실이며,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그들이 받아슬 설움이 저 색으로 나타난다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해진다.


P.S

12월 30일이 여행 100일 차였다. 대단하다 싶었던 한국인 여행자 동생들 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째는 12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여행을 마친 '주혜'씨. 전체 여행을 정말 적은 돈으로 (아마 카우치서핑이 가장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마친 여행자였다. 정말 어린친구가 당차게 여행을 해낸 것이다. 성격도 활발하고 붙임성도 좋아 처음에 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머뭇거리던 나에게도 많이 신경써주었다. 아직도 그녀가 여행에 쓴 돈이 그것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얼마를 썼고 무엇을 했느냐 보다 여행자체가 그녀의 삶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난 친구는 12월 30일에 만났던 '현웅'. 신문사 인턴도 할 정도로 출중한 친구. 여행 중 남기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간결하게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 (지금도 간결하지 못하게 쓰고 있으니까.) 결론은 계속 쓰자는 것. 그래도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란 반증이기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1. 남아공 ≠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