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New Year @ CAPE TOWN

16년 12월 31일~17년 1월 3일, 여행 101~104일 차

by 오상택

사실 내 생일보다 이날을 더 기다려왔다. 외국에서 보내는 새해 첫날.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얼마 안 되는 여행자들과 조촐한 시간도 보낼 수 있으리라.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공수한 라면과 통조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충분히 쉰 만큼 새해부턴 케이프타운도 열심히 둘러보기로 다짐했다.


12월 31일 : 여행 속 첫 새해

2016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약의 부작용은 여전하므로 나의 위장은 프리패스였다. 아침은 대강 빵으로 때우고 더운 낮에는 모두가 호스텔 2층의 공용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며 쉬고 있었다. 나는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만큼이나 일본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았다. 우리 숙소에는 40%의 서양인과 10%의 흑인, 25%의 한국인과 25%의 일본인이 있었기 때문.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보내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있던 숙소에는 총 12명의 한국인 숙박객이 머물게 되었다.

IMG_8299.jpg 한국인들과의 송구영신. 즐거운 대화시간이었다

유럽과 남미 여행을 마치고 인도 여행을 준비 중이던 재선, 엄청난 배경의 소유자인 셰프 성훈, 그의 맞수이자 재선이의 라이벌 현웅, 사실상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계시는 기철 형님과 누님. 우리 동행인 탁이와 뒤늦게 터키에서 합류한 환진이. 그리고 말라위에서 NGO 활동 중이신 분과 탄자니아 NGO에서 활동 중이신 민정 씨와 동생 나리씨. 대구에서 교사일을 하시던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이 많은 한국사람들이 라면에 고등어조림, 삼겹살 등등 음식을 거대하게 차려 놓고 소주를 곁들인 거대한 술상을 차려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끝낸 사람, 여행 중인 사람, 여행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서 별의별 이야기가 다 오고 간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이 오랜만인 나는 사실 잘 적응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챙겨주시는 분들 덕에 그 분위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즐길 수는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지자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즐기러 가자며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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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숙소 앞 케이프타운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롱 스트릿은 가득 찬 인파로 앞에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카운트다운과 불꽃놀이는 워터프런트에서 행해진다고. 이미 늦은 우리는 롱 스트릿에서 새해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날씨이다. 한국에서 새해는 항상 겨울에 손 호호 불며 보낼 텐데 (물론 난 보통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는 다들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으니 한국과는 완연히 다르다. 거리에서 다들 춤을 추고 있는 것도 재밌는 점. 그냥 가서 리듬만 타도 격하게 반응해주는 그들의 여유는 덤이다. Three, Two, One. 새해가 밝았고 사람들은 'Happy new year'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며 인사를 이어갔다. 나갔던 다른 여행자들과도 함께 다시 모여 각자의 여행과 인생에 복을 빌어 주었다. 새해엔 내 여행이 더욱 재밌어졌으면 좋겠다!


1월 1일 : 작심삼일을 극복하자

과음했지만 일찍 일어났다. 새해 다짐답게 새해 첫 일정을 등산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숙소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라이언즈 헤드를 등산하기로 했다. 케이프 타운의 중심가에서는 세 개의 산 봉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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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즈 헤드 아래에서 보는 테이블 마운틴

넓은 탁자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테이블 마운틴,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언덕인 시그널 힐 그리고 마지막이 뾰족하게 우뚝 솟은 사자의 머리를 닮았다고 전해지는 라이언즈 헤드이다. 깎아져 있는 듯 가파른 산이 특징이다. 산의 입구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데, 문제는 이날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맑고 더웠다는 점이다. 산의 입구까지 가는 데가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너무 뜨거워서 몇 번을 그냥 돌아갈까 말까를 고민했었다. 간 길이 아깝고, 새해 첫 일정을 포기로 얼룩지게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계속 걸었던 것 같다. 산 입구에 다다라서부터 다시 한 시간을 산행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산처럼 나무가 많은 것이 아닌 벌거숭이 산이기에 내리쬐는 태양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등산해야 했다. 산 후반부에는 아예 암벽등반처럼 체인과 스태플을 밟으며 가라는 등반 코스가 준비되어 있을 정도. 1시간여의 사투 끝에 라이언즈 헤드의 정상을 밟았는데, 정상의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뾰족한 봉우리 덕분에 봉우리 중앙에서 파노라마를 찍듯 한 바퀴를 돌면 케이프타운의 360도 전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게다가 바람도 엄청나게 세게 불어서 시원하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정상에는 날벌레가 엄청나게 많아서 가만히 있으면 팔에 검은깨가 붙은 것처럼 되어버리니 오래 있지는 못했다. 내려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이기에 바로 내려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왕복 총 4시간에 등산을 마쳤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새해랍시고 움직이길 너무 잘한 것 같다. 작심삼일이 안되었으면 좋겠다.


1월 2일 : 젊으니까 해보지

케이프타운에서 해야 할 것들을 거의 다해간다. 1/4부터 1/6까지는 우리 멤버에 부부끼리 여행하시는 어르신들을 함께 모시고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며 케이프타운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남는 오늘은 탁이와 환진이 그리고 재선이와 함께 캠프스 베이에 가보기로 했다. 케이프타운은 남아공 내에서도 해안에 바짝 붙어있는 도시이다. 해안이 그만큼 잘 발달했는데 캠프스 베이는 그중에서도 부자들이 많이 지낸다는 해안가이다. 작렬하는 태양,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 위에 많은 사람들이 해안을 즐기고 있었다. 캠프스 베이에서 물놀이를 하자고 재선이와 탁이에게 말을 해놨는데, 해안에서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왜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발에 물을 담그는 순간 알았다. 물이 어마어마하게 찼던 것. 재선이도 탁이도 물 온도를 느끼고는 질겁했는데 계속 꼬드겼다. 젊을 때나 하지 나이 먹으면 못한다고.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 찬 바닷속에 몸을 던졌다. 몇 번이나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나서야 엄청난 한기가 몰려와서 한참을 햇빛에 몸을 떨었다. 도전에 때가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그 시기에 해야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다. 이런 말도 안 되고 황당한 (?) 것들은, 가급적이면 젊을 때 해야 하는 것 같다. 와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연휴라 마트도 일찍 닫게 되어서 밥을 어떻게 때우나 고민하던 찰나, 탁이가 전에 알아봐 두었던 초밥 무한리필 집을 가보기로 해서 나갔지만 연휴 덕에 닫혀있었다. 터벅터벅 숙소에 돌아갔는데, 이럴 수가! 탄자니아 자매가 설 연휴를 맞이해서 떡국을 끓인 것이다. 중국 식당에서 떡을 주문해서 다시다와 고기를 넣고 끓인 떡국. 한국이 아닌 곳에서 떡국을 먹을 것이라는 기대는 전일 하지 않았는데 너무 정겹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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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 아프리카 동행 전원 집합!

오늘은 아프리카 일정을 함께할 마지막 멤버가 오는 날이다. 유럽과 중동 쪽의 여행을 끝내고 온 우연이. 나와 동갑내기였다. 이로서 아프리카 여행 한 달가량을 함께할 동행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케이프타운에서 의도치 않게 긴 일정을 보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동행때문이었는데, 이게 현명한 일이 될지 아닐지는 지내봐야 알 것 같다. 환진이와 우연이에게 나와 탁이가 당했던 나미비아 비자받는 법을 제대로 전수해 주고 회의도 간단하게 했다. 나미비아를 가는 것이 당장 정해질 부분은 아니지만 비자받고 나서의 계획과 기타 사항들을 이야기하니 비로소 아프리카 여행의 첫 단추를 끼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부터 차량으로 남아공 남부의 몇 포인트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동행들과 하는 여행은 또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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