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6일~7일, 여행 107~108일 차, 케이프타운
운전을 이틀 연속으로 하루에 5시간 이상씩 하는 것은 나에게는 평범한 경험은 아니다. 덕분에 이틀 연속으로 강제 꿀잠을 자게 되었지만.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정 이후에 우리의 남아공 출국일을 1/8일로 정했다. 남은 2일을 평화롭게 보내기로 했다.
여행자 시계는 날 가만히 두지 않는다.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어제 새로 들어오셨던 한국인 한분이 테이블 마운틴을 가려고 한다고 하셨다. 그분 때문인지 호스텔에 있던 젊은 한국인들이 다 테이블 마운틴을 가자고 불이 붙었다. 따로 글을 쓰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1/3일에 테이블 마운틴 등산을 한 번 시도한 적이 있다. MTB 전용 도로로 잘 못 들어 한참 돌아가는 루트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엄청난 강풍 때문에 산의 입구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중도에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테이블 마운틴 등반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오늘의 등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1/6일의 케이프타운은 지난번 보다 더 강한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새로 들어오신 형님이 그럼에도 강행을 택하고 다른 친구들도 그리고 나도 같이 가게 되었다. 멀리서 테이블 마운틴을 봤을 때에는 구름이 테이블 마운틴 위를 살포시 덮고 있었기에 구름 식탁보가 낀 것 같았다. 역시나 우려대로 바람은 굉장히 거세게 불었고 산에 올라갈수록 귀신같은(!) 날씨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점은 저렇게 구름이 많은데도 라이언즈 헤드처럼 이 산 자체에 그늘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구름이 있는 곳을 가지 않으면 땀이 흐를 정도로 엄청나게 덥다는 점이다. 출발지부터 한 한 시간여 동안은 그렇게 해를 머리 위에 두고 걸어야 했는데, 그 이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타임랩스를 하지 않아도 구름의 이동속도가 보이고, 타임랩스를 하면 엄청난 속도로 구름이 움직였기 때문. 일정 높이를 넘자 우리가 구름 속에 있다는 것을 티라도 내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풍 역시 산을 올라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거의 다 왔다는 소리 기를 쓰고 올라갔다. 홀딱 젖은 상태로 산의 마지막 포인트에 도달했다. 산 정상의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세상이랄까. 다만 구름의 이동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보니 산 정상 한쪽 편에서는 몇 초 정도 산 아래가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같이 올라갔던 일행들은 한참을 구름 속을 헤매며 등산을 하다가 결국 테이블 마운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낄 정도의 강풍과 추위 그리고 비 때문에 하산하지 않으면 너무나 힘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또 내려와서 구름을 벗어나니 해가 쩅쨍인데다가 땀이 비 오듯 할 정도였다. 우리는 그 후로 생각했다. 구름 식탁보가 있는 날의 테이블 마운틴을 무시하지 않기로.
사실상 남아공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면서 미루어 두었던 엽서를 보내기로 한다. 아프리카에서부터는 사실 엽서 보내는 것도, 내 기념품 사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인프라가 좋은 남아공에서 보내기로 했다. 인도나 파키스탄에 비해 압도적으로 (두 배는 비쌌다) 비싼 엽서와 우표의 가격에 휘청했다가도 꼭 보내야 하는 분들께 보내는 엽서이기에 기꺼이 보낸다. 오전과 오후는 그렇게 그냥 쉬면서 나미비아로 출발하는 내일부터의 일정을 위해 정비를 취했다. 저녁에는 몇몇 친구들은 외식을 하러 나갔기에 나 혼자 밥을 해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마침 숙소에서 같이 머물던 일본인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한국인만큼의 수로 일본인들도 우리 숙소에 머물고 있었는데, 특히 나는 짧은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대화를 꽤 많이 나누었다.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일본인은 '후미오'와 '히로미'였다. 둘 다 나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나의 모자란 일본어를 보태어 가며 대화를 이어가 주었다. 그날 저녁 후미오 씨는 오야코동을 만든다며 나에게 남은 오야코동을 먹어보라며 한 접시를 주었다. 일본 가정식의 맛! 후미오 씨와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억나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후미오 씨는 항상 밤마다 어떤 책을 읽고 있었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창의력과 관련된 책이었다.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니 들었던 답변이었다. 왜 그 책을 읽냐고 묻자 자신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해 읽는다고 했다. 사실 알고 보면 골치 덩어리(?) 선생님이다. 휴직계를 내고 몇 달째 장기여행을 나온 사람이다. 게다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고지식함도 잊지 않았다. 왜 그렇게 여행을 해야 하고 여행 중에 그런 책을 읽느냐 하니 또 자신이 선생님이기 때문이란다. 선생님이기에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이기에 아이들의 생각을 막고 싶지 않기에 넓은 생각을 하고 싶어서 이런 여행과 그런 책을 읽는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선생님이다. (일본인이기에 가능한 것 일수도 있다. 일본인 특유의 몰입 기질) 그럼에도 학생들을 위해서 라는 말이 감동적이랄까. 한때 교직을 꿈꿔서 인지도 모르겠다. 한창을 이야기하다가, 오사카에 오면 (간사이에 거주 중이다) 꼭 연락하라고 했다. 일본을 두 번 다시 안 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인도에서의 켄도, 파키스탄에서의 코타로도, 그리고 남아공에서의 후미오 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일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 따뜻해지는 마지막 남아공에서의 휴일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