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찌질함은 어디 가지 않아

2017년 1월 12일, 여행 113일 차, 스와코프문트

by 오상택

오늘은 나 자신한테 부끄러운 글을 쓰려고 한다. 사실 당시에는 속상하기도 하고, 이해도 잘 안 되었던 부분인데 저녁에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부끄러운 것이다. 이번 글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스와코프문트로 도착하기 까지, 한시도 찌질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나 자신을 반성해 보는 글이다. 그러니 아래에서 내가 정리하기 직전까지는 '전지적 오박사 시점'으로 작성되었으므로 나의 찌질함이 반영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글을 곡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은 하루의 일정

어젯밤, 별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정리하다가 보니 우리의 일정이 하루 정도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10일에 빌려서 15일 오전에 반납할 예정이기에 사실상 14일 저녁까지, 즉 4일 정도를 소요하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출발했었다. 문제(라기보다 다행인 점)라면 차를 빌려주었던 호스텔 사장님이 15일 오후 6시까지만 와도 충분하다고 대답했기에, 우리는 15일 오전 출발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즉, 하루의 여유가 더 생겨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더 보내고 싶었다. 듄 45에서의 일출도, 일몰도, 세스리엠 캠핑장에서의 별도, 은하수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일몰은 사실 어제 볼 수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기다리기도 했고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포기한 셈이었다. 일출은 보려면 볼 수 있었지만 차에 빨랫줄을 걸었기에 차를 이용할 수가 없는데 그러면 그날 잠을 자지 않고 듄 45가 있는 지점으로 걸어가야 했다. 별... 사막의 밤... 내가 현재까지 돌아다니면서 본 풍경 중 가장 감동적이고 좋은 풍경 중 하나인 사막의 밤을 첫날은 구름 때문에, 둘 째날 역시 뒤늦게 찾아온 구름 때문에 그리고 은하수를 찾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달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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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244-Pano.jpg 세스리엠 캐년. 구름이 없으니 별은 더 잘보이겠다는 생각뿐

내일 일어나면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더 건의하자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며 친구들과 회의를 했다. 하루의 시간을 어디서 더 쓸 것인가.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는데 다음 목적지인 스와코프문트에서 하루를 더 쓰자는 의견이 둘, 가는 중간에 다른 경유지가 있다면 거기서 더 쓰자는 의견이 하나, 그리고 나의 의견 하나였다. 결국 우리는 스와코프문트로 가서 하루를 더 쓰는 것에 결론이 났다. 사실 당시에는 많이 속상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어떤 편의성을 바라는 것이 무리이다. 고생은 아프리카를 선택하는 순간 예견되었고, 불편함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들이었다. 스와코프문트는 사막과 인접해 있지만 결국 관광도시이다. 즉, 불편함을 더 이상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다 내색할 순 없었지만 너무나 속상했다. 그럼에도 동행이니까. 같이 가기로 한 모임이니까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세스리엠 캐년을 들르고 나미브 사막의 끝자락을 보게 되었는데, 운전을 하던 나는 계속해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떠나던 날은 구름이 거의 없어서 별보기에 정말 최적의 날씨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찌질해 지는가

IMG_9363.jpg Tropic of Capricorn. 우리말론 남회귀선인데 간단히 하자면 온대와 열대의 지리적 구분선이다

나의 찌질함이 폭발해 가고 있을 시점은 다른 때였다. 사실 이미 나는 동행 내에서 배척되는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계획을 짤 필요는 없어도 어느 정도의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남아공에서 출발하기 전에도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자고 보챘던 편이다. 다들 남아공에서의 여유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잔소리하고 윽박지를 모양새로 비쳤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미비아까지 이어졌다고 (나 스스로는) 생각했다. 그게 폭발 하기 시작했던 게 이 날이었다. 오늘 전체 구간 중 절반 정도를 내가 운전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자는 데 정신이 없었다. 운전을 하는 나는 정말 혼자서 운전만 해야 했다. 나도 심심하고, 피곤하고 그럼에도 동행들을 위해 운전을 하는데 왜 나를 신경 써주는 친구는 없는가. 남회귀선에 멈춰서도 그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괜히 이과의 특이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가는 지점이었기에 일행들이 같이 사진 한 번 찍고 싶어서 가다 차를 돌려서 까지 사진을 찍고 같이 사진 찍자고 했는데 다들 잠에 취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여기서 내가 기사 외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친구들도 잔소리하는 내가 필요 없겠구나." 싶은 피해의식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런 지질한 상태에서 저녁 먹을 때 아예 탁이가 "형님 너무 뭔가 급해 보이세요."라는 말을 했다. 아마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로 정중한 표현이었으리라. '난 급하다기보다 너무 계획이 없는 상황이 좋진 않아서 간단한 계획이나 최소한의 틀을 갖추고 싶었는데, 내가 재촉한 거 같아서 미안해.'라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속에서는 찌질함이 끓고 있었다. 찌질함이 폭발해서는 심지어 호스텔 직원에게 나미브 사막으로 갈 수 있는 대중교통 방법 등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내가 어차피 이 동행에서 혼자 잔소리하고 튀는 일원이라면 필요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러 가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까 봐.


객관적 시점 : 배려가 부족했던 나

전지적 오박사 시점으로만 나를 돌아보고 있던 나를 멈춰 세운 건 동갑내기 동행 우연이었다. 우연이는 스와코프문트 숙소에서 나와 함께 텐트를 썼다. 탁이와 환진이는 도미토리에 자리가 남아서 도미토리를 택했고. 우연이는 일행 내에서 유머러스함과 중용을 담당했는데, 그렇게 꽁해 있던 저녁에 우연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일행들이 다들 정말 착한 것 같아 다들 배려를 잘 하는 것 같아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는데 모두를 위해 맞추고 있잖아. 너도 그렇고
아이들을 재촉하기 전에 아이들의 생각에 더 배려하자.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애들이 참 없는데 말이야…


그랬다. 나는 어떻게 보면 배려가 부족했다. 동행으로 다니면서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지. 동료들을 더 믿지는 않았는지. 결국 나의 배려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찌질한 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배려심을 더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학교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여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서 혹시 이런 상황이 엄청 많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나. 내가 이기적이었던 거지 다른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상황이 맞게 된 것 등으로 혼자 착각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운 밤이었다. 흐린 날씨만큼이나 흐려진 마음이었다. 잠이 들면서 내일은 날씨처럼 내 마음도 맑게 개이고 동료들한테 잘 해 줄 수 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P.S.

아마 이 글을 적고, 이 글을 언젠가 내가 다시 또 읽더라도 같은 실수를 수도 없이 반복할 것이다. 사람은 망각하는 동물이자 쉽게 변하지 않는 보수적인 존재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적고 나의 찌질함을 만천하에 알려야 최소한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자각을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동시에 수많은 내 주변 사람들, 이런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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