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9일, 여행 120일 차, 빅토리아 폭포
어제 가기로 한 빅토리아 폭포는 오늘 가기로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다. 설상가상, 우연이는 베드 버그에 시달리게 되어서 붉은 반점이 올라왔다. 날씨를 원망하면서 빅토리아 폭포로 향하는 숙소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정 : 빅토리아 폭포(잠비아 사이드) - 빅토리아 폭포 국경 - 빅토리아 폭포 (짐바브웨 사이드)
빅토리아 폭포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나이아가라와 이과수 폭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두 폭포에 비해 긴 길이가 특징적이며 건기에는 짐바브웨 사이드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악마의 수영장' 도 있어 특색 있는 재밋거리를 선사한다고 한다. 모든 3대 폭포가 그러하듯이 빅토리아 폭포 역시 잠비아와 짐바브웨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어 전체 구간을 모두 보려면 비자를 발급받아 국경을 넘어야 한다. 2017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빅토리아 국경에서 KAZA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어 짐바브웨와 잠비아 두 나라를 30일 동안 무제한으로 왕복할 수 있다. 우리는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를 본 후 짐바브웨 쪽 빅토리아 폭포를 보는 경로로 관람하기로 했다.
잠비아 사이드의 빅토리아 폭포는 그 구간이 생각보다 짧다. 약 600미터의 산책로가 폭포를 따라 있다. 보는 구간이 짧아 실망할 수 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입구에서 우비를 판매하는데 그 이유가 폭포수가 솟아오르는 물 때문이다. 애초에 빅토리아 폭포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원래 이름이 '천둥 치는 연기' '솟아오르는 폭포(현지인이 알려주었는데 그 뜻이 잘못되어 바로 잡습니다)'라는 뜻의 현지 언어라고 하니까. 우비를 준비한 나와 빌린 우비를 입은 우연이는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남겼다. 분명 크고 강하고 힘이 좋지만 아쉽게도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인지 그 감흥이 크지 않았다. 슬슬 더워지면서 '짐바브웨 사이드를 가야 할까?'라는 의문을 서로 던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경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날씨가 좋아지는 것은 분명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가는 입장에서 너무 좋은 상황이지만, 당장 짐바브웨 사이드의 빅폴 입구까지 걸어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국경을 통과할 즈음 등장하는 빅토리아 대교에서는 각 국가로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번지점프대가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의 번지점프는 과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 대였으며 지금도 협곡 사이로 뛰는 아찔함 때문에 인기가 많지만 비싸다. 한 번에 160불. 나도 우연이도 그 정도 돈을 낼 여력은 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에 포기했다.
짐바브웨 사이드는 잠비아 사이드보다는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물론 입장료도 더 비쌌지만. 꽤 긴 거리를 걸어갔는데 잠비아 사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폭포에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규모가 더 길게 이어져 있기에 '이 정도는 되어야 3대 폭포구나'라는 생각이야 하지만 뭔가 큰 감동이 없었다. 폭포의 끝에 다다르면 DANGER POINT라고 하여 아찔하고 가장 높아 보이는 폭포의 한 지점이 나타난다. 잠비아 사이드 이상으로 강력하게 물이 튀기 때문에 비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와 우연이는 그래도 왔으니 비 맞는 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까이에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갑자기 햇빛이 비치면서 무지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커다란 폭포에서 물이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만큼이나 높이 튀어 올라가고, 거기에 햇빛이 비추면서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참을 무지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연이와 함께 이곳으로 오늘 온 것도, 짐바브웨 사이드에서의 좋은 날씨도 모두 감사한 것들 뿐이었다. 돌아갈 때에는 다시 날씨가 안 좋아지면서 그늘이 생겼고, 숙소에 들어올 즈음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감사한 날이었다.
어제 보츠와나에서 만났던 Big mama 같던 Ditso와 오늘 잠비아에서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Ditso는 자신의 친구인 Pearl jelly를 데리고 왔다. 딱히 외식메뉴를 찾지 못해 잠비아 패스트푸드 점에서 식사를 했다. Ditso와 Pearl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였다. 작게는 우리들의 나이를 맞추는 이야기부터, 크게는 연애관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Ditso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얼마야?'. 한국으로 갈 이유가 없었던 우리는 알고 있었던 대략적인 가격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다시 들은 대답은 '3년에서 4년은 꼬박 일해야 갈 수 있겠네.'였다. 그러더니 우리의 여행 계획과 진행을 궁금해해서 알려주었다. 얘기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항상 웃으면서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였기에 나와 우연이, Pearl 역시 당황해서 바로 달래주고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도 우리처럼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미 그것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대단하고 부러운데,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아프리카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눈물을 보였다고 했다. 순간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은 것처럼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너무 많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너무 힘들어서 내 꿈은 다 포기할 거야.'라면서. 나도 그랬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괜찮은 상황임을 잊는다.
Ditso가 처한 상황이 내 주변 누구보다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무도 없다.
자신이 힘든 것에 빠져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시작하는지는 까맣게 잊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며 절망하며 살아가게 살아가게 되는,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절대로 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지구 어딘가에서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눈물을 다독였다. 부디, 그녀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늦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밝게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나의 이 여행 자체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